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혹독한 환경서도 잘 자라고 청정
- 몸속 노폐물 정화 해독작용 탁월
- 계곡물로 키우는 ‘한재산’ 유명
- 통통한 줄기에 끝이 빨간 게 특징
- 불판에 구운 삼겹살과 찰떡궁합
- 둘둘 말아 한 점, 함께 구워 한 점
- 생선 찜요리·비빔밥·전에도 활용
- 데친 미나리강회에 새콤한 초장
- 봄날 술상에 향기로움 더해줘
봄의 기운이 완연하다. 이미 매화가 흐드러지고, 산수유 꽃이 곳곳에서 꽃망울을 터트렸다. 쑥, 원추리, 머위 등 봄나물 또한 땅을 뚫고 고개를 내밀었다. 이렇게 봄은 오는 듯 마는 듯하면서도 여러 곳에 봄의 기별을 알리고 있다. 그중 ‘미나리’는 봄 식탁에 가장 먼저 올라와, 봄을 알리는 ‘봄의 전령사’이다. 푸르게 싱그러운 색감과 향긋하게 감도는 기분 좋은 향으로, 사람들 입맛을 제대로 살려주는 봄철 대표 식재료이다. 미나리김치, 미나리무침, 미나리강회, 미나리비빔밥, 미나리전 등과 함께 복국이나 아귀찜 같은 다양한 요리에 널리 활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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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릇파릇한 미나리와 노릇노릇한 삼겹살이 불판 위에서 함께 맛있게 익어가고 있다. 한재미나리가 선사하는 최고의 봄 선물이다. |
미나리는 예부터 우리 민족이 즐겨 먹던 소채이다. ‘고려사’에 그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고려 시대부터 널리 재배했으리라 보고 있다. 한치윤의 ‘해동역사’에도 조선 시대 한양, 개성 등지에는 집마다 연못에 미나리를 재배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미나리 수요가 많았다. 당시 겨울에는 무김치를 담고, 봄에는 으레 미나리김치를 담아 먹었다고 전한다. 살짝 물에 데친 미나리강회로도 봄철 입맛을 돋우곤 했다고 한다.
■ 조촐한 듯 실속 꽉 찬 봄 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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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나리강회 |
미나리는 식재료로서가 아닌 다른 다양한 뜻으로도 문헌에 기록돼 있다. 대표적인 것이 ‘헌근(獻芹)’이다. ‘미나리를 바친다’는 뜻으로 미나리처럼 조촐하고 볼품없는 것을 선물한다는 것인데, 사대부가 자신이 바치는 정성을 낮추어 말하는 겸양의 의미를 담고 있다. ‘헌근지성(獻芹之誠)’이란 사자성어도 있다. 변변치 않지만 봄을 기별하는 나물이기에 첫 수확한 미나리를 임금님께 진상하는 것이다. 정성을 다하여 자신의 의견이나 선물을 올리는 신실한 마음을 뜻한다.
조선 시대에는 유생을 교육하던 성균관을 ‘근궁(芹宮)’이라 했다. ‘미나리 밭’이란 뜻이다. ‘미나리를 캔다’는 뜻의 ‘채근(采芹)’ 또한 성균관 유생들이 공부하는 과정을 이르는데, ‘훌륭한 인재를 발굴하여 키워낸다’는 뜻이 있다. 이는 ‘시경(詩經)’ 중 “반수에서 미나리를 뜯는다(思樂泮水 薄采其芹)”에서 유래했다. ‘반수(泮水)’는 중국 주나라의 인재 양성 교육기관인 ‘반궁(泮宮)’ 옆으로 흐르던 개천인데, ‘인재를 널리 발굴한다’는 뜻으로 쓰였다.
이처럼 미나리는 임금에 대한 충성, 사대부가의 정성을 다한 선물이나 의견에 비유되는가 하면, 인재 등용이나 교육기관을 상징하는 용도로도 활용되어 왔다. 이는 혹독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고, 더러운 물속에서도 청정하면서, 오히려 그 물을 정화하는 작용을 하는 미나리의 성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미나리는 사람 수명을 상징하는 채소로 아기의 돌잔치 상에 미나리를 데쳐 놓기도 했다. 큰 병 없이 어디서건 잘 자라는 미나리처럼, 아기가 오래오래 건강하게 잘 자라라는 염원을 담았다. ‘동의보감’에서는 “성질이 평하고 맛이 달면서 독은 없고 갈증을 없애며 머리를 맑게 하고 정을 채운다”고 기록했다. 그래서 생채로도 좋고 숙채로도 좋은 나물이 미나리이다. 해독 작용이 탁월하여 복국 등 독이 있는 음식 요리에 활용되기도 하고, 몸속 노폐물을 정화하는 작용 또한 한다. 아울러 진한 향으로 미각을 일깨워 식욕을 증진시키는 역할을 하므로 봄철 식재료로 더할 나위가 없다.
■ 화악산 맑은 계곡물 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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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나리김치 |
우리 부산 또한 미나리와 음식문화가 잘 어우러지는 지역이다. 미나리의 해독 작용을 이용한 복어 요리에서 메인 재료로 활용하기도 하고, 진한 향채를 선호하는 입맛으로 아귀찜, 대구뽈찜 등 각종 생선을 이용한 찜 요리에도 없어서는 안 될 식재료로 널리 활용된다.
요즘, 미나리로 전국적 명성이 높은 경북 청도군 한재를 찾았다. ‘한재’는 청도읍 음지리, 평양리, 상리 일대를 이르는 말인데, 전국 미나리 생산량의 10% 이상을 차지하는 대표적인 ‘미나리 생산단지’이다. 청도의 ‘한재미나리’는 1965년께부터 화악산의 깨끗한 계곡물을 활용해 키우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요즘에는 암반 지하수에 무농약으로 재배하기에 부드럽고 청정하면서도 독특한 향이 좋다고. 우리나라 최초로 ‘한재미나리’ 지리적 표장 등록을 하는 등 명품 미나리를 지향하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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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나리 비빔국수 |
한재미나리는 다른 지역 미나리보다 줄기가 통통하고 줄기 속이 꽉 차 있으면서 뿌리 쪽 줄기가 빨갛다. 개천에 자라던 미나리를 논에 옮겨 심어 현재의 한재미나리로 개량했는데, 일반 논 미나리보다 더 많은 과정을 거친다. 40~50여 일 동안 밤에는 물을 대고 낮에는 물을 빼는 과정을 거쳐야 양질의 한재미나리가 생산된다. 봄철이면 이곳으로 한재미나리를 맛보기 위해 길게 차량 행렬이 이어지는 진풍경을 연출하는데, 특히 한재미나리와 함께 먹는 삼겹살 구이가 봄철 별미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봄철 한재미나리를 삼겹살과 함께 불판에 구워 먹는데, 미나리가 삼겹살의 잡내를 잡아주면서도 담백한 고기 본연의 맛을 살려주기에 그렇다. 구운 삼겹살에 생미나리를 둘둘 말아 먹거나 미나리를 가위로 먹기 좋게 잘라 불판에 수북이 올려 곁들여 구워 먹기도 한다. 삼겹살의 고소한 맛 위에 풋풋한 미나리의 향긋함과 아삭함이, 먹는 사람에게 봄의 식탁을 더욱 풍요롭게 느끼게끔 하는 것이다.
■ 한재미나리 삼겹살의 ‘마력’
‘한재미나리와 함께 먹는 삼겹살’은 농장마다 미나리를 선별하고 출하하는 비닐하우스 등에서 구워 먹을 수가 있다. 이곳에서 미나리를 사서 제공된 불판에 구워 먹는데, 미나리 외에는 별다른 것이 없기에 삼겹살이나 구울 거리 등은 미리 준비하거나 인근 식육점에서 배달시켜 먹어야 한다. 한재미나리 전문 식당에서 즐기는 방법도 있다. 미나리 삼겹살, 미나리비빔밥, 미나리전, 미나리볶음밥 등을 맛볼 수 있다. 미나리 양념 무침에 참기름과 김 가루 조금 올려 밥과 함께 비벼낸 ‘미나리비빔밥’은 미나리의 아삭한 식감과 향긋한 봄 냄새를 제대로 선사한다. ‘미나리볶음밥’은 먹고 남은 삼겹살을 잘게 잘라 미나리와 함께 볶아주는데, 삼겹살의 느끼함을 잡아주면서 미나리 특유의 향긋함이 입안을 개운하고 청량하게 해준다.
미나리강회와 미나리전은 오랜 지인과 한잔 술을 곁들이기에 좋은 음식이다. 좋은 술 입에 머금고 미나리전 한 젓가락 길게 찢어 먹으면 봄 항기가 온몸으로 전해지며 흔쾌해진다. 미나리강회를 안주 삼아 새콤달콤 초장에 찍어 먹는 것 또한 어디에도 비할 바 없는 봄날의 술상 풍경일 것이다. 미나리 상에 술 한잔으로, 그렇게 봄밤은 바야흐로 도도하게 흘러가는 것이다.
시인·동의대 음식문화해설사 과정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