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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의 그곳에서 만난 책 <28> 김언 시인과 시집 ‘한 문장’

걷고 또 걷고 쓰고 또 쓴 그의 詩 … 한 문장 한 문장 가볍지 않다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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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2-12 19:05:51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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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질구질 늘어지지 않는 문장
- 치밀하고 촘촘히 짠 직물 같아
- 생각 꼬리에 꼬리 물고 이어져
- 책 읽기 본질에 가까워지는 글
- 시인의 언어 실험·고뇌 엿보여

“도대체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도대체 얼마나 깊이, ‘핵심’을 파고 있는 것일까.” 김언 시인의 시를 읽을 때마다 이런 마음이 든다. 그의 시집을 읽는 것은 책과 제대로 맞붙어 보는 일, 책 읽기의 본질에 가까워지는 일이다. 한 단어 한 문장을 짚어가며, 때로는 더듬거리며, 천천히 책장을 넘기게 된다. 그러다 보면 마치 퍼즐을 맞추고 있는 기분도 든다. 김언의 신작시집 ‘한 문장’도 그랬다. 서울시 마포구 연남동 경의선숲길에서 그를 만났다. 하염없이 길을 걷고 싶을 때 그가 가끔 찾는 곳이다.
   
김언 시인이 서울 마포구 경의선숲길에서 새 시집 ‘한 문장’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부산을 떠나 서울에 정착한 지 올해로 10년이 됐다.
김언은 1973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부산대 산업공학과, 국문과를 졸업했다. 어릴 때부터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으나 생각 없이 공대에 진학해 졸업하고, 결국 국문과에 다시 입학했던 것이다. 문학을 떠날 수 없는 운명이었다. 명지대 대학원 문예창작과에서 시를 쓰고 공부하며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8년 ‘시와 사상’으로 등단했다. 시집 ‘숨쉬는 무덤’ ‘거인’ ‘소설을 쓰자’ ‘모두가 움직인다’를, 산문집으로 ‘누구나 가슴에 문장이 있다’를 발표했다. 그리고 올해 초에 시집 ‘한 문장’을 냈다.

■걷고, 걷고… 쓰고, 쓰고

   
한 문장- 김언 지음 /문학과지성사 /2018
“2004년 무렵부터 부산과 서울을 오갔고, 2008년부터 서울에 정착을 했으니 벌써 10년이 됐군요.” 그가 서울 생활 중 연남동에서 보낸 시간이 3년 남짓 된다. “경의선 폐철도 노선을 따라 긴 산책로가 조성되면서 경치도 좋아졌고, 문화공간도 생겨났죠. 하지만 땅값, 집값이 오르면서 원래 살고 있던 주민들이 이곳을 많이 떠났어요. 이전의 모습을 떠올릴 수 없을 정도로 변했습니다. 여기서 살던 시절이 생각날 때고 있고, 좀 걷고 싶을 때고 있고, 그럴 때면 이곳을 찾아요. 특별히 하는 건 없어요. 그냥 걷는 거지요.”

그러고 보니 그가 어지간한 거리는 늘 걸어서 이동하는 사람이었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저는 어딜 가든 땅에 붙어서, 걸어 다녔어요. 부산에서 살 때는 하루에 3, 4시간을 걸어 다녔지요. 그런데 서울에서는 걷기 힘들었어요. 그래서인지 걷고 싶을 때 이곳을 찾게 됩니다. 걷기 좋거든요” 그에게 경의선숲길은 장소나 공간의 의미가 아니라 명상과 사유가 있는 길이었다.

“서울에 와서 2010년까지 시를 많이 썼어요. 그런데 그 이후에는 많이 쓰지 않았고, 시도 좀 바뀌었어요. 대신 컴퓨터 안에 수천 개의 파일이 있었죠. 쓰다 만 시, 한 줄만이라도 쓴 흔적까지요. 그걸 뒤집어보면 시작할 만한 것이 있었어요. 그 파일들을 3, 4번씩 뒤집었죠. 2014 쯤 되니까 그것도 고갈되더라고요, 겨우 그 정도의 매장량에 불과한 광산이었던 거지요.”

시를 쓰지 않을 때도 그는 매일 트위터에 글을 썼다. “매일 트위터를 하다 보니 그것도 짤막한 읽을거리가 되더군요. 그걸 모아 ‘누구나 가슴에 문장이 있다’를 펴냈죠. 한 줄로 된 문장이니 시 같기도 하고, 산문 같기도 해요.” 그 책 속의 짧은 문장들은 어쩌면 시집 ‘한 문장’의 예고편 같은 느낌이 든다. 예를 들면 ‘마감’이라는 제목의 글이다. “우려했던 사태가 착실하게 벌어지고 있다. 왜 쓴다고 했을까. 전부 다.” 원고 마감에 쫓겨 본 사람이라면 백번 공감할 수밖에 없는, 그래서 웃음이 터지는, 그래서 가슴 쓸어내리게 하는 글이다. 가끔 김언의 시를 읽으면서 구질구질 늘어지지 않는 단순적확함에 빠져들게 하는 바로 그 매력이다.
■새로운 시도와 실험으로 쓴 詩

시집 ‘한 문장’은 언어에 대해 그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지 느끼게 한다. ‘있다’라는 시는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한동안 생각에 빠지게 한다. “나뭇잎이 푸르고 있다. 짙푸르고 있다. 진푸르고도 있다. 간혹 연푸르고도 있는 나뭇잎이 올라가면서 더 푸르고 있다. 올라가면서 가늘고 있는 나뭇가지가 더 올라가면서 가늘고 있다. 여름 한창을 가늘고 있다. 여름이 가늘고 있다. 낮이 가늘고 있다. 한낮이 사라져 있다. 온데간데없이 있다. 부지런히 도착해 있다.” 푸르고 있다, 사라져 있다, 온데간데없이 있다…. ‘있다’는 동사를 이렇게 사용하고 있으니, 시인이 포착해버린 한 순간마다 눈앞에 나타나는 느낌이다. 김언이 시도한 문장실험이다.

‘있다’라는 똑같은 제목의 시가 나란히 펼쳐져 있는 걸 처음 보았을 때는 당황했다. 그러나 이 또한 김언의 새로운 시도이며 실험이다. 또 한 편의 ‘있다’는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슬퍼하고 있고 슬퍼지고 있고 슬프고 있고 그래서 슬프다. 사이사이 다른 감정이 끼어든다.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기쁨이 있고 환희가 있고 절망이 있고 분노가 있고 비굴함이 있고 순식간이 있고 나는 다 빠져나왔다. 다 빠져 나와서 빠져 있다.” 있고, 있고, 있고…. 슬픔에 빠져 있는 동안에도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천변만화를 많은 ‘있다’로 말하는 듯하다.

   
김언의 시가 읽기 편하지 않다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건 그의 시에는 특이한 매력이 있다는 것이다. 애매모호해 보이지만 사실은 치밀하고 촘촘하게 짠 직물이다. 천천히 읽으면(소리를 내어 리듬을 느끼길 권한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걸 눈으로 보는 것 같다. 시집 한 권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고 ‘있다.’

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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