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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준의 그 고장 소울푸드 <28> 남해·삼천포 앵아리

커서 붕장어 될 줄 알았나…배고픈 시절 국 끓여 허기 달래던 그 생선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4-23 18:43:12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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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제 남해 사천 해안지역선
- 예부터 익숙한 반찬거리
- 백어·실치·사백어와 헷갈리지만
- 앵아리는 붕장어의 자어

- 4·5월 멸치잡이 그물에 걸려
- 회무침·국으로 밥상에 올라
- 대 올라온 시금치 듬뿍 넣고
- 팔팔 끓인 구수한 된장국은
- 바닷마을 따뜻한 추억의 음식

“이놈 이름이 뭡니까?” “앵아리요~” “원래 이름은요?” “앵아리요~!” “실치인가…?” “아니, 그냥 앵아리라니깐요~!” 4월이면 경남 사천시 삼천포 중앙시장 어물전에서 한 생선을 두고 심심찮게 벌어지는 광경이다.
   
앵아리로 만든 시금칫국과 회무침, 계란찜.
갑오징어, 숭어, 가지메기(농어의 치어), 털게(왕밤송이게), 볼락…. 봄철 수산물이 어물전 고무 대야에 가득 차고 넘치는데, 그 사이에 아주 작고 투명한 생선이 빨간 대야마다 수북하게 담겨 있다. 마치 칼국수를 삶아 받쳐놓은 것 같다.

이 지역 사람들은 이 생선을 ‘앵아리’라 부른다. ‘앵아리’라…, ‘앵아리’로 정보를 얻으려 하니 아무리 찾으려 해도 알 수가 없다. 이 생선의 근거를 찾아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해 보니, 결론적으로 붕장어 자어(치어의 모습을 갖추기 전 유생 형태)임을 알았다.

■4, 5월이 제철

   
빨간 대야에 수북하게 담긴 앵아리.
이 앵아리는 전체적으로 몸이 투명하고 열을 가하면 하얗게 변한다. 체장 5㎝ 안팎에 칼국수 가락처럼 넓적하고 두께는 얇다. 붕장어 자어를 ‘버드나무 잎처럼 생긴 유생’이라 하여 ‘엽상자어’, 학명으로 ‘랩토세팔루스(Leptocephalus)’라 부른다.

현지 어민들의 말을 빌리면 “앵아리는 4, 5월쯤 봄 멸치를 잡기 위해 설치한 정치망이나 권현망, 남해 죽방렴 등에서 멸치와 함께 잡힌다”고 한다. 이 때문에 어민에게는 아주 친숙한 어족이다. 경남 연안의 정치망에서만 해마다 20t 정도 채취되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잡은 앵아리는 초고추장과 버무려 횟감으로 먹고 된장국 등으로 끓여 먹기도 한다. 앵아리는 그동안 거제, 남해, 사천 등 남해 지역 어민이나 지역민들에게는 백어, 사백어, 실치, 병아리 등으로 불리며 “붕장어 치어다, 흰배도라치 치어다” 등으로 의견이 분분했던 어족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연안에서 채취되는 조리용 치어로는 서해 당진지역에서 ‘실치’로 불리는 ‘흰배도라치 치어’와 남해, 사천지역에서 ‘앵아리’라 불리는 ‘붕장어 유생’, 거제지역의 ‘사백어’, 뱅어포를 만들던 하천 유역 ‘뱅어’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대부분은 초봄부터 한 달 남짓 기수 지역 연안에서 생활하다가 곧 자취를 감추는데, 백어, 뱅어, 실치, 병아리, 사백어 등으로 광범위하게 불리고 있다. 모두 살아있을 때는 투명하고 흰색이라 여러 명칭을 서로 범용하고 있는 것이다.

■진달래 ·벚꽃과 함께…

그중 앵아리는 남해, 삼천포 내만의 강을 낀 기수 지역에 벚꽃이 피고 질 때쯤 채취되는데, 봄철 별미로 초장에 버무려 먹는 회와 회무침, 갖은 봄나물과 함께 끓여 먹는 된장국, 앵아리를 넣은 계란찜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된다.

큰 소쿠리에 든 앵아리를 사들고, 수소문하여 삼천포 중앙시장 정든식당으로 간다. 앵아리로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어 달라고 하니, 술추렴을 하고 있던 초로의 여인들 가운데 한 명이 앵아리 이야기에 반색한다. 어릴 적 추억이 새록새록 남아있는 어족이라고 한다.

남해 출신 윤정숙(65) 씨에 따르면 앵아리는 보통 바다와 하천이 만나는 기수 지역에서 잡히는데, 진달래 개나리 피고, 벚꽃 피고 지고 철쭉 필 때까지 잡힌다. 윤 씨는 “어릴 적 봄이면 친구들과 앵아리를 고무신으로 살살 떠서 잡았는데, 그렇게 잡아 온 앵아리로 어머니는 초장에 조물조물 무쳐 무침회를 해주시거나 봄나물 듬뿍 넣고 된장국을 끓여주셨다”고 회상했다.

“시금치, 봄동, 겨울초, 냉이, 민들레…. 봄에 나는 나물이란 나물은 다 캐다가 된장 한 숟가락 뚝 떠놓고 풀어서 국을 끓여 먹었지요. 특히 이맘때는 겨우내 자란 시금치가 웃자라 대가 올라오는데, 이를 대시금치라고 해요. 이걸 손으로 뚝뚝 끊어서 끓여 먹으면 들큰하면서도 구수하고 시원한 것이 참 맛있었지요.”

배고프던 시절, 허기를 채우기 위해 먹었던 음식이기에 앵아리를 접하면 가슴 한곳이 아려온다는 윤정숙 씨. 그래서인지 지금은 아무리 좋은 재료로 조리해도 그 시절의 맛이 안 난단다.
■앵아리회·시금칫국·계란찜

“당시 지천으로 나던 앵아리도 한꺼번에 다 먹지는 못했어요. 많은 식구가 함께 먹어야 했으니까 양을 늘려서 먹었죠. 국이나 회무침에도 앵아리는 몇 마리 안 들어가고, 채소만 듬뿍 넣어 먹는 방식이었어요.”

국으로 끓여놓으면 시원하기에 집안 어른들의 술국으로도 좋았단다. 특히 숙취가 심한 날 어머니들은 가장들에게 겨울 무를 숭덩숭덩 썰고 앵아리 몇 마리 넣어 ‘앵아리뭇국’을 팔팔 끓여줬다고.

옆 테이블에서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한 어부는 “정치망 어장에 물 보러 갔다가 배가 고파지면 그물에서 턴 앵아리를 국수처럼 후루룩 몇 번 집어 먹고는 했는데 그러면 배가 불뚝 일어선다”며 말을 덧붙인다.

곧이어 앵아리 음식이 상에 차려진다. ‘앵아리회’ ‘앵아리시금치국’ ‘앵아리계란찜’ 등이다. 회나 회무침은 미끄러운 몸체 때문에 나무젓가락으로 국수 먹 듯 후루룩후루룩 먹는다. 입안에 넣고 씹으면 보들보들 매끌매끌한 식감이 재미지다. 마치 부드러운 곤약 씹 듯 입안에서 살살 돌며 혀를 간질인다. ‘앵아리회’는 초장에 비벼 한 숟가락 크게 얹어 입에 넣어야 제 맛이 난다고 지역 사람들은 거듭 강조한다. 기름장을 조금 쳐서 훌훌 마시듯 먹기도 한단다.

‘앵아리시금칫국’은 물에 된장을 풀고 대가 올라온 시금치를 넉넉하게 넣어 앵아리와 함께 끓여내는데, 시원하면서도 구수하고, 구수하면서도 담박하다. 시금치도 부드럽게 씹히고 앵아리도 칼국수처럼 살근살근 제 존재를 드러낸다. ‘앵아리계란찜’도 매끄러운 식감과 고소함이 더해져 잘 어울린다.

■앵아리와 함께 맞은 봄의 밤

일본에서도 이 앵아리를 ‘노레소레’라 부르며 다양한 음식으로 만들어 먹는데, 스시집이나 해산물 이자까야 등에서 봄철 별미로 즐기는 식재료이다. 주로 애피타이저나 회로 ‘생강을 가미한 폰즈 소스’에 찍어 먹거나 ‘미소된장국’에 몇 마리 넣어 먹기도 한다.

   
이미 시장은 파하고 밤 또한 깊어가는데, 이 식당에는 여러 사람이 모여 앵아리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술 한 병이 두 병이 되고, 세 병이 되고, 이윽고 열대여섯 병이 될 때까지 이야기는 끝날 줄을 모른다. 20여 년 전 삼천포에서 처음 앵아리를 접한 후, 오랜만에 앵아리 음식으로 ‘오는 사람 가는 사람’ 한 잔씩들 권하는 자리이다. 이번 삼천포 앵아리 취재는 옛날을 그리워하는 삼천포 사람들의 추억을 모두 불러들이는 기분이다. 타지의 밤이 그렇게 잘 익어가는 봄날이다.

시인·동의대 음식문화해설사 과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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