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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 기자의 영화 人 a view] ‘기억의 전쟁’ 이길보라 감독

‘참전용사 손녀’ 감독이 묻는다, 베트남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 국제신문
  • 이원 기자 latehope@kookje.co.kr
  •  |  입력 : 2020-02-18 19:21:07
  •  |  본지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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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있었던
- 베트남 하미·퐁니·퐁넛마을 찾아
- 생존자 고통·증언 생생히 담아

- 전 스태프 여성으로 구성해 촬영
- 피해자 관점서 기억의 차이 전달
- 진정성 있는 사죄 공론화하기도

- ‘로드스쿨러’ ‘반짝이는 박수소리’
- 고등학교 자퇴·농아인 부모 등
- 모든 작품 자신의 이야기로 시작
- 소통 위해 다큐 찍는다는 그녀
- 차기작 ‘아워 바디즈’ 기획 중

수년 전부터 해외 여행지로 가장 주목받고 있는 베트남의 다낭. 호이안, 바나힐과 같은 관광지와 맛있는 음식, 해양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그곳에서 불과 20여 분만 차를 타고 가면 50여 년 전 벌어진 베트남전의 상흔 때문에 지금도 온 마을 사람들이 아파하는 곳이 있다.

   
청각장애를 지닌 부모와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아낸 데뷔 다큐멘터리 ‘반짝이는 박수 소리’(2014)로 주목받았던 이길보라 감독. 그녀가 두 번째 장편 다큐멘터리 ‘기억의 전쟁’에서 50여 년 전 베트남전에서 일어났던 그날의 아픈 기억을 담았다. 김정록 기자
베트남전 참전 군인의 손녀인 이길보라 감독은 다낭과 가까운 베트남 중부의 하미 마을과 퐁니·퐁넛 마을에 카메라를 들고 찾아가 1968년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 사건에 대해 증언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다. 다큐멘터리 ‘기억의 전쟁’(개봉 25일)에는 한국 사회에서 비밀처럼 감춰왔던 베트남전의 기억들이 스크린에 펼쳐진다.

이길 감독은 청각장애 부모 밑에서 ‘입말보다 손 말’을 먼저 배우고 자랐다. 부모와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아낸 데뷔 다큐멘터리 ‘반짝이는 박수 소리’(2014)는 농인 부모와 나이 어린 여성에 대한 편견을 걷어차며 그 해를 대표하는 다큐멘터리로 인정받았다. 그리고 6년이 지나 이길 감독은 자신의 시각을 더욱 확장해 베트남전이라는 묵직한 이야기로 돌아왔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영화 공부를 하고 있다가 영화 개봉에 맞춰 귀국한 이길 감독을 만나 ‘기억의 전쟁’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기억의 전쟁’의 시작

“어렸을 때 할아버지께서 맹호부대 장교로 베트남전에 참전했고 자신을 ‘참전 용사’라고 하셨어요. 국가로부터 받은 훈장과 표창장을 보면서 자랐죠. 그런데 베트남전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별말씀이 없으셨어요. 결국 할아버지는 고엽제 후유증으로 오랜 투병 끝에 10년 전쯤 돌아가셨어요.” 어렸을 때 이길 감독에게 베트남전은 단지 할아버지가 참전했던, 그리고 용맹하게 싸워 훈장까지 탔던 전쟁이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베트남전의 이면에 있었던 사건들을 접하면서 할아버지의 침묵이 의미했던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그리고 2015년 한베평화재단에서 모집한 베트남 평화 기행에 참여해 실제 한국군 민간인 학살이 있었던 하미 마을과 퐁니·퐁넛 마을 등을 방문하게 됐고, 그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와 자신이 알던 베트남전에 대한 기억의 차이를 보여주기 위해 카메라를 들었다.

“당시 평화 기행에서 영화의 주인공 중 한 분인 응우옌 티 탄 아주머니를 만났습니다. 한국군 민간인 학살이 있는 마을에 가면 한국인이라면 인사도 안 받아주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는데, 따뜻한 밥을 해주셨어요. 그 순간이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탄 아주머니는 1968년 2월 12일에 있었던 퐁니·퐁넛 마을 학살 생존자로, 당시 가족들을 잃은 아픔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탄 아주머니가 보여준 관대와 관용의 마음이 담긴 밥을 먹으며 죄책감과 부채감을 느낀 이길 감독은 ‘기억의 전쟁’을 찍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베트남 피해자의 생생한 증언

   
2016년 3월 4일. ‘기억의 전쟁’ 촬영 중 증언에 참여한 탄 아주머니 집 앞에서 촬영한 기념사진. 탄 아주머니와 가족, 그리고 (맨 뒷열 왼쪽부터) 권현우 한베평화재단 활동가이자 촬영팀 현지 코디네이터, 이길보라 감독, 서새롬 프로듀서, 곽소진 촬영감독. 시네마달 제공
‘기억의 전쟁’에서 탄 아주머니를 비롯해 응우옌 럽과 딘 껌 아저씨가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이 베트남의 한 마을에 쳐들어와 가족과 마을 사람들을 어떻게 학살했는지 생생한 증언을 한다. 당시 8세에서 12세였던 이들은 한국군을 피해 몰래 숨어서 지켜봤는데, 50여 년이 지난 그 날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1964~1973년 동안 베트남전에 32만5000여 명의 한국군이 파병됐으며, 80개 마을에서 한국군 민간인 학살이 일어났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촬영이 처음부터 수월했던 것은 아니다. 한국인에 대한 반감이 있기 때문에 촬영에 대한 언급 자체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탄 아주머니는 젊은 한국 남자를 만나면 무서워하셨는데, 제가 막내딸과 동갑이라면서 일찍 마음을 열어주신 것 같아요.” 영화의 프로듀서와 카메라 감독이 모두 여성이었던 것도 촬영 승낙을 받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껌 아저씨는 청각장애인이지만 수어를 못 배워서 홈 사인(Home sign)과 그림으로 당시를 표현했다. “제가 농인 부모님이 있어서 그런지 누구보다 럽 아저씨의 홈 사인을 이해했어요. 그러면서 신뢰를 쌓을 수 있었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길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의 진정성이 있었기 때문에 세 주인공의 증언과 마을 사람들의 협조를 얻을 수 있었다. 2015년뿐만 아니라 지난해까지 매해 마을을 평화 기행에 참여하며 마음을 나눴으며, 나중에는 “왜 우리 마을은 촬영하지 않느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진정성을 인정받았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진정한 사과

   
1968년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 사건에 대해 증언하는 3인의 이야기와 그들의 바람을 담은 다큐멘터리 ‘기억의 전쟁’. 시네마달 제공
‘기억의 전쟁’에는 탄 아주머니가 2015년과 2018년 두 번에 걸쳐 한국을 찾아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에 대해서 증언했다.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할머니들을 만나 연대의 우정도 나눴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다른 피해자 102명과 함께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진상조사 및 공식 사과, 피해 복구를 위한 조치를 이행할 것을 요구하는 청와대 청원을 올리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민간인 학살 내용이 확인되지 않으며, 사실 확인을 위해서는 베트남 당국과의 공동 조사가 선행되어야 하나 여건이 조성되지 못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한국 정부의 사과를 기대했던 탄 아주머니는 굉장히 실망했고, 한국 정부를 상대로 한 국가배상 소송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에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라고 요구하면 어떤 일본 관료는 ‘너희도 베트남에 대해서 사과하지 않고 있지 않으냐’고 한답니다. 한국 정부와 베트남 정부 간의 당면한 외교·경제적 현안이 있겠지만 어두운 역사에 대한 진상 규명과 사과를 받고 싶은 것이 그분들의 마음입니다.”

■다큐멘터리가 소통의 다리로

‘기억의 전쟁’의 개봉을 앞둔 이길 감독은 현재 2017년에 입학한 네덜란드 영화학교를 졸업하고 차기작을 준비 중이다. 지금까지 연출한 ‘로드스쿨러’ ‘반짝이는 박수 소리’ ‘기억의 전쟁’이 모두 자신으로부터 시작했던 다큐멘터리였듯 차기작도 자신과 할머니 어머니가 등장하는 ‘아워 바디즈’를 기획하고 있다. 여성의 몸과 재생산권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로, 20일부터 열리는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의 워크숍 프로그램인 ‘베를리날레 탤런트’에 초청돼 피칭(Pitching)을 갖는다.

   
어려서부터 다큐멘터리를 좋아해서 만화보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을 훨씬 좋아했고,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 밖의 세상이 궁금해서 준비 끝에 2학년 때 자퇴 후 동남아시아로 여행을 떠났던 이길 감독. “세상이 넓다는 것을 느꼈고, 자선 NGO 활동가나 다큐멘터리 감독이 되고 싶었어요. 그리고 열아홉 살에 단편 ‘로드스쿨러’라고 자기주도 학습을 하는 청소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는데, 영화를 상영하면서 관객과 만나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저는 A를 생각하고 찍었는데, 관객들은 B나 C로 해석하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만드는 것이 어렵다고 느껴서 영상원에 입학했고, 더 공부하고 싶어서 네덜란드로 갔습니다. 저는 소통하기 위해서 영화를 만듭니다.” 다큐멘터리 전문 감독으로서 이길 감독이 우리와 소통하기 위해 보여줄 새로운 이야기를 응원한다.

이원 기자 latehop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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