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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시와 부산문화재단이 지난 5월 중구 광복로 일대에서 연 조선통신사 축제 행사 모습. 시는 조선통신사 관문 역할을 한 부산의 역사적 상징성을 알리고자 2001년부터 조선통신사 행렬 재현 행사를 열고 있다. 국제신문DB |
■한·일 민간의 힘, 5년만의 성과
한·일 조선통신사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사실상 유네스코의 공식 발표만 남겨두고 있다. 유네스코는 지난 24~27일 프랑스 파리에서 전체회의를 열고 한국(부산문화재단)과 일본(NPO법인 조선통신사연지연락협의회·이하 연지협의회)이 공동 신청한 조선통신사 세계기록유산 등재 여부를 심사했으며, 유네스코 국제자문위원회(IAC)가 등재를 권고하는 안을 채택해 사실상 등재가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문화재단 관계자 역시 “한·일 학자들이 꼼꼼히 준비한 덕분에 유네스코 측에서 별다른 요구 없이 무난하게 심사가 이뤄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유네스코는 30일(현지시간) 세계기록유산 목록을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한·일 조선통신사 기록물은 조선시대 1607년부터 1811년 12차례에 걸쳐 일본에 파견된 조선통신사가 남긴 외교, 여정(일기), 문화교류 기록 등 111건 333점이다. 이들은 모두 한·일 학자들이 하나씩 합의해 목록에 올린 것으로, 조선통신사가 오갔던 양국 교류의 실상을 반영한 평화적, 지적 유산을 포함하려 애썼다. 한국의 경우 김의신 서첩, 변박의 묵매도, 이의양의 화조도 등 사절단이 남긴 기록과 그림 등 63건 124점이 목록에 올랐으며, 부산박물관과 국립중앙도서관, 국립해양박물관 등 9개 기관에 흩어져 보관되어 있다. 일본은 조선통신사가 가져간 조선 국서 등 관련 기록물 48건 209점이 포함됐으며, 이들 역시 교토대학 박물관 등 11곳에 보관돼 있다.
한국과 일본이 조선통신사 기록물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기로 한 것은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산시는 조선통신사의 관문 부산의 역사적 중요성을 부각하기 위해 2001년부터 조선통신사 행렬 재현 행사를 열었다. 한국과 일본에서 조선통신사 행렬 재현 행사를 맡은 문화재단과 일본 연지협의회는 조선통신사를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가치를 높이자는 데 합의하고, 2012년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함께 진행하기로 했다. 당시 문화재단 대표였던 부경대 남송우(국어국문학과) 교수는 “한·일 관계가 워낙 민감해 정부 차원에서 이를 추진하기 어려워 민간 학자들이 주축이 됐으나 조직과 네트워크, 예산이 취약해 어려움이 많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후 양측은 한·일 조선통신사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학술위원회와 실행위원회로 업무를 분담하고, 12차례에 걸쳐 학술회의를 열고 토론과 고증 작업을 거쳐 세계기록유산 등재 목록을 작성한 뒤 지난해 3월 30일 유네스코에 신청서를 제출했다. 한국 측 학술위원장을 맡은 강남주 전 부경대 총장은 “한국과 일본의 역사 인식 차이로 문구 하나하나가 민감했다”고 회고했다.
■세계적 문화유산으로 가치 높여야
한·일 조선통신사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것은 굴곡진 양국의 역사에 ‘평화의 싹’이 존재했음을 전 세계에 알리고, 그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어서 의미가 크다. 특히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과거사와 북핵 문제로 냉랭한 상황에서, 학자들이 협력해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성과를 일궈낸 것은 민간 차원에서 양국 교류의 물꼬를 틀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한 것이라 의미를 더한다.
문화재단은 세계기록유산 등재가 공식 확정되면 다음 달 25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축하 행사를 열고 세계기록유산 등재 과정을 담은 백서와 도록 발간, 한·일 예술인 교류, 청소년 역사 캠프 등을 통해 조선통신사의 가치를 알린다는 계획이다. 장기적으로 국·시비를 확보해 전용 기념관 건립과 세계 도시 순회 행렬 등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지자체가 주도하다 보니 조선통신사의 가치를 알리는 데 한계가 있어 정부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매년 시가 조선통신사 행렬 재현 축제를 열고 있지만 예산 부족 탓에 행사를 확장하기 어려운 상황이고, 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조선통신사역사관은 공간이 좁아 교육 홍보와 역할에 그쳐 아카이브 기능을 하기 어렵다. 또 조선통신사 기록물이 전국 9개 박물관과 도서관에 흩어져 보관돼 이를 활용한 특별 전시나 기획전을 열 때 기관 간 협조를 얻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남 교수는 “중앙이 아닌 지역에서, 관이 아닌 민간에서 주도적으로 추진해 여기까지 온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이제는 조선통신사의 역사적 의미를 현재에서 어떻게 풀어낼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일각에서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계기로 조선통신사를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국내 조선통신사 후손 모임 ‘조선통신사현창회’가 자체적으로 자료 발굴과 연구를 준비하고 있어 학계와 민간, 공공이 힘을 모아 학문적, 역사적 가치를 높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문화재단 유종목 대표는 “정부, 지자체와 논의해 예산 등의 협조를 얻어 조선통신사의 가치와 의의를 더 많은 이에게 알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 조선통신사
임진왜란 이후 일본 에도막부가 조선과의 국교 회복을 위해 조선에 요청해 1607년부터 1811년까지 12회에 걸쳐 조선에서 일본으로 파견된 외교사절단.
※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유네스코는 1992년 ‘세계의 기억’ 사업을 설립해 각국의 다양한 기록물을 기록유산으로 등재하고 있다. 한국은 ‘난중일기’ ‘고려대장경판 및 제경판’ ‘KBS 특별생방송-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기록물’ 등 13개가 등재돼 있다.
◇ 조선통신사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 경과
▶2012년 부산문화재단, 조선통신사연지연락협의회에 세계기록유산 공동 등재 제안
▶2013년 민간 차원 학술 심포지엄 개최 등 공동 등재 위한 업무 추진
▶2014년 공동 등재 한국 추진위원회 발족, 1차 한·일 공동 추진위원회 회의 및 한·일 공동 학술위원회 회의 개최
▶2015년 2~9차 한·일 공동 학술위원회 회의 및 추진 경과 보고회 개최
▶2016년 조선통신사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서 제출
김현주 기자 kimhju@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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