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문학자가 좇은 한시의 세계
- 2년6개월간 ‘발효’된 기행 속편
- 난정·소흥·의흥 역사 살피고
- 풍성한 황주 곁들여 풍류 완성

풍류(風流)가 우리를 구할 것이다.

	소흥의 호수 감호의 호로취도에 있는 투료노사(投醪勞師) 조각상. 월왕 구천이 출정하기 전 선물 받은 소흥주를 시냇물에 쏟아붓자 군사들이 떠 마시고 힘을 얻었다는 고사를 표현했다. 창비 제공

이 책 281쪽의 문장을 소개한다. “묵화정을 지나 더 안쪽으로 가면 사당의 정청(正廳)이 나온다. 여기엔 ‘진득풍류(盡得風流, 풍류를 마음껏 즐기다)’라 쓰인 목판 편액 밑에 왕희지상이 그려져 있다.” 저자 송재소 성균관대 한문학과 명예교수가 저서 시와 술과 차가 있는 중국 인문 기행 2에서 중국 절강성 소흥의 서남쪽 13㎞ 지점의 난저산 아래에 있는 난정(蘭亭·란팅)에 일행과 함께 가서 만난 풍경의 일부다.

한국한문학회장을 지내고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로 정년퇴직한 한문학자인 저자는 이곳에 서린 중국 최고 서예가 왕희지(303년 출생, 361년 서거로 알려짐)의 자취를 답사한다. 글씨뿐이겠는가. 평생 한국과 중국의 한시, 다산 정약용의 학문을 연구한 송 명예교수는 난정의 풍경과 역사에 어울리는 한시의 세계를 때로 진득하게, 때로 조곤조곤 풀어놓는다. 그리고 풍류에서 빠질 수 없는 또 하나의 세계, 술에 관한 설명과 체험이 곁들여진다.(빼놓을 수 없고 말고!) 이 책이 집중하는 술은 중국의 명주, 황주(黃酒)다.

2015년 저자는 ‘시와 술과 차가 있는 중국 인문 기행 1’을 내놓았다. 이 책은 꽤 관심을 끌었는데, 2권이 ‘무려’ 2년 6개월 만에 나온 것은 분명 늦은 감이 있다. 그 사연은 이렇다. “2015년 9월부터 중국 남경대학의 초빙교수로 있는 동안 비교적 시간 여유가 있어서 2권 집필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200자 원고지 700매가량의 내용이 (컴퓨터 조작 잘못으로) 날아가 버린 것이다.” 그 심정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어쨌든, 저자는 그렇게 ‘날린’ 원고를 다시 써서 이 책을 완성했다는 뜻인데 그 과정에서 또 한 번 책 내용이 ‘발효’됐을 것임을 생각하면 오히려 더 미더운 생각이 든다.

조금은 손쉽게 갈 수 있는 중국의 잘 알려진 여행지를 다룬 책이 아닌 점에서 이 책은 다르다. 이번 책은 절강성(저장성) 소흥(紹興, 샤오싱)과 강소성(장쑤성) 의흥(宜興, 이싱)만을 여행한다. 수십 년, 중국을 숱하게(50차례 이상) 드나든 저자가 이 두 곳을 콕 찍은 이유를 들어보자. “이 두 도시는 (중국의) 다른 어느 곳보다 인문학적 유산이 풍부한 곳이다.…특히 소흥의 인문학적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이렇게 작은 도시에 그토록 많은 역사적 유적을 보유한 곳은 아마 유례가 없을 것이다. 의흥에는 죽해(竹海), 종유굴 등의 자연경관도 빼어나다.”(5쪽 머리말)

월나라의 구천 범려 문종 서시에 얽힌 역사 유산, 중국 근현대 혁명투사인 추근(여성혁명가) 서석린과 예술가 노신(루쉰), 왕희지, 위대한 괴짜 예술가 서위, 양명학 창시자 왕양명…. 실로 놀랍도록 많은 역사 인물과 역사유산이 송 명예교수의 진득한 ‘가이드’를 거쳐 인문 기행의 중요 요소로 거듭난다. 그리고 소흥의 보물이라 할 술, 황주에 관한 풍성하고 상세하고 멋진 설명과 체험담이 인문 기행을 완성한다. 책을 읽고 나니 왠지 이런 독후감이 또렷이 맺혔다.

풍류가 우리를 구할 것이다.

조봉권 기자 bgjo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