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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헌의 부산 춤 이야기 <23> 리뷰 : ‘몸으로 쓰는 시’

시립무용단원 창작 무대 … 냉정한 조언이 발전 동력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9-09 18:38:34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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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심 은유 김시현 ‘사람연습’
- 기발한 발상이나 강약 변화 미흡

- 고뇌 다룬 전통춤 정진희 ‘틀Ⅳ’
- 이미지 양 많아 춤 애절함 묻혀

- 피카소 소재 김미란 ‘청색시대’
- 선명한 주제 비해 표현법 중첩

재단법인 부산문화회관이 기획한 ‘2019 안무가양성프로젝트 - 몸으로 쓰는 시’가 지난달 23일 문화회관 중극장에서 있었다. 이번 무대에 김시현·정진희·김미란 세 명이 안무작을 올렸다. 이 프로젝트는 출연자라는 수동적 위치에 있는 시립무용단의 단원이 창작을 주도하는 안무자로의 위상변화 가능성을 보여주는 자리다.
김시현의 ‘사람 연습’
김시현의 ‘사람 연습’은 인간관계에서 잘 지켜지지 않는 친근함과 무례의 경계를 경쾌한 은유로 풀어낸다. 사람은 이타심과 이기심의 경계를 익히며 관계의 규칙을 배운다. 하지만 인간의 이기심은 거스르기 힘든 구심력처럼 관계의 긴장이 조금이라도 느슨하면 어김없이 우리를 무례의 선 안으로 끌어당긴다. 무대 막을 이용해 관객의 시각을 제한하고 바통에 연결한 줄의 탄력으로 움직임을 조절하는 기법은 이기적 구심력을 기발하게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간혹 장치가 움직임을 방해해 매끄럽지 못한 장면이 보이고, 전체 흐름의 강약 변화가 적어서 다소 평면적으로 보인 측면이 있다.

정진희의 ‘틀Ⅳ(어떠하리…)’
정진희의 ‘틀Ⅳ(어떠하리…)’는 인간의 고뇌를 전통춤을 바탕으로 한 움직임과 이미지로 표현했다. 신문을 이어 붙여 늘어뜨린 세트는 수많은 고통과 번뇌의 세월을 담았고, 가면을 쓴 마네킹 군상은 내면을 억누르는 억압의 시선이다. 이로 인해 아픔을 드러내지 못하고 수동적 페르소나(가면) 뒤에 살아야 했던 인내의 시간이 전통춤의 움직임에 절절하게 묻어 있었다. 그런데 주제를 강조한 이미지의 압도적인 양 때문에 안타깝게도 춤의 애절함 절반이 묻혀버렸다. 덧붙이면, 어떤 고통 때문에 그렇게 힘들었는지가 분명했다면 관객의 공감이 더 수월했을 것이다.

김미란 안무의 ‘청색 시대’는 피카소가 20대 초반 약 4년 동안 거친 우울한 시기를 소재로 삼았다. 안무자는 우울과 아픔이 삶을 지배하는 시기를 각자의 청색 시대라고 말한다. 무대를 대각선으로 잇는 세트를 따라 현실과 이상, 고통과 극복의 몸짓이 시간·감성의 변화에 따라 진행한다. 세심한 소품과 다수의 출연자 역할을 의미 있게 분배해 주제를 분명하게 드러냈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미지와 표현이 중첩되었다. 의도적 중첩은 강조로 읽히지만 지나치면 솎아내야 하는 군더더기가 된다. 피나 바우슈의 ‘마주르카 포고’가 떠오르는 마지막 장면의 감동을 위해서라도 더하기보다 많은 빼기를 해보는 것은 어떠했을까 싶다.

김미란의 ‘청색 시대’ 부산시립예술단 제공
이처럼 개성이 뚜렷한 세 작품에서 공통으로 보이는 점이 있다. 첫 번째 공통점은 무대 세트와 소품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것에 비해 각자의 색깔이 담긴 춤 언어가 적었다는 점이다. 무용 작품에서 춤은 비중을 어지간히 높여도 과하지 않고, 소품이나 이미지 사용은 신중해야 한다. 두 번째, 세 작품 모두 두괄식 문장처럼 시작 때 주제를 말로 언급한 점이다. 이런 연출이 관객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한편으로 춤의 해석과 감상의 폭을 제한할 수도 있다. 잘못되면 말로 주제를 전달한 첫 장면이 작품 전부가 된다. 이러한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연출적 조언을 들을 창구가 필요하다.
공연이 끝나고 가족과 동료의 환호와 격려의 박수가 쏟아졌다. 박수가 잦아들면 안무자는 아쉬움의 긴 후유증을 겪고, 그 후유증을 또 다른 창작으로 극복한다. 시립무용단 단원의 창작 경험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개인의 예술적 역량 향상을 넘어 시립무용단의 역량 강화로 이어지고, 결실이 부산시민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를 만족과 격려로만 끝낼 것이 아니고 냉정한 피드백까지 포함하는 구조로 만들어야 한다. 시립무용단의 위상과 기획 의도를 생각하면 그렇다는 말이다.

춤 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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