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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선미의 연극마실 <7>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그래도 된다’는 잘못된 생각…잘못에 침묵했던 오늘의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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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4-03 18:46:46
  •  |  본지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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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이 일상서 겪는 희롱·추행
- 혹시 당연하다 여기지 않았는지
- 혁명처럼 일어난 #미투 운동
- 구조적 폭력 문화 전복시키길

얼마 전 어느 기자에게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요즘 문화예술계에 일어나는 미투 운동에 대해 여성 연극인으로 견해를 듣고 싶다고. 고사했다. 실은 그즈음 한국 연극계 거장이라 불리던 한 연출가가 수십 명 여배우에게 행한 상습적 성폭력이 연이어 고발되면서 연극계뿐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가 들썩이고 있을 때였다.
   
폭력의 딜레마를 섬세하게 그린 영화 ‘인 어 베러 월드’(수잔 비에르 감독). 연극계를 비롯한 예술계 미투 운동을 둘러싼 현재 상황은 이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그때 내가 인터뷰를 거절한 것이 다소 뜨악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때는 말을 아끼고 싶었다. 그 일이 터지고 ‘이제 발 없는 말들이 마구 쏟아지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치게 많은 말은 정작 아픔에 위로가 되지 못할 때가 더 많다. 스스로 차분해질 때를 기다려야 했다. 말을 보태는 것보다 ‘나부터’ 반성해야 할 것을 우선 챙기는 게 순서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나는 여성이며 어쩌면 일상 속 성차별과 그로 인한 폭력의 피해자일 수 있지만, 간과하거나 함께 익숙해짐으로써 공조한 것이 없는지 살피는 게 도움이 될 거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 연출가의 행태는 이미 오래전부터 공공연하게 소문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유사한 일은 주변에 늘 산재했다. 풋풋한 20대를 지나 30대 초반까지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 시간을 지나는 대한민국 여성이라면 가벼운 희롱과 추행은 피할 수 없는 통과의례와 같았다. 그래서 그때는 그게 큰 일라 생각지 못했다. 그게 문제였다.
다른 형태의 폭력도 정글처럼 둘러싸고 있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대학 내 예체능계열 학과에서 이른바 오리엔테이션이라는 이름으로 군기잡기를 하는 문화가 얼마 전까지 횡행했다. (극단 안에서 나 역시 후배들에게 신체적 벌을 준 적이 있다.) 교수들은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갑질하고, 군대에서는 장군급이 병사를 제집 하인처럼 이용했다. 이 나라 구석구석에서 위계를 빌미로 서열을 만들고 권력을 남용하고 폭력을 합리화했다. 작게는 개인 사이에서, 나아가 조직 내에서 그런 일이 당연하게 취급되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그것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나’와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을 행사하는 ‘나‘도 있었다.

이쯤에서 내가 머무는 세상의 치부를 하나 고백해야겠다. 2013년 부산연극제에 참가했을 때다. 2013년 당시의 부산연극협회장은 나름 부산 연극의 저변을 확대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연극제 홍보에 관련된 어떤 일을 추진했는데 나는 그 일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고, 그에게 전화로 강력하게 항의했다. 연극협회 회원으로 문제점을 건의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던 내 입장과는 달리 그는 정서적으로 매우 불쾌했던 모양이다. 부산연극제 최종 심사가 있는 날 심사위원들 사이에 ‘진선미는 상을 주지 말라’는 메모가 돌았다. 회장이 보낸 쪽지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심사위원들은 그 메모를 무시했고 내가 연기상을 수상하게 된 웃지 못할 일이 있었다. 심사 자리에서 일어난 일은 보통 비밀에 부치는 약속이 있으나 사람 일이 원래 그렇듯 비밀은 떠돌다가 결국 내 귀에 들어왔고 확인 후 ‘메모’는 사실임을 알게 되었다. 공론화할 수 있는 문제였으나 그러지 않았다. 그 일이 잘못임을 모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지금은 그 자리(협회장)에 없는 선배 연기자를 대상으로 폭로도 뭣도 아니다. 내 안의 분노는 사라졌고 차분해졌으므로. 다만 잘못을 잘못이라 생각하지 않은 것과 그것을 말하지 않았던 것 둘 다 문제였다는 고백을 하고 싶다. 지금은 가해자나 피의자가 된 이들도 아마 몰랐을 수 있다. 옳은 일은 아니라도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정치적 입장에 반한다는 이유로 ‘다이빙벨’ 상영을 금지하도록 했던 부산시장이나 구속된 두 전 대통령이나 부역자들도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것이 가능한 세상이었으니 어쩌면 그랬을 수 있다. 그래서 무섭다.

   
“촛불은 거대한 저항운동이었지만 혁명은 아니었다.(중략) 지금 벌어지고 있는 미투 운동은 혁명이 맞는 것 같다.” 미투운동을 두고 어떤 활동가가 이렇게 얘기했다. 그의 말처럼 이 운동이 혁명처럼 시스템을 전복하길 바란다. 그러나 어쩌면 혁명은 오래 걸릴 수 있다. 우리 폭력의 문화를 가능하게 한 그 생각들이 뒤집어지지 않는다면. 미투운동으로 회자된 이름 중 아는 이들이 있다. 어떤 이는 가해자이고 어떤 이는 피해자다. 이것이 내가 처한 현실이다. 그래서 나 역시 떳떳하기 어렵다. 연극인·연극비평지 ‘봄’ 발행인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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