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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의 그곳에서 만난 책 <30> 허택 소설가와 소설집 ‘대사증후군’

우리가 살아온 시간, 고스란히 몸에 남아 인생을 말해주죠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03-12 19:02:43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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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책방이 보물섬 같았던 청년
- 가업 이으려 치과의사 길 선택
- 매일 사람의 입속 들여다보며
- 몸에서 삶을 보고 소설로 풀어
- 단호하고 선명한 의학용어로
- 인간의 파멸과 육체의 병듦 표현

자신이 살아온 지난 시간을 되돌아볼 수 있는 건 인간에게 주어진 축복이다. ‘그런대로 잘 살아왔구나, 용케도 여기까지 왔구나’하는 생각을 할 때는. 그러나 ‘내가 왜 그랬을까’ 해야 한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되돌릴 수 없는 잘못을 깨달았을 때는 그 시간도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함께 인식하게 된다.
   
허택 작가가 부산 국제시장에서 사람과 거리를 바라보고 있다.
우리가 살아온 시간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사진, 일기장, 인터넷 SNS의 흔적. 그런 것만이 아니다. 우리 몸에 그 흔적들이 남아 있다. 허택의 소설 ‘대사증후군’을 보았을 때 그 생각이 들었다. 소설가이자 치과의사인 허택은 ‘몸’에서 ‘삶’을 보고, ‘소설’로 풀어낸다. 허택 소설가를 국제시장 거리에서 만났다.

■소설가가 된 치과의사

허택은 1952년 부산 중구 보수동에서 태어나 자랐고, 지금도 살고 있다. 부모님은 6·25전쟁 때 황해도에서 부산으로 왔지만, 허택은 보수동 토박이인 셈이다. 부친은 1956년 치과를 개원했는데, 그 치과는 한 자리에서 56년째 건재하다. 허택 역시 1982년부터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 “아버님이 이북도민회장을 맡기도 하셨어요. 피란민들의 어려운 형편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죠. 지금도 치과에 오시는 어르신 중에 돌아가신 아버님 환자들이 있습니다.”

   
대사증후군- 허택 지음 /강 /2017
치과에서 몇 발자국만 걸으면 국제시장 거리다. 허택에겐 국제시장 일대가 손금 들여다보듯 환하다. 국제시장 곁 책방골목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었다. 도서관도 부족하고 신간 출판도 그리 많지 않았던 시절 책방골목은 그에게 보물섬이나 진배없었다. 책을 좋아하고 글쓰기를 잘했지만, 그는 서울대 치대에 진학했다.

“아버님을 이어 가족을 지켜야 한다,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이 많았어요. 선친께서도 치과의사셨으니까 자연스럽게 치대로 진학했죠. 치대 6년, 조교 4년을 마치고 군의관으로 복무했어요.” 그는 강원도 양구를 거쳐 부산 망미동 국군부산통합병원에서도 복무했다. “부산에 있을 때 아버님 일을 가끔 돕다가 이 치과를 지키게 됐습니다.”

치과의사가 되고서도 문학 쪽으로 마음이 자꾸만 기울었다. 그는 소설 창작을 시작한 지 9년 만인 2008년 ‘문학사상’에 단편소설 ‘리브 앤 다이’가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리브 앤 다이’ ‘몸의 소리들’ ‘대사증후군’과 5인 중편소설집 ‘선택’, 8인 테마소설집 ‘1995’를 발표했다. 단편 ‘캐리돌 뉴스’로 제22회 부산소설문학상을 받았다.

그는 ‘몸’을 통해 인간의 삶과 정신을 이야기하는 소설가이다. 의사인 그는 인간의 몸, 생존을 위해 음식을 먹어야 하는 사람의 입속을 매일 들여다본다. “사람의 몸은 그 사람의 속내를 모두 보여주지요. 그것이 천천히 보였어요. 나이 예순이 넘어서니 더 잘 보이더군요. 몸은 그 사람이 살아온 흔적이고, 역사입니다.”
■우리가 앓고 있는 대사증후군

‘대사증후군’은 한 남성의 삶과 추락을 그린 중편소설이다. 주인공은 명문대를 나와 대기업에 입사해 고속 승진을 거듭하며 승승장구하다 한순간에 추락한다. 그가 앓는 병은 대사증후군이다. 만성적인 대사 장애로 내당능 장애, 고혈압, 고지혈증, 비만, 심혈관계 죽상동맥 경화증 등 여러 질환이 한 개인에게서 한꺼번에 나타나는 대사증후군.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가는, 자신이 어디서 무얼 하는지 생각도 하지 않는, 더 위로 올라가고 싶은, 욕망을 채우는 데 거리낌 없는 인간. 주인공은 그런 삶을 살다가 대사증후군에 걸린다. 그의 삶이란 서서히 대사증후군을 자기 몸속에 키워오는 과정이었다.

주위의 경고도 무시했다. “주치의는 심각한 어조로 경고했다. 지금 건강을 챙기지 않으면 위급 상황까지 갈 겁니다. 왜 이렇게 몸이 망가졌는지 꼭 생각해보세요. 나의 전설을 무너뜨리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전설에 대한 또 다른 전설을 만들고 싶었다. 주치의의 말을 또 귓가로 흘렸다”는 대목을 읽을 때는 저절로 긴장이 됐다. 잘나가던 시절을 지속하고 싶은 욕망에 빠진 한 인간의 파멸은 육체가 병들어가면서 무너진다. ‘당뇨 합병증과 저혈당 쇼크에 빠지다’라는 표현은 단호하고 선명하다. 병증을 설명하는 의학용어들이 비명과 절규보다 더 적확했다. 소설집 ‘대사증후군’ 속 다른 작품들에서도 의학용어는 적시에 등장한다. 각종 호르몬은 주인공들의 상태를 가감 없이 말해주고, 다양한 병증은 심리까지 콕 집어준다. 몸을 설명하는 용어에 새로운 매력과 호기심이 발동할 지경이다.

   
“이 남성의 이야기는 어쩌면 우리 사회 이야기입니다. 경제성장만 중요시해 오는 동안 다른 분야는 병들었지요. 대사증후군에 걸린 겁니다. 사람 몸이든, 사회나 국가든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허택 소설가의 말이 맞다. 대사증후군에 걸린 주인공은 바로 우리 자신이고, 또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다. 지금 이 신문의 다른 지면을 보라. 우리가 앓고 있는 대사증후군의 증상을 경고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왜 이렇게 몸이 망가졌는지 꼭 생각해보세요’라는 경고이다.

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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