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직 기자의 생생한 농촌체험기
- 만만찮은 농사일에 몸 고되지만
- 마음의 행복감 고스란히 드러나
- 유머 넘치는 글 솜씨도 인상적

시골 사는 게 꿈인 시대가 오다니. 벌 만큼 벌고 살 만큼 살아본 도시를 벗어나 여유롭게 살고 싶어서든, 도시라는 곳에서는 당최 먹고 살 방도를 찾지 못해서든, 그 어떤 처절하거나 낭만적인 이유에서든 귀농·귀촌에 대한 열망이 이토록 높은 것은 산업화 이후 처음이 아닐까.

	저자가 동력분무기로 마늘과 양파를 심을 밭에 바닷물을 뿌리고 있다.(왼쪽) 정부 지원을 받아 140만 원짜리 분무기를 70만 원에 구입했다. 오른쪽은 집 마루에서 저녁을 먹고 있는 이웃 할머니와 가족들. 르네상스 제공

청년들의 시골살이를 그림처럼 예쁘게 담은 영화 ‘리틀 포레스트’가 꽤 큰 반향을 일으킨 것도,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 세상에서 살아내기 지친 청년들의 막연한 귀촌 욕구를 적절한 타이밍에 읽어냈기 때문이다. 물론 진짜 시골살이는 그림 같지 않다. 모르겠다. 벌어놓은 돈이 있어서 예쁜 집 짓고 승용차로 대형마트를 오가며 큰 불편함 없이 사는, 혹은 번듯한 도시형 직업은 따로 있고 시골의 한적함만 누리는 그런 ‘귀촌’이라면.

맨몸으로 농지와 살 집만 겨우겨우 마련해 시작하는 본격 귀농은, 볼 것도 없이 본격 ‘개고생’이다. 저 회사생활 도저히 못하겠어요. 시골 가서 농사나 지으며 살래요. 힘들어도 괴롭진 않아는 이런 말을 밥 먹듯 하는 ‘도시촌놈’들이 읽어볼 만한 책이다. 도시에서 신문사 기자로 일하다가 40대 초중반에 연고 하나 없는 전남 구례로 무작정 내려와 농부가 된 저자의 귀농일기다. 생각 없이 살고자 귀농했으나 생각이 부쩍 많아졌다고 한다. 정직하게 땀 흘려 땅 파고 수확 하면 큰 고민 없이 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농지를 살 때 ‘저리융자’ 혜택을 준다지만 이자가 없다는 것도 아니고, 빚을 안 갚아도 된다는 것도 아니다. 살인적인 더위에도 일은 멈출 수 없다. 잠깐 방심하는 새 탄저병이 고추를 덮친다. 논에선 잡초가 벼를 삼키고, 벌레가 지나간 자리마다 작물의 이파리가 스타킹처럼 변한다. 아직 젊은디 왜 내려왔는가? 농사도 안 지어 봤담서 어치케 농사를 짓겄다고 설치는가? 동네 어르신들의 걱정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도시에서 찾아온 후배가 무겁게 호미질 하는 저자에게 묻는다. “형은 행복하세요?” 잠깐 생각하다가 답한다. “불행하진 않네. 힘들어도 괴롭진 않으니까.” 힘들어도 마음이 괴롭지 않다는 것, 하루하루 가까스로 버티는 삶이 아니라는 것, 이민을 꿈꾸는 매일이 아니라는 것. 이것이 귀농을 통해 가능해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사람들이 있다.

아내를 딸처럼 아끼며 조용히 집안 살림을 챙겨주시는 옆집 할머니를 보며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농사일 좋은 것이 뭐인가. 오늘 못 허면 내일 허고 내일 못 허먼 모레 허고 그먼 되제” 하다가도 “얼렁 일 안 허고 뭘 멍허이 앉아 있어” 타박하는 장 씨 아저씨의 입담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농약을 하지 않아 감 농사를 다 망쳐놓고, 우리 농장 감 잘돼서 다행이라며 제 것처럼 좋아하는 D 동생에게서 인생을 배운다. 동네 사람들의 인정 넘치는 참견이 삶의 재미가 되는 순간이 온다.

다들 그렇게 산다는 삶에서 ‘후퇴’를 꿈꾸며 사직서를 던진 농부의 일상에 땀내가 진동한다. 그런데 참 따뜻하다. 솔직한 듯 눙치는, 자기비하형(?) 유머에 웃음이 픽픽 나고 내공 있는 글솜씨에 가끔 뭉클하다. 철딱서니 없다고 혼꾸멍 나더라도 중얼거려보는 것이다. “시골에서 농사 지으며 살래요.” 신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