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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의 그곳에서 만난 책 <23> 나여경의 소설집 ‘포옹’

위기에 내몰린 각각의 삶을 오래 찬찬히 들여다보다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7-11-20 18:40:05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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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대에 정착한 부산 문현동
- 묘지와 삶의 터전이 공존하던
- 그 곳서 글을 쓰고 작가가 됐다

- 사랑과 애증으로 얽힌 가족
- 가족의 부재로 오는 상실감
- 너무나도 당연한 존재에 대해
- ‘불온한 작가’는 의미를 묻는다

사람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일까.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가족이 어떤 의미인지 우리는 안다. 때로는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저런 게 가족이구나 하고 느끼기도 한다. 나여경의 두 번째 소설집 ‘포옹’은 가족이 무엇일까, 가족의 구성원인 개인은 누구일까를 생각하게 한다.
   
나여경 작가가 부산 금정구 남산동 요산문학관(요산 생가)의 뜰을 거닐고 있다. 김성효 기자 kimsh@kookje.co.kr
나여경은 요산문학관 국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요산 김정한 선생을 기리는 문학제를 마친 며칠 뒤, 문학관으로 그를 찾아갔다.

“요산 선생님의 복원된 생가 툇마루에 앉아 있는 걸 좋아해요. 며칠 전만 해도 국화가 만발해있었는데, 지금은 지고 있네요.” 나여경은 늦가을 햇빛이 내리는 요산 생가 앞의 뜰을 안내했다. 그는 직접 국화를 심기도 했다. 그 사실을 아는 문인들은 ‘여경국화’라는 이름을 붙여주기도 했다. 나여경은 “이곳에 있으면 요산 선생님의 품 안에 있는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그런 기분은 부산에서 활동하는 소설가로서 누리는 행복이라고 그는 말했다.

■무덤이 가까이 있던 그 마을에서

   
포옹- 나여경 /전망 /2016
나여경은 196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0년 부산으로 이사를 왔다. 2001년에 ‘경인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첫 소설집 ‘불온한 식탁’을 낸 뒤부터 그에게는 ‘불온한 작가’라는 애칭이 따라다닌다. 여행산문집 ‘기차가 걸린 풍경’, 두 번째 소설집 ‘포옹’을 내놓은 지금까지도 그 애칭은 변함이 없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가 계몽사에서 출간한 20권짜리 전집을 사 주셨어요. 길을 걷다가도 버려진 포장지에 인쇄된 글자를 읽을 만큼 문자를 그리워하던 저의 갈망이 그때 해소되었지요. 먼지 쌓인 길 위에 소나기 내린 기분이랄까요. 여중, 여고 시절에도 책이 친구였어요. 아버지 책상에서 백과사전도 꺼내 읽고, 노란색 표지에 한지로 제목이 인쇄된 톨스토이의 ‘부활’을 읽었어요. 신춘문예 당선소감에서 ‘부활’이 내게 소설을 쓰게 했다고 말했죠.”

소설가가 된 그는 언젠가 여고 시절 생활기록부에서 자신이 3년 내내 장래 희망에 ‘작가’라고 쓴 걸 다시 발견했다. “그걸 보면서 내가 작가가 되고 싶어 했었구나, 그랬었구나, 하는 생각했죠.” 부산에 이사 온 그는 남구 문현동에 살면서 안동네 돌산마을을 만났다. 6·25 때 피란민들이 공동묘지에 삶의 터전을 만든 마을에서 그는 집 옆에 그대로 남아있는 무덤의 흔적을 보았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그 경계가 없는 마을을 보며 그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의 오랜 꿈은 그렇게 부산에서 발화했다.

‘포옹’에 수록된 ‘어둠의 방’에도 그 마을 이야기가 나온다. 소설의 주인공은 집 사진을 찍는 사진가이다. “어느 순간부터 여러 가지 집 사진과 나란히 걸린 안동네 무덤 사진이 할머니 말처럼 둥근 지붕을 가진 예쁜 집처럼 보였다. 죽음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진흙탕에서 아이 낳고 모진 목숨 연명하게 한 아름다운 집으로…. 어둔 무덤가에 내린 따뜻한 햇볕으로 꽃도 피게 하고 열매도 맺게 해주며 삶을 살아가게 한 세상에 둘도 없는 집. 그것은 지금까지 내가 찍어온 집들 중에 가장 아름답고 멋진 집이었다.”

어쩌면 나여경은 그 마을에서 전쟁을 겪고, 가난을 이겨내고, 새로운 희망으로 삶을 꾸려가는 동안 끈끈한 정으로 함께 했던 ‘가족’들을 보았을 것이다.

■신문기사 보고 쓴 소설 ‘망(望)’

작품 ‘망(望)’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하는 가장, 가장을 믿는 가족 그리고 마침내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 한 가족의 이야기이다. 이 가족은 인간이 아니라 멧돼지이다. 나여경은 ‘어미 4마리, 새끼 7마리가 먹을 것이 없는 가덕도를 떠나 바다를 헤엄쳐 부산 강서구의 한 아파트까지 왔다가 모두 사살됐다’는 보도를 접했다.
“이 기사를 보고 마음이 아팠어요. 소설을 써야겠다고 마음 먹었죠. 이 사회에서 점점 위기의 벼랑으로 내몰리는 인간과 다르지 않구나 싶었어요. 애초에 인간의 영역이 아니었는데 도토리 한 알까지 주워가는 인간 중심의 비정함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죠. 추위가 몰려오는 산 속에서 굶어죽을 위기에 처한 새끼에게 먹을 것을 찾아주고 싶은 어미 멧돼지가 한 가족을 부양하는 가장과 무엇이 다르겠어요.”

소설에서 멧돼지 가장은 이렇게 한탄한다. “내 소망은 소박해졌다. 도토리나 작은 과일을 주워 먹으며 새끼들과 타고난 명대로 사는 것. 하지만 우리의 명은 하늘에 달린 것이 아니라 인간들의 손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다. 산을 털러 오는 멧꾼들의 총이나 석궁에 당하거나 사냥개의 이빨에 물려 비명횡사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인간들이 우리 구역을 침범하고 땅을 빼앗으면서 우리들의 생활은 전에 없이 황폐해졌다.” 가족의 삶이 위기에 내몰리는 상황이 멧돼지만의 일이겠는가. 소설 ‘망’에는 온전히 함께 살기를 원했던 가족이 있다. 우리의 삶이 이들과 다르지 않다.

   
‘포옹’을 읽다 보면 사랑과 애증으로 얽힌 가족, 가족의 부재가 가져온 상실감이 느껴진다고 했더니 나여경은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쓰고 나서 묶고 보니, 마치 작정을 하고 쓰기라도 한 것처럼 그렇더라”고 답했다. 사람들의 삶을 오래, 찬찬히 들여다보는 그의 마음이 그 말 속에 담겨 있다.

책 칼럼니스트

※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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