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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식의 '철학 기행' <2> 토지, 공존과 상생의 토대

사회 양극화의 그늘, 쪽방촌엔 햇빛마저 사치가 됐다

논설위원이 여는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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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불구
- 판잣집·옥탑방·고시원·쪽방 등
- ‘비주택’ 거주 전국 101만여 가구
- 이마저 재개발에 밀려나는 현실

- 헨리 조지 등 정치경제학자들
- “지주들은 자연의 산물인 토지로
- 노동자에 지대 받아 부 축적” 지적
- 빈부격차의 최대 원인으로 꼽아

- 국민 30% 연간 수백조 지대 차지
- 권력된 땅은 사익추구 대상 전락
- 美 도시선 지대를 조세로 받기도
- 정치권, 공존 위한 제도 성찰 필요

빈부격차는 햇빛마저 양극화한다. 눈부시게 밝은 박 사장네 호화주택과 한낮에도 칠흑 같은 기택네 반지하주택의 극명한 대비. 영화 ‘기생충’은 ‘햇빛 양극화’를 상징한다. 정부는 반지하를 쪽방, 옥탑방, 고시원, 판잣집, 비닐하우스 등과 함께 주택 요건을 못 갖춘 ‘비주택’으로 분류한다. 비주택 거주자는 부산 6만9000여 가구를 비롯해 전국에 101만6000여 가구나 된다.

부산 남구 문현동 쪽방촌. 1m 남짓 좁은 골목길 사이로 낡은 건물이 촘촘히 들어선 탓에 햇빛이 진입하기 어려워 낮에도 어두컴컴하다.
반지하 천지인 서울과 달리 부산에는 작은 침대 하나 겨우 들어갈 만한 크기의 쪽방이 많다. 쪽방촌은 지상에 있지만, 햇빛 소외지대이긴 마찬가지다. 1m 남짓 좁은 골목길 사이로 낡은 건물들이 빼곡한 쪽방촌에는 햇빛이 진입하기 어렵다. 흐린 동천 좌우에 늘어선 부산진구 범천동과 남구 문현동의 쪽방촌은 낮과 담을 쌓은 듯 어두컴컴하다. 우중충한 슬레이트 지붕을 이고 낮게 엎드린 동구 좌천·범일동 매축지마을의 쪽방촌에도 햇빛은 인색하다. “50년 살아도 국유지를 불하받지 못해 매년 100만 원의 사용료를 냅니다. 그 흔한 도시가스도 안 들어와 겨울나기가 정말 힘드네요.” 기온이 갑자기 영하로 떨어져 도시철도 1호선에서 동사자까지 발생했던 지난 1월 17일, 매축지마을에서 만난 60대 주민의 얼굴에는 그늘이 짙었다.

동천변과 매축지의 쪽방촌은 재개발 바람에 휩싸였다. 원주민은 대부분 밀려날 처지다. 평균 15%에 불과한 원주민 정착이나 평당 1000만 원을 넘어선지 오래인 부산의 아파트 분양가는 그들에게 복권 당첨만큼 이루기 힘든 꿈이다. 원주민은 그래서 패배할 줄 알면서도 철거에 저항할 수밖에 없다. 2년 간 버텨 온 연제구 거제2재개발구역의 원주민 9가구는 지난 1월 30일 법원의 강제철거 집행에 결국 밀려났다. 4470가구의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는 드넓은 거제2구역에 그들을 위한 공간은 없었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에도 여전히 가난의 골은 깊다. 미증유의 경제 위기를 몰고 온 코로나 사태는 빈부격차를 증폭시킬 기세다. 부는 증가하는데 왜 가난은 해소되지 않는 걸까?

■진보와 빈곤의 동거

거제2구역 원주민 강제 해산.
150여 년 전 미국에서도 이런 의문을 가진 이가 있었다. 정치경제학자 헨리 조지(1839~1897)다. “생산력이 엄청나게 증가했지만 빈부격차는 더 심해지고 생존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샌프란시스코 헤럴드의 뉴욕 특파원으로 일하던 1868년, 그는 극도의 사치와 지독한 빈곤이 병존하는 것을 목격하곤 원인 규명을 위해 연구에 몰두했다. 그 결과가 1879년 펴낸 명저 ‘진보와 빈곤’이다.

조지는 ‘토지 사유’에서 근본원인을 찾았다. 인류사의 최대 철학적 난제인 소유 문제를 끄집어낸 것이다. “토지의 배타적 소유를 정당하다고 인정할 수 있는 권한은 어디에도 없다. 현재 살고 있는 모든 인류가 합의하여 토지에 대한 평등한 권리를 포기한다고 하더라도 후세대의 권리까지 포기할 수는 없다.” 노동이나 자본을 투여한 인위적 생산물이 아닌, 토지 햇빛 물 공기 지하자원 등 자연의 산물은 공유의 대상이라는 시각이다. 그런 토지를 사유함으로써 진보와 빈곤이 병존하게 됐다는 것이다.

부산 동구 좌천·범일동 매축지마을의 쪽방촌.
조지는 지주가 토지를 빌려주고 받는 지대(地代)를 빈부 양극화 작동체계의 핵심으로 꼽았다. 그는 이 체계를 ‘생산량=지대+임금+이자’ ‘생산량-지대=임금+이자’라는 두 정식으로 정리했다. 고전경제학(정치경제학)에선 노동·토지· 자본을 생산의 3요소라고 한다. 노동은 임금, 토지는 지대, 자본은 이자라는 대가를 각각 낳는다. 문제는 두 번째 정식에서 보듯이, 아무리 많이 생산해도 지대가 올라가면 임금과 이자는 줄어들게 된다는 데 있다.

“토지가치가 상승하면 지대로 흡수되어 버리고 임금과 이자는 전과 달라지지 않는다. 토지가치 상승이 생산력을 능가하면 임금과 이자는 오히려 하락한다.” 토지가치 상승은 노동과 자본, 대중교통시설 같은 국가와 지자체가 건설한 사회간접자본 덕분이다. 지주는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타인의 피땀을 지대란 불로소득으로 챙긴다는 게 조지의 주장이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상위계층 소득의 태반은 지대에서 나온다. 지대는 하위계층으로부터 상위계층으로 돈을 이전시키며, 일부에게는 이익을 주고 나머지에게는 손실을 주는 방향으로 시장을 왜곡한다”고 했다. 지대가 빈부격차의 최대 원인이라는 얘기다.

■한국 불로소득 매년 수백조

연제구 거제2구역 재개발 현장.
우리는 어떨까. 경실련의 분석 자료를 보면, 한국의 토지가격 총액은 2018년 현재 1경1545조 원이다. 이 중 정부 보유분(2055조 원)을 뺀 민간 보유분은 9490조 원이다. 이런 엄청난 부를 국민의 30%인 1500만여 명의 지주가 소유하고 있다. 시가의 60~70%에 불과한 공시지가로 계산한 게 이렇다. 지대도 막대하다. ‘토지+자유연구소’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5년까지 적게는 연간 264조6000억여 원, 많게는 346조2000억여 원에 달한다. 국내총생산(GDP)의 21.7~27.8%다. 30%의 지주가 토지를 못 가진 70%의 국민에게 땅을 빌려주고 받은 불로소득이다. 두 번째 철학기행 장소를 우리 현실에서 찾은 까닭이다. 가장 절실한 철학적 문제는 ‘지금, 여기’에 있다.

자유시장경제론을 확립한 정치경제학자들도 지대를 부정적으로 봤다. 애담 스미스(1723~ 1790)는 ‘국부론’에서 “어떤 나라의 땅이 모두 사유재산이 되어버리면 그 즉시 지주들은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자신이 결코 씨를 뿌린 적 없는 곳에서 수확하기를 좋아하고, 자연이 만든 생산물에서도 지대를 요구한다”고 지적했다. 존 스튜어트 밀(1806~1873)은 “지주는 아무런 노력도 모험도 절약도 하지 않으면서 무슨 권리로 일반적인 사회 진보에서 생기는 부를 차지하는가”라고 꼬집기도 했다.

동래구 명륜동 상가에 걸린 임대료 인하 호소 펼침막.
지대의 원천인 토지 사유는 어떻게 제도화됐을까. 토지 사유는 자본주의 형성과 맥을 같이한다. 공유지에서 농민을 쫓아내는 울타리치기(enclosure)를 통해 이뤄졌다. 카를 마르크스(1818~1883)가 ‘자본론’에서 말한 ‘자본의 원시적 축적’이다. ‘인클로저’에는 명분이 필요했다. 그 사상적 기반을 제공한 이가 철학자 존 로크(1632~1704)다. “자연이 제공한 것에 자신의 노동을 섞으면 그것은 그의 소유가 된다. 노동은 만물의 어머니인 자연보다 더 많은 무엇을 자연에 첨가한다.” 로크는 ‘통치론’에서 ‘노동’ 개념을 도입해 토지 사유를 정당화했다.

철학자 장 자크 루소(1712~1778)는 이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울타리 말뚝을 뽑아버리고 ‘이 사기꾼 말을 듣지 마시오. 이 땅은 누구의 것도 아니고, 여기서 난 과실이 우리 모두의 것이라는 사실을 잊는다면 우리는 파멸할 테니’라고 동포들에게 부르짖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가 얼마나 많은 범죄, 전쟁, 살인, 공포, 불행에서 인류를 구해주었겠는가.” 조지도 “자연법은 노동의 권리 외 어떤 권리도 인정하지 않는다”며 토지 사유를 반대했다. 그러나 이미 뿌리내린 토지 사유제의 철폐를 주장하진 않았다. 그럴 경우 혼란이 너무 크다는 이유에서다.

그 대신 지대를 조세로 징수해 국민 복지에 쓰는 ‘지대조세제(토지가치세)’ 도입을 제안했다. “토지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은 그대로 가지게 한다. 매매·증여·상속도 허용한다. 지대만 환수하면 된다.” 그의 지대조세는 다른 모든 세금을 대체하는 단일세다. 이를 가장 먼저 받아들인 이는 작가 레프 톨스토이(1828~1910)다. 귀족(백작)이었던 톨스토이는 소설 ‘부활’에서 주인공 네흘류도프를 통해 사회학적 실험을 시도했다. 자신의 토지를 농민에게 넘겨주되, 마을에서 공동관리하며 개인에게 임대해주고 받는 대가를 공익에 사용하는 방식이다.

■4·15총선서 지대 문제 공론화를

지대조세제는 미국 펜실베니아주, 뉴질랜드 등지에서 시행 중이다. 펜실베니아주에선 20개 도시가 지대조세와 재산세를 혼합한 세금을 거둔다. 지대조세제는 ‘토지공개념’의 대표적 유형이다. 토지공개념은 4·15총선의 쟁점으로 등장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가 “토지공개념을 개헌 주제로 다루자”고 주장하자, 미래통합당 심재철 원내대표는 “사회주의 개헌”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지대조세제는 재산·소득·노동 유무와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정기적으로 일정액을 지급하는 기본소득과도 관련이 있다. 지대조세를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활용하자는 주장이 제기되어서다. 2018년 지방선거 때 부동산종합세와 재산세를 없애고, 지대조세의 일종인 국토보유세를 거둬 기본소득제를 실시하자는 공약이 나왔다. 기본소득 역시 4·15총선의 민감한 쟁점이 됐다. 비록 일시적이긴 하나, 부산 기장군과 울산 울주군, 경기도가 전 주민에게 10만 원의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면서다. 기본소득에 한걸음 다가선 셈이다.

기본소득은 미국의 사상가 토마스 페인(1737~1809)에게서 연원을 볼 수 있다. “토지 재산은 원래 없던 것이다. 인간은 땅을 만들지 않았으며, 설령 땅을 점유할 권리가 있다 해도 영구히 자기 재산으로 삼을 권리는 없다.” 그는 지주로부터 지대를 거둬 60세 이상 노인에게 매년 10파운드를 지급하고, 21세 되는 청년에게 사회진출금으로 15파운드를 주자고 제안했다.

토지는 권력도 낳는다. 조지는 “어느 시대,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토지 사유는 귀족층의 근거이자 거대한 재산의 기초이고 권력의 원천”이라고 했다. 토지는 사회학자 소스타인 베블렌(1857~1929)이 말한 ‘지위재(地位財·status goods)’인 셈이다.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서나 토지 투기가 성행하는 연유다. 조지는 지대와 토지 투기를 불황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산업 활황→토지가치 상승→토지 투기→생산 중단→상업 파탄→불황→회복→활황’의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얘기다.

“대한민국은 국민이 땀 흘려 일하기보다 땅으로 일확천금을 기대하는 지대 추구 사회, 심각한 자산 불평등 사회로 전락했다. 이런 ‘부동산 공화국’을 해체하지 않고서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2018년 7월, 국내 지식인 323명은 ‘사회·경제개혁 촉구 선언’에서 지대를 적폐의 1순위에 올렸다. “건물주님, 임대료 인하로 상생합시다.” 코로나 생계난을 견디지 못한 자영업자들의 임대료 인하 호소가 전국에서 터져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토지는 공존의 토대인가, 사익 추구의 대상일 뿐인가. 민심은 지대 문제에 대한 철학적, 제도적 성찰을 바란다. 4·15총선 주자들과 정치권이 적극 화답해야 할 때다. 논설위원 yisg@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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