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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문화의 명장면 <16> 오징어의 박물학, 오징어의 정치학

남북서 뜻 다른 명칭 ‘오징어’… 이름 자체가 고고학적 유물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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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4-24 19:27:37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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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재 동물에 상상력 덧붙여
- 이색괴물 만든 중국 ‘산해경’

- 한자 ‘오적어’서 이름 유래된
- 오징어를 머리 하나 몸 10개
- ‘하라어’라는 물고기로 소개

- 뼈가 없는 살오징어는 ‘유어’
- 갑오징어는 ‘오적어’로 구분
- 조선선 유어를 ‘꼴뚜기’라 불러

그곳에는, 이상한 물고기가 산다. 대산(帶山) 북쪽 400리에는 초명산(譙明山)이 있는데, 초수(譙水)가 나와 서쪽으로 황하에 흘러든다. 그 속에 하라어(何羅魚·그림 1)라는 물고기가 많다. 개 짖는 소리를 내는데, 이것을 먹으면 등창이 낫는다. 그런데 그 모양이 괴이하다. 머리 하나에 몸통은 열, 이른바 ‘일수십신(一首十身)’의 물고기다. 명나라 말기 장응호는 ‘산해경’에 등장하는 이 괴상한 물고기 모습을 형상화했다. 그림만 보더라도 기괴하다.
   
17세기 후반에 섭황이 그린, 먹물을 뿜는 오징어와 오적골.
불가사의한 괴물이 어디 이것뿐이랴. 평창올림픽에서 관심을 끌었던 ‘인면조(人面鳥)’는 물론이고 코끼리를 잡아먹는 거대한 뱀 ‘파사(巴蛇)’도 보인다. 꼬리 아홉 달린 여우 ‘구미호(九尾狐)’가 처음 등장한 것도 ‘산해경’이다. 신괴(神怪)·외수(畏獸)로 가득 찬 ‘산해경’은 동아시아 상상력의 원천이 되었다.

이들 괴물이 단순히 상상의 산물일까? 기괴한 상상력이 덧붙여졌지만, ‘산해경’의 괴물은 현실의 동물을 반영한다. 오늘날 ‘산해경’은 동아시아 생물학의 연원으로 인정받는다. ‘산해경’에는 40여 종 물고기가 등장하는데 대부분 실재하는 물고기로 여겨진다. 예컨대 먹으면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패패어(䰽䰽魚), 새의 날개를 가지며 바다를 날아다니는 문요어(文鰩魚·그림 4 위), 날개 열 개를 가지고 불을 막을 수 있는 습습어(鰼鰼魚·그림 4 아래)는 각각 복어, 날치, 미꾸라지에 대한 상상이다.

그렇다면 ‘일수십신’의 물고기는 무엇일까? 쉬이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하여 다시 찬찬히 집중하다 보면, 문득 하나의 형상이 그려질 것이다. 오징어이다. ‘머리’로 여겨졌던 것이 실제로는 ‘몸통’이지만, 옛사람 관점에서 ‘머리 하나에 몸통은 열’인 물고기에 가장 근접한 것이 오징어임이 틀림없다.


■ 복잡하고 미묘한 이름 ‘오징어’

   
장응호의 ‘산해경(도회전상)’(1597년)에 나오는 하라어 그림.
‘산해경’에서 비롯된 상상 속 두 ‘괴물’이 위기의 한반도에 훈풍을 불어왔다. 평창올림픽 개막식에 등장한 ‘인면조’는 세계인의 이목을 이 땅으로 끌어왔다. ‘일수십신’ 오징어는 냉전에 길들여진 긴장된 근육을 일순 이완시켰다. 오랜 분단으로 언어마저 나뉘어, ‘오징어’와 ‘낙지’가 서로 반대로 사용된다는 임종석 비서실장의 말에, 북한대표단 김여정 특사가 “그것부터 통일해야겠다”는 화답으로 웃음을 자아낸 것이다.

오징어와 낙지가 서로 반대라는 대화는 오랜 분단의 이질감과 애잔함을 불러왔다. 다만 실상은 조금 다르다. 반대로 쓰인 것이 아니라, 뜻하는 바가 달랐다. 오징어를 북에서는 ‘낙지’라 하지만, 낙지를 ‘오징어’라 하지는 않는다. 북한에서 ‘오징어’는 갑오징어를 가리킨다. 곧 북한에서는 갑오징어를 ‘오징어’, 오징어를 ‘낙지’라 일컫는다. 북한에서 오징어를 ‘낙지’로 부르게 된 경위는 연구가 필요하다. 다만 갑오징어만 ‘오징어’로 규정하는 것은 어떻게 보아야할까? 거꾸로, 우리가 오징어라 하는 것은 진짜 ‘오징어’일까? 오징어와 낙지 명칭을 둘러싼 해프닝은 역사적 연원이 있으며, 또한 예상치 못하게 한중일 3국의 어류지식이 얽힌 문제이기도 하다.
‘오징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 우리말 ‘오쟁이(짚을 엮어 만든 작은 섬)’에서 연유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한자인 ‘오적어(烏賊魚)’에서 왔음이 분명해 보인다. 정약전이든, 이청이든, 서유구든 조선 시대 오징어 지식은 중국 영향을 받았다.

   
일본 어류도감에 실린 갑오징어(왼쪽)와 살오징어.
무엇보다 궁금한 것은 왜 이름이 ‘까마귀의 도적(烏賊)’인가 하는 점일 게다. 이청과 서유구는 ‘남월지’ 기록을 인용해 유래를 추적했다. “그 성질이 까마귀를 좋아하여 매번 스스로 물위에 떠올라 있다가 날아가던 새가 이를 보고서 죽은 것으로 여겨 쪼려하면, 곧바로 휘감아 물속에 들어가서 먹는다. 이로 인해 ‘오적(烏賊)’이라고 했다.”

‘일수십신’이라는 괴상한 모양 때문에, 오징어에 대해서 다양한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때론 먹을 뿜다가 도리어 까마귀에게 해를 당하기도 한다. 한오(寒烏)나 복조(鸔鳥) 같은 새가 변한 것이라고도 했다. 진시황이 순행할 때 바다에 산낭(算囊)을 던졌는데, 이것이 오징어로 변해 몸통에 먹이 들어 있다고도 했다. 문묵(文墨)이 있으니 모범이 될 만하다 하여 ‘오즉(烏鰂)’이라는 말이 생겼다. 중국에서 오징어의 대표 이름이 묵어(墨魚)인 것도 여기서 연유한다.

17세기 후반 섭황은 오징어를 생동감 있게 묘사했다. <그림 2>를 보면 발 8개와 큰 더듬이 2개를 지닌 오징어가 먹물을 뿜는다. 주목되는 것은 왼편에 검은 ‘오징어부리’이다. 그 모양은 새 부리와 닮았다. 이것은 한오(寒烏)나 복조(鸔鳥)가 오징어로 변했다는 강력한 흔적으로 여겨졌다. 이 오징어는 오늘날 분류로 어떤 종류일까? 이른바 ‘갑오징어’이다. 왼편에 그려진 오적골(烏賊骨) 또는 해표소(海螵蛸)로 불리는 ‘오징어 뼈’가 증거다. 석회질의 이 뼈는 고대에도 오징어를 분류하는 중요한 기준이었다.

■ 물고기 이름에 깃든 문화와 역사

   
장응호의 ‘산해경(도회전상)’(1597년) 속 문요어(위)와 습습어.
송나라 이전까지 오징어는 따로 분류되지 않았다. ‘오적어’는 오징어류의 총칭이었고, 그 대표는 당연히 ‘갑오징어’였다. 남송대 나원은 ‘오즉(烏鰂)’을 닮았지만, “뼈가 없는 것”을 유어(柔魚)라 한다고 했다. 오징어를 크게 ‘오적어’와 ‘유어’로 대별했다. 이것은 조선과 일본에 영향을 끼쳤다. 정약전은 유어가 오징어를 닮았고, 몸통은 더 길고 좁으며, 종이처럼 얇은 뼈가 있다고 했다. 이에 비춰보면, 오적어는 ‘갑오징어’(그림 3 왼쪽), 유어는 흔히 오징어라 일컫는 ‘살오징어’(그림 3 오른쪽)이다. 일본에서는 오징어를 ‘이카’라 한다. 카이바라 에키켄의 ‘화한삼재도회’의 그림을 보면, 오적어(烏賊魚)를 ‘이카’, 유어(柔魚)를 ‘스루메이카’라 하여 선명하게 구분된다. 오징어 말린 것을 ‘스루메’라 하는데, 오늘날처럼 주로 살오징어로 만들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문제는 조선 시대 ‘유어’를 부르는 명칭이다. 정약전은 ‘고록어’, 서유구는 ‘호독기, 꼴독기’라 한다고 했다. 바로 ‘꼴뚜기(피둥어꼴두기)’이다. 조선 시대에는 갑오징어를 그냥 ‘오징어’로, 오늘날 오징어를 ‘꼴뚜기’로 불렀던 것이다. 더 복잡하게 만든 것은 오징어 위에 다시 ‘갑오징어’가 얹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갑오징어는 어디서 유래했을까? 짐작했겠지만, 일본식 어명에서 나왔다. 오늘날 우리가 ‘참갑오징어’라 부르는 것을 일본은 ‘마이카(眞烏賊)’ 또는 ‘코우이카(甲烏賊)’라 한다. ‘참’이든 ‘갑’이든 모두 일본의 영향을 받아 정착한 것이다. 주체를 강조한 북한에서 갑오징어라는 단어를 꺼린 이유를 짐작할 만하다.

   
하찮아 보이는 물고기 이름에도 역사가 있다. 물고기 이름은 그 자체로 고고학적 유물이다. 물고기 이름은 나서 자라고, 섞이고, 변질되며, 선택된다. 이름은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닌다. 섣불리 이를 통일하려 할 필요는 없으리니. 언어는 생명과 같아서, 자연스럽게 섞이고 선택될 것이다. 이제 이틀 남았다. ‘일수십신’ 오징어가 불러온 훈풍으로, 이 땅에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려는 날이.

김문기 부경대 사학과 교수

※ 공동기획:부경대 사학과·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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