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경 스님은 14년간의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전남 순천 송광사 탑전의 한 칸짜리 반지하 ‘왕국’으로 돌아왔다. 도시의 습(習)을 버리고 산중 생활에 집중하기 위해 스님이 택한 것은 독서와 산행이었다. 고즈넉한 일상이 이어지던 어느 날, 과일 껍질 등을 버린 쓰레기 봉지를 뒤지는 고양이를 발견했다. ‘이 풍족한 세상에 사람이건 동물이건 배고픈 것만은 절대 안 된다’는 마음에서 우유와 빵을 챙겨줬다. 종이 상자에 헌 수건을 깔아 산사의 겨울바람을 막을 집도 만들어줬다. 그렇게 스님과 떠돌이 길냥이의 인연이 시작됐다.

이 책은 ‘고양이가 나에게 가르쳐 준 것들’로 요약할 수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고양이는 단조로운 삶을 낯설게 하는 존재이자 사건이었다. 무엇이든 낯선 것은 일상과 생각을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가 된다. 사료를 고르고 잠자리가 될 상자를 마련하고 털을 빗겨주고 상처에 약을 발라주는 등 고양이와의 관계가 무르익으면서 비롯되는 설렘 걱정 화 분노 슬픔 불안 기쁨 등 온갖 감정 속에서 ‘혹시 이런 것이 고양이의 생각일까’하고 넌지시 짚어보게 됐다.

그 과정에서 스님은 사람 사이에서 알기 어려운 많은 것을 깨닫게 됐다. 우선 ‘바라보기’다. 고양이는 바라보기를 좋아한다. 1㎝라도 높은 자리에서 보는 것을 선호한다. 이 바라보기는 불교적 수행이나 일상의 성찰에서도 중요한 요소다. 얼굴을 보여주는 거울은 있지만 마음을 보여주는 거울은 없다. 따라서 자기성찰을 통해 마음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고양이의 바라보기를 통해 스님은 참선을 색다르게 생각해보게 됐다.

얼떨결에 충실한 ‘집사’가 된 스님이 고양이에게 말한다. “아무튼 냥이와 나, 아직 우리 사이 이별은 모르는 거니까, 우리 오래오래 같이 살자!” 박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