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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가 남긴 갈등의 유산…청산은 우리 몫입니다”

장편소설 ‘유산’ 펴낸 박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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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강점기, 일본 편에 서서
- 부귀영화 쌓은 친일파 가문
- 그 후손의 사유와 반성 통해
- 독립운동 가치·기상 재조명

- “민족 위해 희생한 독립투사들
- 고마움과 빚진 마음 늘 상존
- 친일인명사전 등 자료 탐독
- 한국 이념갈등 뿌리 찾다 보니
- 꼭 써야겠단 강렬한 생각 들어”

소설가 박정선이 최근 낸 장편소설 ‘유산’(산지니 펴냄)은 한국의 독립운동과 친일 청산을 주제로 다루는 문학 작품 창작 흐름에서 새로운 물꼬를 텄다.

   
박정선 작가가 최근 펴낸 장편소설 ‘유산’을 들고 부산 서구 동아대 석당박물관에 전시된 독립지사 안중근 선생의 ‘견리사의견위수명’ 유묵 앞에서 인사를 올렸다. ‘유산’은 일제강점기 친일파 문제를 새로운 각도에서 깊이 고민하는 소설이다. 김성효 전문기자
장편소설 ‘유산’은 일제강점기에 고초와 갈등을 이겨내고 민족 독립 투쟁에 헌신한 주역이나 그런 독립투사 편에 선 사람이 주인공이 아니다. 반대로, 제국주의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는 데 협력하거나 앞장서 반민족행위를 해 부귀와 영화를 일군 사람의 자손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친일 반민족 행위를 저질러 재산과 ‘명예’를 일군 집안에서 태어나 호의호식하며 좋은 학교에 다니고, 사회가 선망하는 직업을 갖게 된 주인공은 삶 속에서 만난 몇 번의 계기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진중하게 오래 돌아보고 반성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가문의 유산에 대해 ‘거사’를 실행하기로 마음먹는다.

소설은 그 과정을 진지하고 촘촘하게 보여주면서 묻는다. “‘우리’가 ‘우리’에게 먼저 사과하지 않으면서 일본이 진정하게 일제강점에 대해 사과하기를 바라기는 어렵다.”

여기서 앞의 ‘우리’는 친일 반민족 행위를 저지른 세력이고, 뒤의 ‘우리’는 한민족이다. 박정선 작가를 부산 서구 동아대 석당박물관 2층에 전시된, 독립투사 안중근 선생이 쓴 유묵(보물 제569-6호) ‘견리사의견위수명(見利思義見危授命)’ 앞에서 만났다. 이 유묵은 ‘이익을 보게 되면 그것이 의로운 것인지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바친다’는 뜻이다. 의롭지 않은 이익이라면 취하지 말 것이며, 나라나 공동체가 위기에 처하면 목숨을 바친다는 이 유묵은 소설 ‘유산’에서도 중요한 계기가 된다.

“소설은…이걸 반드시 써야 한다는 강렬한 생각이 들 때는 써야 한다고 작가들은 믿죠. 그것을 작가의 소명이라 하고요. 누가 얼마나 읽어줄까 계산하는 건 작가답지 않다고 배웠어요.” 박 작가는 2011년 장편소설 ‘백 년 동안의 침묵’(푸른사상)을 냈다. 억만금 재산과 가문의 에너지를 모조리 독립운동을 위해 쏟아부은 ‘견리사의견위수명’의 대명사 우당 이회영(1867~1932) 집의 높은 기상과 가치를 조명한 역사소설이다.

   
“일제강점기에 독립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고 민족공동체를 위해 싸운 분들에 대한 고마움과 빚진 마음이 늘 컸어요. 이 문제를 제대로 풀지 않으면 지금 한국 사회의 종잡기 힘든 좌우 갈등을 풀기 어렵겠다는 판단도 있었고요. ‘유산’에서 주인공 이함은 ‘친일파 가문’에서 자라 판사가 된 사람이죠. 어릴 때는 집안 사연을 몰랐다가 자라면서 깊이 사유하고 반성에 이르는 인물인데 저 또한 이함과 비슷한 점은 없을까도 생각했습니다.” 그는 “임종국 선생의 ‘친일문학론’, 반민특위의 역사,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을 탐독하면서 그리고 한국 이념 갈등의 뿌리를 더듬어가면서 ‘내가 이것을 알게 된 이상 꼭 써야 한다, 누가 읽든지 말든지’ 하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박 작가가 300쪽 분량의 ‘유산’을 쓰기 위해 독하게 준비했음을 책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이 편집돼 출간되기 전의 파일도 구해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읽었죠. 그 자료에는 더 많은 정보가 있었어요.” ‘유산’에는 반민특위의 슬프고 안타까운 약사부터 벤담과 밀의 공리주의 철학에 관한 검토, 전태일 열사가 산화한 지 6년이 흐른 뒤의 평화시장, 작고한 문인 전혜린 등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한 사람, 친일파 후손들의 조상 재산 되찾기 준동, 친일반민족행위자와 후손의 논리, 일제에 의한 위안부 동원의 참상 등이 쉴새 없이 나온다. “판사 이함의 ‘함’은 모든 것을 고한다는 뜻입니다.”

엘리트 과정을 밟은 여성 판사 이함은 어릴 적 고향 친구 준호를 잊지 않는다. 지독하게 가난하고 불우했으나, 꼿꼿했던 준호 가족이 그런 가난과 고난을 안게 된 것이 독립운동을 했던 데서 출발했음도 알게 된다. 소설은 친일파 문제도 추상적으로 뭉뚱그려 다루지는 않는다. 예컨대 이함 판사에게 큰 영향을 주는 친할아버지는 친일을 했다. 그러나 적극적이고 악독한 친일분자는 아니었다. 반성할 줄도 안다. 작은할아버지는 일제 고위 경찰간부를 지냈고 그 뒤로도 한국 독재정권에 줄을 대 권력을 누린다. 이함 판사의 어머니는 친일파 후손의 이기주의와 정당화 논리를 대변한다. 이함 판사의 여동생은 친일로 일군 가문의 영화를 비판한다.

다양한 인물이 씨줄 날줄이 돼 끌고 가는 이야기는 진중하게 울린다. 이함은 ‘우리가 우리에게 먼저 사과하지 않는다면, 일본은 진정한 사과는커녕 한국 상황을 즐길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리고 친일 조상이 남긴 거대한 유산을 향한 거사에 나서면서 반성의 정점으로 나아간다. 반성을 펼쳐 보이면서 소설은 새 물꼬를 튼다.

조봉권 문화전문기자 bgjo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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