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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 기자의 영화 人 a view] ‘찬실이는 복도 많지’ 김초희 감독

사람과 영화에서 자신의 ‘복’ 찾아낸 늦깎이 감독

  • 국제신문
  • 이원 기자 latehope@kookje.co.kr
  •  |  입력 : 2020-03-03 19:37:22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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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듀서로 오래 일하다가
- 감독으로 낸 첫 장편 ‘찬실이’
- 작품성·대중성 인정받으며
- BIFF 감독조합상 등 3관왕

- 부산서 학창시절 보내고
- 프랑스 유학 때 홍상수 감독 인연
- 영화계 몸담다 단편으로 데뷔
- 반찬 장사하며 시나리오 작업

- 주인공에 자신의 처지 투영
- 40대 여성에 “잘될거야” 위로
- “삶을 슬기롭게 사는 방법은
- 지금의 삶 충실히 사는 것”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BIFF)에서 시네필과 영화인의 가장 큰 주목을 받은 영화는 ‘찬실이는 복도 많지’였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제24회 BIFF에서 한국영화감독조합상, CGV아트하우스상, KBS독립영화상 등 주요 상을 휩쓸며 3관왕에 올랐고, 자연스레 영화를 연출한 김초희 감독에게 시선이 집중됐다. 부산 출신이자 프로듀서로 오랜 시간을 영화계에 몸담았던 김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은 BIFF에 이어 지난해 연말에는 제45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으며 2020년 개봉을 기대케 했다. 그리고 두 영화제에서 작품성과 대중성을 인정받은 독립영화계의 기대작 ‘찬실이는 복도 많지’가 코로나19 사태의 풍랑 속에서 5일 개봉한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함께 작업하던 감독이 갑자기 죽고 난 후 일이 끊긴 영화 프로듀서 찬실이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김 감독 자신의 이야기가 요소요소에 담긴 영화다. 특히 흔치 않게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여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워 찬실이 캐릭터에 리얼리티를 부여했다.

“김수영 시인의 ‘봄밤’을 필사하면서 잤다. ‘서둘지 말라’는 시구에서 알 수 있듯 마음을 가라앉히기 좋은 시다. ‘봄밤’을 읽으면 구석구석 처박혀 있던 감정들이 느껴진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개봉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 김 감독. 그가 이야기하는 영화 인생은 영화보다 더 재미있었다.

■ 비디오 가게 알바생, 프랑스로 유학

   
부산 출신으로 프랑스 유학, 프로듀서를 거쳐 자전적인 장편 데뷔작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연출한 김초희 감독. 그는 이 작품으로 “다시 용기를 내고, 희망을 꿈꾸고, 앞으로 나아가는 그런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우상희 스튜디오 제공
“1975년 부산 동구에 있는 일신기독병원에서 7개월 2주 만에 조산아로 태어나 인큐베이터에 들어갔다. 이 병원은 지금도 있는데 문소리 씨도 거기서 태어났다고 들었다. 아버지께서 나전칠기의 장인이신데 부잣집 딸로 살다가 일곱 살 때 부도가 나서 어렵게 살았다”는 이야기로 김 감독은 자신의 영화 인생을 시작했다.

“사직여고를 나왔는데 옥상에서 사직구장 전광판 끝이 보였다. 롯데 자이언츠가 이기는 날에는 마음이 들썩거려서 자율학습도 못했다.” 김 감독은 학창 시절에는 홍콩 영화를 좋아했던 평범한 학생이었고, 고교 졸업 후 부산외국어대학교 불어과에 입학했다.

그가 영화를 본격적으로 만나게 된 것은 집안이 어려워 고등학교 졸업 이후 비디오 대여점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였다. “아르바이트 시절 처음에는 상업 영화 위주로 보다가 차츰 꽂혀 있는 순서대로 보게 됐고, 그러면서 영화의 취향이 생겼다.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집시의 시간’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또한 김 감독은 이때 소위 ‘B자’ 비디오테이프로 오즈 야스지로 감독과 스탠리 큐브릭 감독,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감독의 영화를 만나면서 예술 영화에 대한 동경이 생겼다. 그리고 불어과를 나온 덕에 프랑스로 영화 유학을 떠나게 됐다.

■홍상수 감독, 그리고 프로듀서

   
함께 작업하던 감독이 갑자기 죽고 난 후 일이 끊긴 영화 프로듀서 찬실이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3관왕 및 서울독립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했다. 찬란 제공
불어를 할 수 있고, 학비가 안 든다는 이유로 프랑스로 떠나 파리 1대학에서 영화이론을 전공하던 김 감독은 뭔가 안개 속을 걷는 기분이었다. 습작으로 단편 4편을 만들었지만 스스로 봐도 못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대로 교육을 받지 않아서라고 생각하던 차에 홍상수 감독님이 파리에 ‘밤과 낮’을 찍으러 왔다. 불어 가능한 연출부를 구한다고 해서 지원했다.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일조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했다.”

석사를 졸업하고 박사 준비과정이었던 김 감독은 ‘밤과 낮’ 이후 홍 감독이 새 영화를 준비한다는 말을 듣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영화는 제작이 중단됐고, 홍 감독이 설립한 영화사인 전원사의 살림을 맡게 됐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2008) ‘첩첩산중’(2009)은 제작실장으로, ‘옥희의 영화’(2010)부터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2015) 등 7편은 프로듀서로 홍 감독 영화에 참여한 것이다. 계속된 영화 작업으로 지쳐가던 김 감독은 일을 그만두고 캐나다로 1년간 떠났다가 돌아온 후 울주세계산악영화제의 제작 지원을 받은 윤여정 정유미 주연의 단편 영화 ‘산나물 처녀’를 연출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산나물 처녀’를 연출했지만 영화를 찍지 않으니, 마흔한 살의 김 감독이 딱히 할 만한 일이 없었다. 상업 영화 현장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프로듀서 일을 계속할 수도 없었고, 프랑스 학위 하나로 강의를 하기도 여의치 않았다. 그러던 중 윤여정 씨가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경상도 사투리를 써야 한다며 사투리 선생님을 해달라고 제의했다. “촬영장에 갔는데, 너무 좋았다. 여기가 내가 있을 곳인데 뭐 하고 있나 싶었다.”

2017년 6월, 요리에 자신이 있었던 김 감독은 반찬 장사를 시작하면서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1년 후 정동진독립영화제에서 ‘82년생 김지영’을 연출한 김도영 감독의 단편 영화 ‘자유연기’에 출연한 강말금을 보게 된다. “극 중 오디션을 보러 간 주인공이 안톤 체홉의 ‘갈매기’에서 니나가 하는 독백을 하는데, 찬실이처럼 열심히 인생을 살아낸 사람의 얼굴이었다.” 서울에 와서도 강말금의 얼굴이 떠올랐던 김 감독은 수소문 끝에 서울 연극의 메카인 대학로에서 강말금을 만났다. “회사원 생활을 했다가 나이 서른에 늦깎이 배우로 연극무대에 섰더라. 서울말을 써서 몰랐는데 강말금 씨가 부산 사람이었다. 시나리오를 사투리로 새로 쓰겠다고 했더니 자신도 그게 더 자연스럽다고 하더라.” 그래서 한국 영화에서 보기 드문 사투리를 쓰는 친근한 여성 캐릭터 찬실이가 탄생했다.

■40대 여성에게 보내는 희망 메시지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자전적 요소가 많다. 영화 첫 장면부터 프로듀서의 생활을 떠나보내고 감독 길을 걷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프로듀서를 그만두고 힘들었을 때 아버지로부터 손편지를 받고 펑펑 운 경험을 실제 아버지의 목소리로 담았다. 김 감독은 “신인 감독의 데뷔작이라 어느 정도 자전적인 면이 있다. 하지만 직업이나 실직 상태인 점이 저와 비슷할 뿐 찬실이처럼 연하남을 만나서 차이고 싶은데 그런 적도 없었고. 윽박지르는 영화사 대표를 만난 적도 없었다”며 찬실이는 가공된 캐릭터임을 강조했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미덕은 40대를 보내고 있는 여성들에게 “괜찮아. 넌 열심히 살고 있어. 앞으로도 잘 될 거야”라고 말하며 웃음과 희망의 메시지를 준다는 점이다. 그래서 영화를 통해 이 세상의 모든 찬실에게 “우리가 하고 싶은 것 믿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거를 하라”고, 또 “오늘 하고 싶은 일만 하라”고 말한다. “제가 30대였다면 이런 시나리오를 못 썼을 것이다. 40대가 되고 나서 제 인생보다 영화가 중요했던 사람이고, 영화가 삶의 일부라는 것을 알았다. 또 삶을 궁금해해야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계획이 있지만, 그것이 뜻대로 안 된다는 것을 영화 ‘기생충’이 보여주는데, 그런데도 우린 살아야 할 권리가 있다. 삶을 슬기롭게 헤쳐나가는 방법은 지금의 삶을 충실히 사는 것이다.”

   
감독으로서 제2의 영화 인생을 시작한 김 감독이 살아오면서 받은 복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그러자 “제 복은 인복과 살아있다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삶의 유한함을 깨닫고 현재를 충실하게 사는 것’, 그리고 ‘앞으로도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만들고 싶은 것’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 김 감독의 영화 인생이 영화 엔딩의 설원을 달리는 기차처럼 펼쳐지길 바란다. 이원 기자 latehop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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