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6년 예술영화전용관 지정돼
- 개봉관 못 구한 감독에게 무대를
- 관객에게 다양한 영화 볼 기회를
- 12년간 ‘독립영화의 메카’ 역할
- 정부 지원 끊기며 경영난 못버텨

- 영화계 “가치 지닌 공간 존중을”

기계로 매끈하게 뽑은 영수증 대신 영화 포스터를 넣어 명함 크기로 만든 티켓, 독립·예술 영화 위주의 상영시간표, 무대를 반원형으로 감싼 140석 규모 객석, 스크린은 단 하나뿐인 단관 극장….

	이달 말 문을 닫는 부산 남구 대연동 국도예술관에서 지난 18일 김수정 감독의 영화 ‘파란입이 달린 얼굴’의 GV(관객과의 대화)가 열리고 있다. 씨네소파 제공

이달 말 문을 닫는 부산의 예술영화 극장 ‘국도예술관’이 간직한 ‘남다른’ 풍경이다. 2006년 예술영화 전용관으로 선정돼, 2008년 부산 중구 남포동에서 지금의 남구 대연동 부산문화회관 곁으로 옮긴 국도예술관은 10년 넘게 ‘독립·예술영화의 메카’로 통했다. 지난 18일 오후 7시 국도예술관에서 김수정 감독의 독립영화 ‘파란입이 달린 얼굴’ 시사회가 열렸다.

	국도예술관에 입장하기 위해 관객들이 줄을 선 모습.

부산에 기반을 둔 독립영화 배급 협동조합 씨네소파가 주최한 이번 행사에는 관객 130여 명이 몰려 영화관을 가득 채웠다. 시사회 시작 전부터 일찌감치 극장 앞을 찾은 관객들은 극장 앞에서 아쉬움을 달래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폐관 소식을 들은 영화팬들의 충격은 컸다. 국도예술관의 오랜 팬이라는 40대 여성 관객은 “시내 중심에서 멀지만, 대형 멀티플렉스와는 다른 분위기에서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볼 수 있는 곳이었다”며 “오랜 팬이었는데 정말로 아쉽고 안타깝다”고 했다. 대학생 주하영(여·23) 씨는 “‘파란입이 달린 얼굴’ 시사회 초청을 받아 국도예술관에는 처음 왔는데 무대와 객석의 배치가 좋고 아늑한 느낌을 준다. 그동안 몰랐던 게 아쉽다”고 했다.

3시간 가까이 이어진 행사에서 국도예술관의 역할과 의미가 드러났다. 부산 출신인 김수정 감독은 이날 “영화제가 아닌 곳에서 관객을 이렇게 직접 만나는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독립·예술영화는 국도예술관 같은 특별한 공간이 아니라면 그만큼 관객과 만날 기회를 잡기 어렵다는 뜻으로 이해됐다. 우리나라 예술영화관 가운데 가장 많은 GV(관객과의 대화)를 열었던 만큼 관객 수준도 높다. 씨네소파 오용택 씨는 “이곳에서 시사회를 두 번 열었는데 예술영화 애호가들이 많고 안목 높은 관객이 많았다”고 말했다.

국도예술관은 2015년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 중단 후폭풍으로 지역 예술영화관의 폐관이 속출할 때도 살아남았다. 3년 전만 해도 전국 31곳에 달했던 예술영화관은 현재 부산 2곳(국도예술관, 아트씨어터 C+C) 등 전국에 19곳 남았다. 국도예술관이 문을 닫으면 이 숫자는 부산 1곳, 전국 18곳으로 줄어든다. 국도예술관 정진아 프로그래머는 “박근혜 정부 시절 영진위가 ‘문화계 블랙리스트’등에 따라 2015년부터 2년간 지원을 끊었던 여파가 상당히 컸다. 영화 수급은 어려워졌고 그러다 보니 관객도 줄었다. 그때도 관객들 힘으로 끝까지 버텼는데 결국 문을 닫게 돼 아쉽다”고 말했다.

영화계에선 전용관에 대한 새로운 개념 정립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상업영화관 등의 수익시설이 아니라 교육·공익적 목적을 띤 공공시설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 작품을 일반 상영관에서 개봉한 박배일 감독은 한국의 극장 환경을 안타까워하며 의견을 말했다. “이번이 계기가 돼 공공적으로도 가치가 있는 공간, 공공재로서 갖는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겼으면 한다”고 짚었다.

국도예술관은 폐관을 앞두고 다양한 행사를 준비 중이다. 정진아 프로그래머가 이날 관객들에게 기념으로 나눠준 책갈피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국도의 힘은 관객. 늘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홍주 기자 hjeye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