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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준의 그 고장 소울푸드 <34> 태안 박속밀국낙지탕

야들야들한 낙지, 시원한 박속 국물 … 연포탕과 다른 ‘밀국’ 매력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7-16 18:38:59
  •  |   본지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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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8월 가로림만 갯벌서 잡은
- 10~15㎝ 정도 자란 어린 낙지
- 밀 익어갈 무렵 잡혀 ‘밀국낙지’
- 나박하게 썬 박속 넣은 육수에
- 싱싱한 낙지 살짝 데쳐 먹은 후
- 수제비·면 더해 걸쭉하게 즐겨

펄펄 끓는 냄비 속으로 살아 꿈틀대는 낙지가 한 마리씩 들어간다. 태안반도 가로림만 개펄 속에서 당일 잡아낸 싱싱한 낙지가 냄비 속에서 빨갛게 맛있게 익어가는 것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부드럽게 잘 익은 낙지를 한 점씩 입에 넣는다. 살강살강 씹히는 식감이 부드러우면서도 오돌오돌하다. 여름철 임금이 먹던 그 맛 그대로일 터이다.

   
충남 태안군 원북면 원풍식당에서 만난 ‘박속밀국낙지탕’ 한 상 차림.
본격적인 여름의 시작이다. 우리 민족은 여름철이면 계절을 건강하게 보내기 위해 다양한 보양음식으로 복달임을 했다. 대표적으로 개장국이나 삼계탕 그리고 자라·잉어를 넣고 조리한 용봉탕, 다양한 해산물로 만든 해신탕 등의 음식이 있겠다. 그 외에 인삼 전복 장어 낙지 등도 스태미나 음식의 주요 식재료로 활용되고 있다.

그중 낙지는 ‘갯벌의 산삼’이라 불릴 정도로 피로 해소에 탁월한 효과가 있어 ‘주저앉은 소도 벌떡 일으켜 세운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도 “회와 국, 포 등을 만들기에 좋다. 이것을 먹으면 사람의 원기를 돋운다”고 전한다. 때문에 낙지는 다양한 요리의 주재료로 널리 쓰이는 보양식 계의 팔방미인이라 할 수 있겠다.

■박속+밀국+낙지

충남 태안반도의 태안, 서산지역은 ‘박속밀국낙지탕’이 이 지역 소울푸드인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태안의 원북면, 이원면 지역은 ‘박속밀국낙지탕의 발상지’이다. 가로림만 갯벌에서 손으로 잡은 ‘손낙지’를 박 속을 긁어낸 ‘박속’과 함께 넣고 수제비나 칼국수를 끓여 먹는데, 이것이 바로 박속밀국낙지탕이다.

태안반도의 가로림만은 날물이 날 때 드넓은 갯벌이 끝없이 펼쳐지는 지역이다. 이곳에는 다양한 갯벌 생물이 지천으로 생명 활동을 하는데, 그 대표적인 생물이 낙지이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시절, 이곳에서 낙지는 허기를 메워주던 가장 흔한 먹거리 중 하나였다.

먹을 것이 부족한 춘궁기에는 어느 지역이든 모자란 양식을 대신해 밀가루로 ‘수제비’나 ‘칼국수’ 등을 해 먹었는데, 이곳 사람들은 밀가루로 만든 국물 있는 음식이라 하여 ‘밀국’이라 했다. 이때 낙지를 한데 넣어 끓여 먹었는데, 맛도 좋을 뿐 아니라 든든한 한 끼 식사로도 안성맞춤이었다. ‘밀국’보다 낙지가 더 많은 곳이기에, 밀국에 낙지를 넉넉히 넣고 든든하게 배를 채웠던 것. 이것이 ‘밀국낙지탕’이다.

■천혜의 가로림만

   
태안의 시장에서 파는 가로림만 낙지.
그런데 ‘밀국낙지탕’에 왜 박속이 들어간 것일까? 원래 태안은 예부터 ‘박’을 많이 재배했다. 주거 공간이 주로 초가집이었던 시절, 지붕 위에는 늘 커다란 박 여러 덩이가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이 박은 태풍과 장마에서 집을 보호해주기도 했거니와 바가지 등 집안 살림살이로, 다양한 음식의 재료로도 널리 유용했다. 그런 지역 특색이 있다 보니 ‘밀국’을 만들어 먹을 때는 꼭 박속을 함께 넣어 음식을 늘려서 먹곤 했다. 예전에는 박속을 된장이나 국에 넣고 끓여 먹거나, 지져서 먹거나, 전을 부쳐 먹기도 했고, 낙지와 함께 가마솥에 한데 넣어 찌개를 해 먹기도 했다고. 그러니 밀국낙지탕에도 박속이 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다.

박속을 긁을 때쯤, 가로림만 갯벌에서는 가장 부드럽고 맛있는 크기의 낙지 새끼가 잡힌다. 이 낙지 새끼를 잡아 박속밀국에 함께 넣어 먹게 되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음식이 박속밀국낙지탕이다.

■원북면 원풍식당을 찾아가다

   
박속, 칼국수, 수제비가 듬뿍 들어간 밀국.
박속밀국낙지탕에 들어가는 낙지는 어미 낙지가 산란한 뒤 10~15㎝로 자란 새끼 낙지로 부드럽고 담박하다. 밀이 날 무렵 잡힌다고 하여, 또는 밀국에 넣어 먹는 낙지라 하여 ‘밀국낙지’라 한다.

이 ‘밀국낙지’는 6~8월 여름 전후 한 철만 먹을 수 있는 별미로 꼽힌다. 한입 크기이기에 한 마리를 통째로 먹는데, 먹는 방법은 산 채로 젓가락에 돌돌 말아 마늘을 듬뿍 넣은 소금참기름장이나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식인데 그 맛이 일품이다. 지역 사람 중에는 ‘염불보다 잿밥’이듯 ‘박속밀국낙지탕’보다 ‘밀국낙지’ 먹는 재미로 한 해를 기다리는 이도 많다고 한다. 조선 시대 낙향한 선비들이 즐겨 먹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태안 원북면의 ‘원풍식당’에서 ‘박속밀국낙지탕’과 마주한다. 원풍식당은 현재 제일 오래된 ‘박속밀국낙지탕’ 전문점. 가로림만 손낙지로 조리한 ‘박속밀국낙지탕’을 최초로 메뉴로 개발해 상업화했다고 하는데, 40년 넘게 영업해오고 있다. 낙지가 없으면 문을 닫을 정도로 원조 음식점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가 높다.

■담백·은근·시원하고 깊다

   
박의 하얀 속
박속을 넣은 육수가 끓을 동안 우선 ‘밀국낙지’를 먹는다. 전라도의 ‘낙지호롱’처럼 나무젓가락에 감아서 통째로 먹거나, 낙지를 ‘탕탕이’처럼 토막을 내 회로 먹는 것이다. 어떻게 먹어도 밀국낙지는 연하고 오돌토돌하고 달큼하다.

산낙지회를 적당히 맛본 뒤에는 나머지 낙지로 ‘박속낙지탕’을 해 먹는다. 우선 살아있는 낙지를 끓는 육수에 넣고 살짝 데친 후 바로 꺼내서 맑은 간장소스나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다. 특히 이곳 간장소스는 개운하면서도 낙지의 단맛을 더욱 부추기는 매력이 있다.

대가리는 먹통이 다 익을 때까지 충분히 익혔다가 먹는데, 먹통의 고소함이 끝 갈 데가 없을 정도다. 낙지는 너무 익히면 질겨지고 낙지 본연의 풍미를 잃을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낙지로 적당히 배를 채운 뒤 남은 국물에 ‘밀국’을 만들어 먹는다. 박속을 나박나박 썰어서 낙지와 함께 파 고추 마늘 등속을 넣어 육수를 만드는데, 끓이면 끓일수록 담백하면서 은근하게 퍼지는 단맛과 시원함이 깊다. 낙지에서 우러나오는 진한 감칠맛도 간과하기 어렵다.

■본고장서 즐기는 복달임 음식

박속밀국낙지탕 중 마지막에 먹는 ‘밀국’은 낙지로 진하게 우려낸 박속 국물에 수제비나 칼국수 면을 넣어 끓여 먹는다. 밀가루 속 글루텐의 시원하면서도 걸쭉한 느낌과 박속, 파, 양파 등에서 우러나오는 시원함과 깔끔함이 서로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면발도 좋지만, 국물 또한 냄비 바닥을 싹싹 비우게 하는 매력이 있다.

원풍식당 주인장 목예균(73) 씨는 “밀국에 박속을 넣으면 무를 넣은 것보다 훨씬 국물이 시원하고 담백해진다”며 “낙지 고유의 맛과 박속의 개운한 국물이 어우러져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것이 태안 고유의 토속음식 박속밀국낙지탕”이라 설명한다.

   
박속밀국낙지탕. 태안·서산 사람에게는 여름철 보양식으로 널리 사랑받는 소울푸드. 이즈음이면 지역마다 그 지역만의 특산 식재료로 여름철 복달임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복달임 음식 또한 푸드 마일리지가 적은 음식이 건강에도 좋을 터.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됐다. 지역마다, 개인마다 입맛에 맞는 복달임 음식으로 자칫 잃어버리기 쉬운 여름 건강을 챙기고 살피는 것도 좋은 일이다.

시인·동의대 음식문화해설사 과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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