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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의 그곳에서 만난 책 <53> 이진숙 소설가의 장편소설 ‘700년 전 약속’

보물 한 점 없는 보물섬, 고향 증도… 주옥같은 소설 한 권 생겼다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2-17 18:59:54
  •  |  본지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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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포해양유물전시관 찾은 작가
- 詩 새겨진 접시 본 후 소설 구상
- 보물선 발견된 전남 신안군 증도
- 선조 흔적 찾아온 고려 후손과
- 시루섬 카페 여주인 이야기 통해
- 10여 년간의 해저유물 인양에
- 수난 겪은 섬 사람들의 삶 녹여
바닷속에 수 세기 전 보물을 실은 배가 묻혀있다면…. 그 보물을 건져낸다는 상상만으로도 설렌다. 영화 같은 이야기다. 우리나라 바다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1975년 1월, 전남 신안군 증도면 방축리 도덕도 앞바다에서 어부의 그물에 청자가 걸려 올라왔다. 중국 원나라 때의 배가 고려를 거쳐 일본으로 가는 항해 도중 침몰한 것으로 밝혀졌다.

세상이 발칵 뒤집혔고, 1975년부터 1984년까지 바닷속 유물 발굴 인양 작업이 진행됐다. 작업을 위한 인력 등 외지 사람이 섬에 들어왔고, 10년 가까이 섬 주민의 어업 활동이 중단됐다. 유물을 노리는 도굴꾼까지 찾아왔다. 보물섬이라고 떠들썩했지만 유물은 모두 육지의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증도에는 오로지 ‘신안해저유물발굴비’ 하나만 세워졌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세월, 작은 섬 증도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증도 출신 이진숙 소설가의 ‘700년 전 약속’이 그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를 경남 산청에서 만났다.
   
이진숙 작가가 여동생이 운영하는 북카페에서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 ‘고향’도 신안, ‘떠나도’ 신안

이진숙 소설가는 1969년 전남 신안군 증도에서 태어났다. 증도에는 고등학교가 없다. 섬 아이들은 중학교를 졸업하면 육지로 나가 학업을 계속해야 했다. 이진숙은 목포여고를 졸업하고 경남 창원에서 회사를 다녔다. 초등학교 시절에 책 읽기, 글쓰기를 좋아했다. “섬에는 책이 부족했어요.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는데, 문 닫는 시간까지 버티다 쫓겨나곤 했죠. 학교 오가는 길에 친구들에게 내가 읽은 책 이야기를 들려줬는데, 그게 바닥나면 이야기를 지어내 들려줬어요. 친구들이 재미나게 들어주는 게 좋았어요. 여고 시절에는 목포대 주최 고교생 백일장에서 상도 받았죠.” 그는 글이 계속 쓰고 싶어 창신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재능이 있다고는 생각 안 했지만 글쓰기를 좋아하고 쓰는 동안 소설가가 됐습니다. 친구들은 저를 글 잘 쓰는 아이로 기억해주고, ‘결국 작가가 됐구나’라고 말해요.” 그는 ‘경남문학’ 소설 부문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첫 소설집 ‘카론의 배를 타고’를 냈고, 2016년 진주형평지역문학상을 받았다. ‘700년 전 약속’은 신안해저유물과 관련한 고향 증도의 이야기다.

이진숙은 현재 산청군 신안면에 살며 산청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에서 일한다. 여동생이 원지강변로에 연 북카페 ‘푸실’에서 그를 만났다. 카페에는 바느질과 뜨개질을 좋아하는 동생의 작품, 그림을 그리는 동생 친구의 작품 그리고 소박한 서가가 있다. 차분한 분위기의 카페에서 이진숙은 글도 쓰고, 동생을 돕기도 한다. 그가 현재 사는 곳 이름이 ‘신안’이라는 것이 신기했다. “우연이지만, 같은 이름이에요. 산청으로 오기 전 김해 장유에 살 때도 신안마을이었어요. 고향 신안군을 떠났지만, 여전히 저는 ‘신안’이라는 익숙한 지명 안에서 살죠.” 목포나 증도에서 작가를 만나지 못한 아쉬움이 녹는 순간이었다. 작가는 지금도 신안에 살고 있는 것이다.

■ 증도를 온전히 담은 소설

   
700년 전 약속 - 이진숙·2018·북인
이진숙은 고향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그는 책에 쓴 ‘작가의 말’에서 ‘700년 전 약속’을 쓰게 된 계기를 밝혔다. 목포해양유물전시관에서 본 백자접시에 새겨진 두 줄의 한시를 보며 소설을 구상했다고. 고향 증도에 대한 마음도 고백한다. “사람들은 내 고향을 ‘보물섬’이라 부른다. 한때 고향 앞바다에서 2만 점 넘는 보물이 올라왔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멸치젓국물처럼 물색 칙칙한 바다에서 끝도 없이 보물이 올라오던 모습은 장관이었다. 수만 점 보물이 올라오면 뭣하랴. 거기 사람들은 지금도 변함없이 가난할 뿐이다. 보물 한 점 없는 보물섬! 빛나고 값나가는 것은 영악한 이들이 싸 들고 가버렸고 남은 것은 가슴에 깊이 팬 생채기였다.”

소설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는 원나라에서 배를 타고 고려를 향해 가는 남편, 남편의 무사 귀환을 비는 고려 공녀 출신 아내 이야기다. 주요 이야기는 시루섬에 배 모양으로 지은 카페의 여주인 ‘도화’와 딸 ‘채목’, 중국에서 온 남성 ‘쾌영’을 중심으로 엮인다. “증도를 ‘진도’로 알아듣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옛 지명 ‘시루섬’을 썼어요.” 고려 공녀의 먼 후손인 쾌영은 선조의 흔적을 찾아 신안해저유물에 관심을 갖고 시루섬을 찾아온다. 유물이 발굴되는 동안 일어난 일은 카페 여주인의 회상으로 진술된다.

10여 년 세월이 흐르는 사이 섬 주민이 겪었던 고통은 컸다. 어업이 중단돼 생업을 이어가지 못하자 섬을 떠난 사람들도 있었다. 도굴꾼의 꾐에 넘어가 바닷속으로 들어갔다가 죽은 사람, 도굴 누명을 쓴 사람, 정신이 이상해진 사람도 있었다. 세상이 유물 발굴 보도로 시끄러운 동안 섬은 상처를 입었다. 지난 일들이 조금씩 밝혀지면서 쾌영과 도화 사이에는 천천히 사랑의 감정이 생겨난다. 남편이 무사히 항해를 마치고 돌아오길 기다리던 고려 공녀의 사랑이 700년 만에 이루어진 것은 아닐까.

   
이진숙은 자료 취재를 위해 인터넷에서 ‘증도사랑 모임’ 카페를 운영하는 고향 선배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도화’ ‘채목’ ‘쾌영’ 등 작품 속 인물의 이름은 모두 고향 친구와 어른, 학창시절 선생님 이름을 빌려왔다. 주요 배경인 카페도 실제로 증도에 있는 선박 모양 카페를 모델로 했다. ‘700년 전 약속’도 그 카페의 이름이다. “소설이 나온 뒤 친구들이 자기 이름 찾으며 책을 읽고 있다는 말을 들었어요." 친구들이 들려준 ‘유물과 관련한 우리 집 이야기’도 작품에 녹여냈다. 고향 증도가 통째로 소설 속에 있는 것이다. 해저유물 한 점 없는 증도이지만, 증도가 온전히 살아 있는 소설 한 권이 생겼다. 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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