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평원과 언덕 너머로 높은 산이 보이고 강이 흐른다. 허름한 집안 좁은 방에 곤히 잠든 아이의 뺨 언저리에 파리가 앉아있고, 여름 방목지에서 키우던 말을 팔기 위해 아버지가 집을 떠난다. ‘말도둑들. 시간의 길’은 광대하고 아름다운 풍광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가족의 모습에서 시작한다. 듬성듬성 풀이 나 있는 황야와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 강에 비친 언덕의 그림자를 오래도록 지켜보는 카메라는 광활한 만큼 쓸쓸하고, 아름다운 만큼 적막한 대지와 하늘을 조망한다. 과묵함은 자연뿐 아니라 인물들에서도 발견되고, 예를란 누르무함베토프 감독이 영화를 구성하는 방법에서도 찾을 수가 있다. 소년의 눈으로 바라본 아버지의 죽음과 또 다른 아버지의 생환은 떠들썩하고 극적인 장면 하나 없이 자연과 사람과 동물의 시간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 영화는 흐르는 시간을 활동으로 채워나간다.

영화의 제목에서 이미 감독이 밝혔듯,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쉼표가 아닌 마침표로 구분된 ‘말도둑들’과 ‘시간의 길’이 무엇을 드러내며 어떤 것을 함축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또 1부와 2부를 분리하면서도 오버랩하고 마침내 품게 되는 ‘아버지’의 존재이다. 아버지가 말을 팔러 가서 새끼 고양이를 품에 안은 채 총에 맞아 죽고, 아버지의 시신이 마을로 돌아오는 장면까지 ‘말도둑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아버지가 남긴 것은 깨진 시계와 고양이뿐 아니라 그의 부재이기도 하다.

‘시간의 길’은 아버지의 시신을 묻을 때 마을을 찾아온 낯선 남자(소년의 생부)와 (아버지임을 모르는)소년의 관계를 중심에 놓는다. 그들이 만나지 못했을 동안의 시간과 감정은 길을 따라 흐르고 모이고 고이기 때문에, 생부가 남겨준 나무로 깎은 말 조각을 넘어서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말을 타고 평원과 언덕을 달리는 장면이 감동을 안겨준다.

예를란 누르무함베토프 감독은 야생의 땅, 추적과 복수라는 웨스턴의 관습을 느슨하게 차용하면서도 ‘말도둑들. 시간의 길’이 카자흐스탄식 웨스턴에 머물기를 원치 않는 것 같다. 아버지들이 남긴 것은 소년에게 물리적이고 측정 가능한 시간을 알려줄 시계라는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사물과 조각과 그림으로 이어진 예술적 기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생동하는 풍경과 사람의 삶 그리고 자연의 순리라는 보이지 않는 유산이 적극적으로 드러난다.

이 영화의 자연이 자신을 드러내는 방법은 끊임없는 움직임이고, 그것은 생명이 활동하는 증거이자 시간의 흐름이기도 하다. 감독은 시종일관 운동을 찾고 활동하는 존재들을 바라봄으로써 시간의 흐름과 중첩을 카메라에 담아낸다. 이를테면 나무는 밤과 낮에 따라, 바람과 햇살에 따라 흔들리고, 말과 양 떼는 줄지어 이동한다. 여자들은 토마토를 따고 남자들은 말을 키우고 아이들은 강에서 뛰어논다. 소년은 집 안에서 바깥을 바라보며, 꿈을 꾸고 상상하며, 강물을 바라보며, 말들의 우람한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무엇보다 고양이의 여린 울음소리를 들으며 성장할 동안 아버지들에게 받은 선물을 기억할 것이다. 대지와 구름의 모양, 능선을 따라 달리는 말의 호쾌한 운동과 고양이의 미숙한 걸음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은 소년이 아니라 시간일지 모르겠다. 박인호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