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립미술관서 8월12일까지
- 유화·드로잉 등 218점 전시
- 시대별 작품 변천과정 한눈에

부산 최초 서양화 동인 ‘토벽’ 창립 멤버, 부산 근대미술의 선구자, 부산 미술계의 대표적인 교육자…. 고 김종식(1918~1988)을 수식하는 말은 많지만, 정작 김종식의 작품세계에 관해서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풍경화’를 잘 그린 작가 정도로 아는 이도 많다. 김종식을 잘 아는 전문가들은 그가 한국 근현대미술 거장과 어깨를 나란히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정립한 독보적인 작가라고 평가한다.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생 대부분을 보낸 ‘토박이’라는 한계로 한국 근현대미술사 주요 작가로 편입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김종식의 1971년 작 ‘미남동 풍경’

일흔 평생을 예술에 매진해 유화 수백 점과 드로잉 2만 점을 남긴 김종식. 그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부산시립미술관(부산 해운대구 우동)이 개관 20주년 특별전·‘부산의 작고 작가’ 전의 하나로 김종식의 작품세계를 본격적으로 조명하는 회고전을 마련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벌써 30년이 됐지만, 작품에 오롯이 집중하는 회고전이 열린 건 이번이 처음이다.

	고 김종식.

김종식은 1918년 12월 13일 부산 동래구(현 금정구) 장전동 183번지에서 한의사 김하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37년 동래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38년 4월 일본 동경제국미술대학(무사시노미술대학의 전신) 서양화과에 입학했다. 당시 일본 화단은 인상파, 후기 인상파, 야수파, 입체파 등 서양 미술사조가 한꺼번에 유입돼 혼잡한 양상을 이룬 때라 김종식도 새로운 미술사조를 풍부하게 접할 수 있었다.

1942년 귀국 후 그는 부산 화단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해방 직후에는 정식 미술교육을 받은 사람이 드물었기에 지역 화단에서 그의 존재는 특별했다. 김종식은 부산 최초의 서양화 그룹 ‘토벽’ 결성을 주도해 부산 미술만의 주체성을 찾고자 노력했다.

작품활동과 동시에 미술 교사로서 후학도 길러냈다. 부산을 중심으로 충무 진해 양산 김해 등 경남을 돌며 교편을 잡았다. 1968년 동아대에 미술과가 신설되자 1983년 정년 퇴임까지 교수로 재직했다. 1988년 고희전을 앞둔 채 세상을 떠나 유작전이 됐다.

	주홍색 주조색이 드러나기 시작한 1954년 작 ‘제비’

시립미술관은 현재 남아있는 가장 이른 시기 작품 ‘도라지꽃과 글라디올라스’(1939)부터 절필작 ‘떠오르는 꽃’(1988)까지, 김종식의 50년 화력을 보여주는 유화작품과 드로잉·아카이브 등 218점을 선보인다. 소장품 만이 아니라 김종식기념관(부산 부산진구 연지동)에 보관한 작품까지 살핀 덕에 미공개작도 여러 점 있다.

전시는 김종식의 작품활동을 크게 3개 시기로 나눠 구성했다. 현실의 애환(1939~1959), 추상의 정취(1960~1969), 새로운 남화·명상의 언어(1970~1988)이다. 이에 더해 드로잉 작품만 모은 ‘회화적 성취, 드로잉’ 섹션을 따로 마련했다. 김종식은 손바닥 만한 드로잉집을 언제나 들고 다니며 하루 중 밥 먹는 시간을 빼고는 늘 펜화를 그렸다고 한다.

	전쟁 직후 삶의 애환이 담긴 1954년 작 ‘인간가족’

1970년대 부산·경남 일대 풍경을 그린 작품 50여 점은 화업의 절정을 보여준다. 김종식의 풍경은 단순한 풍경화가 아니다. 그는 실경을 단순히 묘사·재현하지 않고, 풍경의 내재적 현상을 담으려 했다. 자신이 재해석한 풍경을 그린 것이다. 대상이 된 자연이 그의 필촉을 통해 여과되면 굵은 선과 주조색(주홍, 녹, 청, 황)을 통해 새로운 풍경으로 탄생했다. 그는 자신의 풍경화를 전통 수묵산수화의 ‘남화(南畵)’와 구별해 ‘새로운 남화’라 이름 붙였다.

1940·1950년대 작품은 젊은 김종식의 시대적 갈등과 고민이 반영돼 있다. 해방 후 일본에서 귀환한 사람들을 그린 ‘귀환동포’(1947), 한국전쟁기 애환이 담긴 ‘노상’(1952), 포로수용소를 배경으로 그린 ‘인간가족’(1954)에는 현실의 애환이 담겼다. ‘제비’(1954)는 그의 화력에서 특별한 작품이다. 1953년 부산역전 대화재로 중구 대청동 화실과 작품이 모두 탔고, 이 시기 아들이 세상을 떠나는 슬픔도 겪었다. 그러나 그는 거대한 화염에서 주홍색을 발견하고, 이를 주조색으로 쓰기 시작했다. ‘제비’는 주홍색 주조색이 드러난 시작 단계 작품이다.

황서미 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는 “김종식은 해방 후 사회상을 작품에 드러낸 지역의 거의 유일한 작가다. 이번 전시가 김종식이 단순한 풍경화가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그의 진가를 발견하는 전환점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오는 8월 12일까지 3층 대전시실. 무료. (051)740-4243

박정민 기자 lin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