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큰돈 드는 미술품 수집
- 전문가에만 의존한다면
- 돈 쓰는 사람밖엔 안돼
- 개인의 미적 안목 키워야

고미술 수집가인 김세종(평창아트 대표)은 한국의 대표적인 민화 컬렉터다. 그는 이달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자신이 소장한 민화만으로 전시를 연다. ‘조선민화걸작전: 내일을 그리다’라는 전시다. 전시관 하나를 개인 소장품만으로 채울 정도로 컬렉션이 대단하다.

	고미술 수집가 김세종 저자가 소장한 우리 민화. 저자는 작품이 간직한 고유한 아름다움에 집중한다. 아트북스 제공

그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김세종은 ‘가난한 상인’ 이다. 어마어마한 큰손 컬렉터와 비교하면 그렇다는 뜻일 테지만, 컬렉션의 성패가 돈보다 안목과 비전에 달려있음을 강조하려고 하는 말일 것이다. 컬렉션의 맛은 멋모르고 예쁜 물건을 사들이던 20대 때부터 내로라하는 고미술 수집가가 되기까지의 시행착오와, 이를 통해 완성형이 된 수집 철학과 노하우를 쓴 책이다. 사들이고 내다 판 수집품이나 그가 아끼는 소장품에 관한 설명이 없는 것은 아니나, 컬렉션 그 자체의 즐거움을 말하기 위한 재료일 뿐이다.

저자가 컬렉션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미적 가치관이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크고 화려한 그릇에 욕망을 담으려 애쓰지 않고, 삶을 담을 수 있는 작은 질그릇이라도 좋으니 철철 넘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어릴 때부터 했고, 지금 수집 인생에서도 그 철학을 지키려 애쓴다고 한다.

미술품을 모을 때 유명하고 비싼 작품보다 남들이 하찮게 생각하는 작품에서 그 고유의 아름다움을 찾으려 노력하는 자세도 그런 철학에서 나온 것이다. 누구나 좋아하는 값비싼 수집품을 비싼 가격에 사 모으는 건 돈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이지, 컬렉터로서 칭찬받을 일은 아닐 것이다.

그는 깨어진 와당이나 민화, 제기, 무속화, 옹기 등을 더 유심히 봐왔다. 무심한 사람에게는 그 아름다움을 보여주지 않지만, 애정을 가지고 들여다봐주는 사람에게 자신의 아름다움을 슬며시 자랑하는 고미술품. 숨어있는 미의 경지야말로 적극적으로 안목을 키워 온 사람에게만 보이는 것이다.

스스로 미적 가치판단을 해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큰돈이 드는 미술품을 사려고 할 때 자신의 안목을 믿지 못하면 별 수 없이 전문가에게 의존하게 된다. 대중매체나 작가 약력, 미술품의 가격 같은 것. 그러다 보면 컬렉터로서 자신의 입지와 관점은 사라지고 돈 쓰는 사람만 남는다.

그는 컬렉션에서 구체적인 설계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 설계를 위해 종합적인 성찰이 필요한데, 우선 자신이 미를 진정 사랑하는지,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지, 전문 지식이 있는지, 경제적인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일정 연령에 목표를 실현할 가능성이 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그리고 수집품이 모인 뒤에는 그 미술품이 얼마나 독창적인지, 사회에 공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지를 따져보고 부족하다면 제외하거나 보완해야 한다. 그리고 수집품 하나하나가 다 따로 노는 게 아니라 서로 연관성을 이루며, 컬렉터가 추구하는 가치를 구축할 때 비로소 건강한 컬렉션이 된다.

컬렉션의 세계에 돈 말고도 심오한 예술적 가치가 있다는 점을 이 책이 일깨운다. 또 눈여겨보지 않았던 민화와 제기를 새삼스럽게 눈을 크게 뜨고 살피다 보면 자신도 몰랐던 심미안을 발견할 지도 모른다.

신귀영 기자 ky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