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7년부터 2년간 본지에 연재
- 역사적 사실 단 한 줄에 의지해
- 현실에 굴복 않는 형형한 기개와
- 강동찬과의 떨리는 로맨스까지
- 솔직하고 호쾌한 문체로 살려내
- “내 고향 진주에 빚 갚은 기분”
“신문 연재소설에는 종교, 전쟁, 섹스가 빠지면 안돼요. 독자 관심을 끌어야 하니까.”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인데 ‘훅 치고 들어오는’ 솔직함이 약간 당황스럽다. 열악한 기록 자료에 무한대의 상상력을 가미한 역사소설로 읽었는데, 작가는 통속소설의 범주로 읽히길 바라는 걸까. 그저 이리저리 돌려 말하지 않는 직설적인 스타일이라는 것을 아는 데 긴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한국소설가협회 이사장인 김지연 소설가가 3권짜리 장편 역사소설 ‘논개(정은출판)’를 펴냈다. 1997년 1월부터 2년간 국제신문에 연재한 소설을 무려 20년 만에 출간한 것이다.
열혈 독자가 많았다고 하니 연재를 끝내자마자 책으로 내면 좋았을 것을, 어쩌다 20년 세월을 흘려보냈을까. “당시만 해도 소설을 신문사에서 출판하면 잘 안 된다는 징크스가 있었어요. 대형 출판사에서 내겠다는 욕심도 있었고. 그런데 원고 타이핑부터 해서 여러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더라고. 바쁘게 지내다 보니 책도 못 내고 시간이 이만큼이나 흘렀어요.”
연재 당시 신문을 받아 든 사람들이 소설 실린 지면부터 찾아 뒤적일 만큼 인기를 끌었다는 이 작품은 논개를 소재로 삼은 다른 소설들과 비교해 봐도 문체와 서사가 거침없고 호쾌하다.
작가가 의존한 역사적 사실은 단 한 줄이다. ‘논개는 왜병장을 끌어안고 촉석루 낭떠러지에서 투신한 진주의 관기였다’. 조선 광해군 때 발간된 유몽인의 야담집 ‘어우야담’에 실린 논개에 관한 서술이다. 논개만큼 신비로운 문학적 모티브도 드물다. 출신이나 행적에 관해 뚜렷이 알려진 것이 없는 기생. 19세기 후반에 와서 논개가 의병장 최경회의 첩이라는 설, 혹은 가능성이 대두됐고 그의 출생지로 짐작되는 전북 장수에서는 이를 활용한 스토리텔링 작업이 활발히 이뤄지기도 했다.
작가 역시 그와 같은 주장에 따라 관련 취재를 안 한 것은 아니나, 결국 ‘논개는 진주의 관기였다’라는 기록 하나만을 취하기로 했다. “내게 영감을 준 것은 최 장군 첩실인 반가 출신 논개가 아니라 그저 천한 신분인 기생으로서 가슴에 의기를 품고 살다가 의로운 죽음을 맞이한 논개였으니까요.”
소설 속 논개의 시작은 가슴이 아프다. 진주목 변방 도동 선학산 자락. 어디서 흘러들어왔는지도 모르는 논개 모녀는 찢어지게 가난하다. 폐병 든 어미가 양반집 낱일을 해주는 것으로 목숨을 이어가지만, 딸만 남겨두고 어미는 죽고 만다. 더러운 병 걸려 죽었다는 온 동네 멸시에 당장 먹을 것도 입을 것도, 몸 누일 곳도 없는 처지. 논개는 산속 굴로 들어가 혼자 살기로 한다. 폐 끼치지 않고, 씨받이로 들여앉히려는 위협에도 굴복 않고, 결혼도 않고, 절대 죽지도 않겠다며 분연히 일어서는 논개의 안광이 형형하게 빛난다. 비쩍 마른 몸에 넘치는 기상은 훗날의 의기를 떠올릴 때 설득력이 충분하다.
논개는 역경을 딛고 성장한다. 남장을 한 채 말 타고 활 쏘며, 재물 갖다 바치는 양반들을 조롱하는 진주제일색. 그러나 강철 같은 논개에게도 손길 한 번으로 눈물 떨구게 만드는 연인이 있다. 비참하게 살던 자신을 구원해준 의병장 강동찬. 몰락한 양반이다.
1권에서 조선 여인에게 씌워진 모든 굴레에 저항하는 논개가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면, 2권의 묘미는 두 주인공의 가슴 떨리는 러브스토리다. 이미 이야기에 푹 빠져든 독자라면 3권에서 임진왜란을 둘러싼 정세에 관한 묘사가 다소 자세히 이어진다 해도 그 덫을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다.
또 하나 큰 매력은 ‘말맛’이다. 경상도 다른 지역 말과도 은근히 구분되는 생생한 진주 사투리의 구현은 실로 ‘네이티브’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찰진 사투리로 뱉어내는 욕설까지도 잘 빚은 찰떡같다.
김지연 작가에게 이 책은 ‘특별히 특별’하다. “내가 진주 출신이에요. 진주 지역 신문사에서 문화부 기자도 했어. 내 고향 진주에서 논개의 의미는 말로 표현 못 할 정도로 크지. 이제야 고향에 빚을 갚은 기분이에요.”
신귀영 기자 kys@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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