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개 구·군 121개 시비 탐방
- 사연과 지역성·문학성 담아

부산 전역의 시비(詩碑)를 찾아가는 독특한 문학기행서가 나왔다. 부산여성문학인협회가 기획하고 15명의 회원이 발로 뛰어 엮은 책 ‘부산의 시비를 찾아서’(사진)다.

	부산 남구 이기대도시자연공원에 세워진 최계락 시인의 ‘봄이 오는 길’ 시비.

시비만 찾아가서 보고 사진 찍고 감상 몇 줄 적는 게 무슨 기행서씩이나 되겠나 싶지만, 읽다 보면 부산사람이라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동네에 찾아가서 풍광도 즐기고 있는 줄도 몰랐던 시비에 새겨진 시구 한 줄 읽는 것도 낭만적이겠다 싶다. 부산에 사연을 둔 시와 시비가 이렇게 많았나 싶어 신기하기도 하다. 부산 16개 구·군 가운데 북구와 연제구를 제외한 14곳에 시비가 있다. 해운대구가 가장 많다. 춘원 이광수의 ‘해운대에서’, 이안눌 ‘해운대에 올라’, 이은상 ‘오륙도’, 권반 ‘해운대’, 윤동주 ‘별 헤는 밤’, 신석정 ‘그 먼나라를 알으십니까’, 이육사 ‘청포도’ 등 무려 24개가 있다. 사상구가 22곳으로 그 뒤를 잇는다. 김소월 ‘못잊어’, 김남조 ‘겨울바다’, 박인환 ‘세월이 가면’, 이해인 ‘산에서 큰다’,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지는’, 김춘수 ‘꽃’, 박노해 ‘노동의 새벽’ 등 시비가 이곳에 있다. 박목월 ‘나그네’, 김용택 ‘참 좋은 당신’, 나태주 ‘풀꽃’ 등이 있는 부산진구와 유치환 ‘그리움’, 최계락 ‘외갓길’, 정철 ‘훈민가’ 등이 있는 중구가 나란히 15개의 시비를 품고 있다. 필자들은 부산에 있는 121개(문학비 5개 포함)의 시비를 모두 찾아가 그 사연과 연고, 시와 시인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래서 문학기행서라 할 만하다.

시인들은 주로 자신이 사는 지역의 시비를 탐방했다. 시비가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을 자세히 안내하고, 그곳의 풍광을 묘사했다. 또 시에 대한 해설과 감상, 작가의 내력, 그리고 시의 역사성과 당대의 시대정신도 기록하려 애썼다. 좋다, 좋다 하고 마는 게 아니라 시비에 새겨진 시의 내용과 지역과 연관이 있는지, 시민에게 유용한지, 시비가 서 있는 장소는 적절한지, 나무가 숲이 시비를 가리고 있는 않은지, 시비가 없는 지역은 왜 없는지를 검토했다.

해안절경을 낀 남구 이기대길의 시비를 탐방하던 오지영 시인은 특정 문화단체가 시비를 체계적으로 관리해 관광자원으로서 가치를 높였으면 좋겠다고 제언하고, 천재 시인 김민부의 고향인 좌천동과 김민부 전망대를 돌아보던 정말순 시인은 이곳에 그를 기리는 시비 하나 없음을 안타까워한다.

부산여성문학인협회 명예이사장으로 책 집필에 참여한 정영자 문학평론가는 “모든 시비들이 일정한 문학성을 가진 것도 아니고, 건립된 장소와 지역적 연관성을 가진 것도 아니며 제대로 돌비에 각을 하지 않고 조악하게 만든 것도 있었다”며 “부산의 시비를 조사하고 기록하는 과정은 결국 시비를 선별하고, 시비를 건립할 때 참고해야 하는 대안을 모색하는 방향을 담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따라서 “이 책은 부산 시비의 현황, 지역성, 문학성, 지도, 문제점, 대안까지를 포함하는 최초의 책”이 될 것으로 자평했다.

신귀영 기자 ky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