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70년대 유럽서 인쇄지도 출현
- 해동제국기 원본도 1471년 완성
-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지도집
- 1453년 후쿠오카 승려에게 획득
- 지도집에 실린 ‘일본본국지도’
- 세계 최초로 인쇄된 일본 지도
- 조선통신사가 이용한 해로와
- 日 내부 해로·기항하는 포구까지
- 무로마찌 막부 상황 상세히 기록
조선 전기에는 실로 다양한 책이 제작되고 출판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것이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이다. ‘해동제국기’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지도집 중 하나이다. 지도집은 아틀라스(atlas)라고 한다. 지도첩을 뜻하는 아틀라스라는 말이 처음으로 쓰인 것은 제라두스 메르카토르가 1595년에 ‘지도집 또는 우주의 창조에 대한 우주지리학적 명상과 창조된 우주’라는 다소 긴 제목의 지도집을 발행한 때이다. 그러나 그전에도 지도집은 존재했다. 다만, 인쇄된 지도집의 역사는 길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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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숙주가 책임자가 되어 만든 조선 시대의 ‘해동제국기’에 실린 ‘일본본국지도’. 이근우 교수 제공 |
■ 인쇄지도의 역사
전근대 시기의 지도는 대개 회화 방식으로 제작된 것이다. 즉, 손으로 일일이 그린 것이다. 지도를 인쇄할 수 있게 되면, 대량으로 제작이 가능해지고 지리정보가 빠르게 전파될 수 있다. 그래서 지도를 인쇄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갖는 의미는 사소하지 않다. 그렇다면 세계 최초의 인쇄지도는 언제 제작되었을까? 사실 이 문제를 둘러싸고 여러 나라가 치열하게 다투고 있다. 당연히 유럽은 자신들이 가장 먼저 인쇄지도를 만들었다고 주장해왔다. 특히 세계지도 분야에서 최초로 인쇄지도를 제작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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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세기에 편찬됐으며 1477년 라틴어로 번역된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리학’. |
최초의 인쇄지도로 거론되는 것이 독일 아우구스부르그에서 1472년 군터 자이너가 인쇄한 ‘기원(Isidore of Seville‘s Etymologiae)’이라는 책 속에 들어 있는 TO 형 세계 지도이다. 그림에서 보듯 실로 간단한 지도이다. 지도라기보다는 개념도에 가깝다.
그 다음에 위치하는 것이 1475년 루카스 브란디스(Lucas Brandis, 1450~1500)의 ‘초심자를 위한 핸드북’이라는 책에 들어있는 중동 지도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성스러운 땅이라는 제목의 지도이다. 이 지도를 세계 최초의 근대적 인쇄 지도로 보는 견해도 있다.
1477년에는 라틴어로 번역된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리학’이 간행되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리학’은 원래 2세기에 편찬되었으나, 그것이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번역·인쇄되었다. 이 지도집에는 26폭의 지도가 들어있는데, 이 지도는 엄밀하게 인쇄지도라고 할 수 없다. 인쇄된 책 속에 들어 있지만, 지도는 손으로 작업한 부분이 포함되어 있다. 이 지도는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횡단하는 데 사용한 지도로도 유명하다.
유럽보다 인쇄지도 역사가 오래된 곳은 당연히 중국이다. 인쇄술을 발명한 곳이므로, 당연히 일찍부터 지도를 인쇄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인쇄지도집으로 거론되고 있는 것은 ‘역대지리지장도(歷代地理指掌圖)’라는 책이다. 이 책에는 1185년에 쓴 조무덕(趙武德)의 서문이 붙어 있다. 그러나 현재 남아있는 대부분의 사본은 명나라 때 간행된 것이고, 일본의 동양문고에 소장된 사본만 송나라 때 제작된 것이라 한다. 이 책에 실린 지도를 보면, 중국과 그 주변 지역 일부를 그린 것이고, 동일한 지도에 지방 조직 및 지명의 시대적 변화 등을 기입하고 있다. 따라서 지리보다는 역사에 중점을 둔 역사지도집이라 부르는 편이 옳다.
1470년대는 유럽에서 비로소 인쇄지도가 출현한 시기이다. 현재 남아있는 ‘해동제국기’의 판본은 17세기에 간행된 목활자본이지만, 그 원본이 완성된 시기는 1471년이다. 그런 점에서 ‘해동제국기’의 지도는 유럽 최초의 인쇄지도와 동시대에 해당한다. 편찬 당시부터 이미 6종류의 지도가 실려 있었고, 모든 지도는 그 당시의 최신 정보를 담고 있다.
■ 일본본국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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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에서 최초 인쇄지도로 거론되는 군터 자이너의 ‘기원’(1472년). 지도라기보다는 개념도로 보인다. |
‘해동제국기’에 실린 지도 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것은 ‘일본본국지도’이다. 우선, 이 지도는 세계 최초로 인쇄된 일본지도이다. 일본에서도 일본 지도를 본격적으로 인쇄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이후의 일이다. 인쇄된 책에 실려 있는 지도로 가장 오래된 것은 ‘습개초(拾芥抄)’의 ‘대일본국도(大日本國圖)’인데, 최초의 제작연도는 12세기 말이지만, 인쇄되어 출간된 것은 주로 17세기 말이다. ‘해동제국기’ 속 ‘일본본국지도’와 ‘대일본국도’를 비교해서 그 차이를 확인해 보자.
얼핏 보면 두 지도는 비슷하다. 그러나 세부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도 ‘대일본국도’에는 각 지역을 연결하는 도로망이 보인다. 이 도로망을 칠도(七道)라 하며, 일본 고대의 행정구역이자 전국을 연결하는 관용도로이다. 그러나 ‘일본본국지도’에는 내부의 도로망이 보이지 않는다. 또한, 앞의 지도에는 도로망의 중심에 ‘산성(山城)’이라 기록돼 있고, 이곳은 현재의 교토(京都)이다. 그러나 뒤의 지도에는 같은 위치에 큰 원을 그리고 그 안에 일본국도(日本國都), 천황전(天皇殿), 국왕전(國王殿) 등의 내용을 써넣었다. 이때 국왕은 ‘무로마찌’ 막부의 장군(將軍)을 의미한다. 현재의 도쿄 부근은 겸창전(鎌倉殿)이라 기록했다. 이를 통해 앞의 지도는 일본 고대의 상황을 나타낸 지도이고, 뒤의 지도는 무로마찌 시대(1336~1573년)의 지도임을 알 수 있다. ‘해동제국기’의 ‘일본본국지도’는 1453년 조선이 후쿠오카의 승려 종금(宗金)에게서 입수한 것이다. 이 지도는 현존하는 일본 지도 중 유일하게 무로마찌 시대의 상황을 보여준다.
■ 북해항로
다시 ‘일본본국지도’에 주목해 보면, ‘대일본국도’와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육지 도로망이 사라진 대신, 바다 위에 흰 선으로 해로가 그려져 있다. 이 해로는 조선의 통신사가 이용한 해로만이 아니라, 당시 일본 내부에서 사용되던 해로도 반영하고 있다. 또한 해로의 중간중간에 기항하는 포구들도 기재돼 있다.
조선 전기의 통신사는 대마도와 후쿠오카를 거쳐 시모노세키에 이르면 현재의 세토 내해(內海)를 지나, 오사카·교토에 이르렀다. ‘해동제국기’ 편찬 책임을 맡은 신숙주도 이 길을 따라 일본을 왕래했다. 그러나 ‘일본본국지도’에는 시모노세키에서 일본 혼슈의 북쪽을 따라 항해하는 ‘북해항로’가 그려져 있다. 이 해로야말로 일본 내부의 항로이다. ‘해동제국기’ 본문에는 일본의 수린이라는 승려가 세조의 명에 따라 이 항로를 항해하여 무로마찌 막부 장군에게 외교문서와 예물을 전달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1446년 5월 세조의 명을 받은 수린은 6월에 규슈의 상송포(上松浦)에 돌아가 배를 수리하고 나서, 1467년 2월 교토로 가고자 하였다. 마침 교토에서는 병란이 일어나고 바다에는 해적이 설쳐 남해(南海)의 길이 막히자 북해(北海)를 경유하여 6월께 교토에 도착했다. 수린은 동복사에 머물게 되었으나, 무로마찌 막부의 장군도 전란에 휘말려 세조의 국서에 답장을 써주지 못하다가 1468년 2월에 답서를 받게 되었다고 한다. 수린은 1470년(성종 1년)에 조선에 돌아와 그 경과를 보고하였다. 이 해는 ‘해동제국기’가 완성되기 1년 전이다.
‘해동제국기’는 지도 자체가 갖는 가치도 크지만, 지도가 갖는 의미를 지리정보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높이 평가해야 할 문헌이다.
이근우 부경대 사학과 교수
※ 공동기획:부경대 사학과·국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