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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의 그곳에서 만난 책 <52> 조현석 시인의 시집 ‘검은 눈 자작나무’

우리네 삶을 닮은 그의 시가 마음을 적신다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1-27 19:13:19
  •  |  본지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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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무살에 만난 문학 스승 이외수
- 그에게 글 대하는 자세를 배웠다

- 군대에서 시 300편을 쏟아내며
- 혼자 품고만 있던 시를 펼쳤다

- 일하고, 글 쓰고, 밥 먹고, 외롭고
- 일상을 담은 시는 곧 그의 인생
- 누구나 그렇게 살기에 더 짠하다

현재 가장 중요한 뉴스는 무엇일까. 일일이 챙겨보자니 은근히 귀찮다. 세상 돌아가는 상황은 알아야 하니 모른 척할 수도 없다. 누가 핵심만 추려서 전달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 점심은 무얼 먹을까. 지갑 사정에 맞춰서 든든하고 맛있는 한 끼를 먹어야 할 텐데 식당도 메뉴 선택도 쉽지 않다. 조현석 시인은 아침마다 출근길 커피숍에 앉아 페이스북에서 뉴스를 정리해준다. 맛있게 한 그릇 뚝딱 비운 백반 정식이나 국수 이야기를 하며 허기를 달래는 정을 나눈다. 그래서 그의 페이스북을 보고 있으면 ‘일하고’ ‘틈나는 대로 글 쓰고’ ‘밥 챙겨 먹고’ 사는 사람이 보인다. 그의 시집 ‘검은 눈 자작나무’도 그렇다. 일하고, 글 쓰고, 밥 먹는 시인이 보인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서 조현석 시인을 만났다. “점심시간에 맞춰 왔으면 맛있는 밥 함께 먹으려고 했는데….” 지하철 합정역 앞까지 마중을 나온 조현석 시인이 아쉬워했다. 그의 사무실까지 가는 길에는 아침마다 들르는 커피숍, 점심 먹고 돌아오는 길에 산책하는 작은 쉼터도 있었다.
   
조현석 시인이 서울 마포구 출판사 ‘북인’ 사무실에서 쌓인 책들에 기대어 서 있다. 시인이자 출판사 대표인 그는 ‘글’을 떠날 수 없다.
■마음 가득 시만 안고 살았다

조현석 시인은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할 때였어요. 학원의 지구과학 선생님이 어느 날 ‘너희들 중에 글 쓰고 싶은 사람 있어? 교무실로 와라’고 하시더군요. 고등학교 때 시가 쓰고 싶어 문예부에 들었는데 선배들 분위기가 좀 살벌해 그만두고 혼자서 시를 썼어요. 고3 때 신춘문예에 응모했는데 떨어졌어요. 내 마음에서 시가 떠난 적이 없었으니 ‘글 쓰고 싶은 사람 있어?’라는 말에 즉각 반응했지요. 나중에 가서 보니 나 혼자뿐이었어요. 선생님이 ‘내 친구가 소설가야’ 하면서 주소 하나를 적어주셨는데, 그분이 이외수 소설가였습니다.”

강원도 춘천 샘밭이란 주소가 적힌 쪽지를 들고 물어물어 찾아갔다. 문학에 깊숙이 발을 담그는 삶이 시작된 것이다. “매주 주말에 이외수 선생님을 찾아갔습니다. 토요일 아침에 서울을 떠나면 점심시간 지나 도착했어요. 그냥 옆에서 밤새 원고 쓰는 것을 지켜봤습니다. 밤새워 소설 쓰기 위해 문장을 몇 번이나 고치는 걸 보았죠. 가난하고 힘들고 외로운 작가의 자세, 문학을 대하는 마음가짐, 이런 걸 느꼈습니다. 그게 공부였지요. 선생님은 제 첫 문학 스승이십니다.”

   
검은 눈 자작나무- 조현석·2018·문학수첩
서울예전 문창과 시절에는 학보사 기자를 거쳐 편집장을 지냈다. 졸업하고 강원도 화천에서 군 복무를 했다. “군대에서 쓴 시가 300여 편이에요”라는 시인의 말에 깜짝 놀랐다. “저, 군 생활 아주 잘했어요. 사단장 표창도 받았는걸요. 성실하게 국방의 업무를 완수했습니다.” 군대에서도 그는 교육과 훈련 시간 외에 진중문고를 읽고, 시를 썼다. “28개월여 군 복무 동안 두 번의 정기휴가를 12월 5일 전후해 나왔습니다. 신춘문예 응모 때문이었죠.”
등단은 제대한 해에 이루어졌다. “제대하고 출판사에 입사해서 일하던 1987년 12월, 경향신문 당선 통보 전화를 받았어요. 1988년 당선인이죠. 고3 때부터 매년 응모했으니까, 그야말로 칠전팔기로 당선된 겁니다.”

시가 쓰고 싶어 매주 서울과 강원도 춘천을 오갔고, 군대에서도 시에 많은 시간을 바쳤던 사람. 마음 가득 시만 안고 살았던 그는 시인이 되었다. 중앙일보 출판국의 ‘문예중앙’, ‘월간중앙’, 경향신문 편집국 ‘매거진X’팀에서 10년 넘게 기자로 근무했다.

현재 출판사 ‘북인’ 대표로 일하고 있다. 시집 ‘에드바르트 뭉크의 꿈꾸는 겨울 스케치’ ‘불법, …체류자’ ‘울다, 염소’를 냈다. ‘검은 눈 자작나무’는 등단 30주년을 맞아 2018년 12월에 맞추어 낸 네 번째 시집이다.

■일하고, 밥 먹고… 켜켜이 쌓인 삶

출판사 북인 사무실은 책으로 가득했다. 시인이면서 책을 만드는 일을 하는 그는 ‘글’을 떠날 수 없다. 문학이 그의 생업이다. 남의 책을 만드는 동안 자신의 시집 출간이 점점 늦어졌다. 그래서 ‘검은 눈 자작나무’는 더 반가운 시집이다. 이른 아침 출근하고, 일하고, 시 쓰고, 사람들 만나고, 밥 먹고, 나이가 들고, 조금씩 아프고, 외롭고…. 시집은 이 세상에서 일을 하며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삶이 어떤 건지 한 장면씩 천천히 보여준다.

시 ‘노동절 백반 한 상’은 일을 해야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삶의 진실을 느끼게 한다. “빈 상점 늘어나고 이제 몇몇 상가만 남은 작은 상가 시장/ 그 안 호남식당 플라스틱 의자에 홀로 앉아 먹는 백반/ (중략) 집으로 돌아와 맥주 한 캔 홀짝이다가 겨우 잠드는/ 오늘은 누구든 쉴 수 있는, 붉은 메이데이/ 예나 지금이나 나는 쉬지 않는 강철노동자/ 뼈 빠지게 일해야만 산 입에 거미줄 치지 않는.” 맛이 있든 없든, 밥상을 받기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건 얼마나 떳떳한가.

다른 시 ‘쉰’에서는 힘들지만 뚜벅뚜벅 걸어온 인생의 길이 보인다. “배낭 꾸렸다 되도록 아주 가볍게. 걸을수록 거듭거듭 산비탈만 나타났다/ 마음이 불편하면 몸이 알아서 미끄러지고/ 몸이 불편하면 마음이 알아서 미끄러져주고/ 허구헌 날 늘 미끄러졌던 기억들, 이젠 정겹다.”

   
미끄러지면서도 우리는 한 발자국씩 걸어가고 있다. 따뜻한 밥 한 그릇 꼬박꼬박 먹어온 덕분이다. 일하고, 밥 먹고…. 누구나 그렇게 살고 있다.

조현석 시인도 마찬가지다. 그 삶의 단면들이 켜켜이 쌓인 시집을 몇 번이고 펼쳐 보게 된다.

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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