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의 평범성’ 개념 알린 철학가
- 사회문제 대처하는 지혜 담아
- SNS 언급 늘며 다시 관심폭발
- 저작 연구물 아닌 실용적 접근

저자의 문제의식과 기획의도가 결정(結晶)처럼 맺혀 있는 책의 서론을 보자. “최근에는 소셜미디어에 아렌트에 대한 토론 및 언급들이 넘쳐나고 있다. 왜 이처럼 관심이 증가하는 것일까. 그리고 왜 최근에 들어서야 그녀의 업적에 대한 관심이 폭발한 것일까?”

젊은 날의 한나 아렌트. 그는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뒤 무려 18년간 무국적 상태로 살았다. 이 경험은 그가 난민의 어려운 상황에 관해 민감하게 사유하도록 이끌었다. 한길사 제공

이렇게 물은 뒤 저자는 밝힌다. “여기서 나는 아렌트 저작에 대한 연구를 제공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가 오늘날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과 난점들에 적합한 일련의 중심 주제들에 집중할 것이다. 나는 왜 오늘날 우리가 아렌트를 읽어야 하는지, 즉 그녀의 삶과 저작이 어두운 지금 시대를 어떻게 조명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다.”

미국의 철학자 리처드 J. 번스타인(86)이 쓴 ‘우리는 왜 한나 아렌트를 읽는가’는 ‘지금의 세계’ ‘지금의 한국’에서 왜 사상가 한나 아렌트(1906~1975)를 찾아 읽을 필요가 있으며, 어떤 점에서 그의 사상과 삶이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안내한다. 인문학은 결국 역사·철학·예술을 공부해 ‘오늘-여기-나-우리’가 직면한 문제와 과제를 푸는 데 도움을 주는 ‘거대한 실용’의 세계라고 전제할 때, 이렇게 앞서간 사상가를 통해 오늘의 문제에 접근하는 책은 반갑다.

한나 아렌트는 특히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저서와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으로 한국 독자들에게도 꽤 널리 알려졌다. 더구나 2016, 17년 한국의 ‘촛불혁명’ 시기에 ‘국정농단’이 도대체 어떻게 해서 벌어졌는지 따져보고 생각하는 과정에서 아렌트가 제시한 ‘악의 평범성’이 관심을 끌면서 더 유명해졌다.

본문이 170쪽(옮긴이 후기와 참고문헌 등은 제외)으로 짧은 편인 이 간명한 책은 아렌트라는 철학자를 통해 ‘오늘의 세계’를 비춰보고, 알맞게 인식할 길을 안내한다. 그 점에서 아렌트가 쓴 저작을 직접 읽는 것과는 또 다른 재미와 보람을 준다. 그 가운데서도 ‘난민’과 ‘가짜뉴스’라는, 오늘날 세계의 다수 나라 많은 사람이 직면한 문제에 관해 아렌트가 앞서 길을 열고 축적한 통찰은 인상 깊다.

아렌트가 정치의 품격을 제시하고자 형성한 개념인 행위, 복수성, 탄생성, 말, 현상, 공적 공간, 공적 자유, 권력, 설득, 정치적 판단 등에 대해서도 저자는 일관성 있게 풀어내 아렌트를 조망하게 해준다.

번스타인은 아렌트에 대해 비판적으로도 접근한다. 예컨대 ‘인종주의와 분리’에서 아렌트가 쓴 ‘리틀록에 대한 성찰’을 다루면서 “아렌트가 유럽적 맥락에서 발생한 이데올로기적 체제로서 인종주의의 폭력성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었지만, 미국 흑인들의 경험에 대한 그런 통찰의 적실성을 올바로 평가하는 데 실패했다”고 비평한다.

아렌트에 관해 궁금해할 독자가 많을 한국에서 이 간명한 책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책의 부제는 ‘난민·악의 평범성·혁명정신’이다.

조봉권 문화전문기자 bgjo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