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약점을 까발리면서 던지는 비웃음, 감정 노동자들이 모멸감을 느끼면서 짓는 억지웃음, 출연자에게 마조히즘을, 시청자에게 사디즘을 강요하는 TV 예능 프로그램의 병적인 웃음….

이 모두는 병든 사회의 징후다. 한국인과 한국 사회가 빚어내는 일상의 문법을 추적해온 사회학자인 저자는 ‘함께 웃을 수 없었던 경험’이 이 책 ‘유머니즘’을 쓰게 된 계기라고 토로한다. 함께 웃을 수 없다는 것은 단절의 징표이며, 때론 심각한 폭력이 될 수도 있다. 상대방을 조롱하거나 특정 집단을 비하하는 유머는 불쾌함과 모멸감을 자아낸다.

책은 웃음이 인류에게 준 효용, 유머의 본질, 건강한 유머의 조건과 사회적 의미를 문학과 철학, 영화, 신문 기사 등 여러 사례를 들며 탐색한다. 총 5부로 구성돼 있는데 1부는 웃음이 피어나는 과정, 2부는 유머의 문법, 3부는 유머 감각의 여섯 기둥, 4부는 제대로 된 웃음을 위한 맥락에 대한 감수성 그리고 5부는 유머가 의미의 창조이고 생각의 해방구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유머 감각은 단시간에 늘지 않는다. 자기만의 독특한 관점(포착), 의미를 변주하는 언어의 연금술(표현), 가상의 시공간을 빚어내는 상상력(연기), 세상에 대한 경이로움의 감각(동심), 엉뚱한 것을 감행하는 배짱(넉살), 사소한 농담에도 화답하는 여유(공감)를 갖고 오랜 기간 의식적으로 연마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한국 사회에는 좋은 유머가 절실하다. 유머니즘은 ‘유머’와 ‘휴머니즘’을 조합한 개념이다. 유머를 위한 유머가 아니라 ‘인간애로 연결되는 유머’라는 의미다. 좋은 유머는 인간성을 이해하고 실현하는 바탕이 되며, 관계의 본질을 드러내는 지표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상대방에 대한 호의와 배려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바로 이것이 유머가 영국에서 젠틀맨 십의 중요한 요소로 권장되는 이유다.

여러 관점을 넘나드는 고차원적인 커뮤니케이션이고, 세련된 지성과 감성이 요구되는 것이 바로 유머니즘이다. 새해에는 유머니스트가 되자.

정홍주 기자 hjeye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