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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립미술관 학예사가 안내하는 20주년 특별전 <하> 피란수도 부산에서 펼쳐진 미술문화

전쟁도 막을 수 없던 창작 열정 ‘피란 미술’ 꽃피우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04-15 19:02:16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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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 때 부산에 모인 미술가들
- 압축 공간서 독특한 문화 발산
- 담뱃갑 은지 캔버스 삼은 이중섭
- 판잣집 그린 김환기·양달석 등

- 정치 경제 예술기능 한데 모이자
- 신문·출판산업도 비약적 성장
- 전쟁기 예술 담아 주요자료 역할

부산시립미술관 개관 20주년 특별전 2부 ‘피란수도 부산_절망 속에 핀 꽃’ 전은 6·25 한국전쟁 당시 임시수도이자 피란지였던 부산에서 활발히 일어난 미술문화 현상을 탐색합니다.

1950년 한국전쟁이 터져 민족상잔의 비극이 시작되자 전국 미술가들이 부산으로 피란을 왔습니다. 피란 작가들과 부산·경남 작가들은 거친 호흡을 공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임시수도 부산’이라는 압축 공간에서 ‘피란수도 미술문화’라는 독특한 환경이 만들어졌습니다. 미술가들은 전쟁의 시련과 궁핍 속에서 더욱 절박하게 화가의 지상명령인 ‘창작 열정’을 불태웠습니다. 당시 피란수도 부산에서 이루어진 예술 활동은 한국 미술사에서 ‘전쟁 속에 꽃 피운 르네상스’라 평가할 수 있습니다.
   
2. 김환기의 1951년 작 ‘판잣집’(72.5×90.3㎝, 개인 소장). 피란 온 김환기와 부산 작가 양달석은 전쟁기 부산의 판자촌을 각기 다른 예술세계로 그렸다.
■ 김환기-양달석의 ‘판잣집’

이번 전시에서는 피란 작가 이중섭 김환기 장욱진 박수근 천경자 백영수 등과 부산의 주요 서양화가 김종식 임호 양달석 우신출 등 한국 근대미술의 선구자로 여겨지는 작가들의 한국전쟁기 작품이 70여 년 만에 다시 만납니다.

특히 이중섭(1916~1956)은 암울한 전쟁 속에서도 치열하게 그림에 이상향을 담았습니다. 오갈 데 없는 처지로 부산의 다방을 전전하며, 그림 재료가 모자라자 담뱃갑 속 은지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장욱진(1917~1990) 역시 그림 그릴 캔버스 천과 물감을 구하기 어려워 그림 뒷면에 다시 그림을 그리거나, 종이나 하드보드, 합판도 마다하지 않고 그렸다고 회고했습니다.(1)

미술가들에게 ‘피란의 삶’은 바로 ‘부산의 삶’이었습니다. 자신만의 예술세계로 생생하게 부산 모습을 담아냈습니다. 추상미술의 거장 김환기(1913~1974)는 부산 영도에 있던 화가 이준의 다락방에 1년 기거했습니다. 김환기가 이 시기 그린 대표작 ‘판잣집’(2)이 이번 전시에서 부산에서는 최초로 공개됩니다. 김환기는 판잣집의 고단한 피란생활을 사실적으로 드러내기보다 단순화된 형태와 화사한 색채로 그만의 조형양식을 표현했습니다.
   
3. 양달석의 1950년 작 ‘판자촌’(34×49.1㎝, 부산시립미술관 소장).
김환기와 같은 대상을 표현한 부산 작가의 작품을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감상법입니다. 부산 작가 양달석(1908∼1984)은 ‘판자촌’(3)에서 생존을 위해 판잣집을 빼곡히 쌓아올린 부산의 언덕배기 마을, 전쟁기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도 외부에서 온 피란민들과의 공존을 선택한 부산 사람들 모습을 수채화로 담담히 그렸습니다. 이처럼 두 작가는 한국전쟁기 ‘부산의 삶’을 각자의 예술세계로 담아냅니다.

■ 미술 동인의 근거지 광복동 ‘다방’

한국전쟁기 동인들의 활동도 주목할 만합니다. 이번 전시에는 부산 작가들이 향토적 리얼리즘을 구축하기 위해 모여 개최한 ‘토벽동인전’을 비롯해 중앙 화단 출신 작가들이 모여 만든 ‘신사실파전’ ‘기조동인전’ ‘후반기전’과 관련된 아카이브 자료와 작품이 전시됩니다. 당시 이러한 동인은 대부분 광복동 일대 다방에서 창립되고 활동했습니다. 다방은 전국 문화예술인의 전시공간이자 문화매개 공간이었습니다. 다방은 오갈 곳 없는 화가나 문인, 음악가, 영화인의 사무실 겸 작업장 역할을 했습니다. 미술가에게는 전시장소로, 문인에게는 집필과 작품 발표 장소로, 연극·영화를 비롯해 다양한 장르의 문화인에게는 교류 장소로 활용됐습니다.

전시장에서는 당시 다방과 피란도시 부산 문화를 전하는 전문가 6명의 인터뷰와 역사 자료를 보여주는 아카이브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시 다방을 재현한 아카이브실도 마련했는데, 1952년 피란작가 백영수(96)의 부산 녹원다방 전시회 방명록이 재미있습니다. 방명록을 통해 화가 김환기·도상봉·이중섭·양달석·임호 등과 문학인 노천명·김동리·황순원, ‘코주부’로 잘 알려진 만화가 김용환, 영화배우 이민자 등 기라성 같은 예술인 40여 명이 방문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 장욱진 1956년 작 ‘자갈치 시장’(13×18㎝, 개인 소장).
■ 한국 근대미술의 동력 ‘항구 부산’

한국전쟁기 부산의 항구로 전쟁무기와 군수물자뿐 아니라 서구 출판물과 서구 미술도 활발히 유입됐습니다. 부산은 항구라는 특징으로 정치 경제 예술이 역동적으로 움직였고, 많은 예술가가 활발히 교류했습니다. 예술가들은 적극적으로 서구 미술을 흡수하는 한편 주체적인 자각을 공고히 하려는 의식도 있었습니다. 이런 흐름은 신문과 출판물의 기록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역사상 유례없이 정치 경제 교육 예술 기능이 한 도시에 집중되자 신문과 출판산업이 비약적으로 성장했습니다. ‘국제신보’(국제신문 옛 명칭)는 전쟁 기간 국내외 문제 해설로 독자의 주목을 받으면서 1949년 2만 부의 발행부수가 1952년에는 8만 부에 이를 만큼 크게 성장했습니다. ‘부산일보’와 부산으로 피란 온 ‘동아일보’ ‘경향신문’ 등도 전쟁기 예술 정황을 비교적 꾸준히 다뤄 미술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아카이브 전시실에는 당시 출판문화와 부산 언론이 문화계 동향을 다루었던 기사 목록이 있습니다. ‘부산 정부청사 벽화’ 사건을 다룬 기사가 눈길을 끕니다. 1952년 이승만 정권의 이미지 쇄신을 위해 만들어진 부산 정부청사 벽화는 프랑스 화가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위해 싸우는 민중의 여신’ 모작이라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1952년 6월 29일 경향신문이 ‘한국미술계에 일대 오점 시청 앞 벽화는 모사!’ 제목으로 다루는 등 신문사들은 이 사건을 앞다퉈 실었습니다.

1953년 4월 25일 국제신보에 실린 ‘여성과 예술 천경자 씨의 개인전을 보고, 김향안’ 기사도 미술사에서 중요한 자료입니다. 여성 작가로서 천경자의 노력과 당시 파격이라 여겨졌던 화폭을 가득 채운 뱀 그림 ‘생태(生態)’가 부산에서 전시돼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점을 다뤘습니다.

   
한국전쟁 때 부산의 예술 활동은 복합적이며 혼혈적인 특징을 보입니다. 이는 고통 속에서도 치열하게 작업을 지속한 예술가의 삶과 의식에 분명 많은 영향을 주고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피란수도 부산_절망 속에 핀 꽃’ 전에서 피란수도 부산이 한국 근현대 미술사에서 전환의 동력을 제공했다는 점을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이번 전시가 한국 미술사에서 누락됐던 부산미술의 위치를 다시 세우는 장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부산시립미술관 박진희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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