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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에 찌든 나를, 버스 안 아이들이 살렸다

나는 스쿨버스 운전사입니다 - 크레이그 데이비드슨 지음/유혜인 옮김/북라이프/1만3800원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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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7-09-29 19:5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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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수아동 스쿨버스 운전사 된 가난한 소설가의 자전 에세이
- 장애라는 차이의 경계 허물며 결국 성장한 건 설익은 어른들

“젊고 가방끈도 길었고 전과도 없던” 한 남자가 망하는 건 순간이었다. 전업 소설가를 꿈꾸던 그는 20대 초반엔 소설을 쓰고 인쇄해 우편 봉투에 넣고 아무 데나 보냈다. 첫 단편집도 나오고 ‘지켜볼 만한 젊은 유망주 작가’라는 평가도 받았다. 하지만 오랜 시간 공을 들인 장편 소설이 망하자 “그렸던 미래가 손가락 사이로 허무하게 빠져나가”는 좌절감이 그를 감쌌다.
   
아이클릭아트 이미지
에이전트와 작별하고 통장 잔액은 바닥을 드러냈다. 먹고 살기 위해 주택 페인트공, 도서관 사서 등으로 닥치는 대로 일했던 그는 어느 날 특수아동 스쿨버스 운전기사가 된다. 지독한 슬럼프에 빠진 그를 구해준 건 바로 ‘그 버스를 타는 아이들’이었다.

나는 스쿨버스 운전사입니다는 무명 소설가였던 저자가 역경을 딛고 일어나도록 계기를 마련해준 1년간의 기록이다. 설익은 어른의 2차 성장기이자 빈털터리 무명 소설가가 인기 작가로 발돋움하는 자전 에세이다.

저자 크레이그 데이비드슨은 세계를 감동시킨 영화 ‘러스트 앤 본’의 원작자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거장 영화감독 자크 오디아르는 다리를 잃은 범고래 조련사와 밑바닥 복서가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담은 데이비드슨의 글을 토대로 영화를 만들었다. ‘러스트 앤 본’은 유수 영화제 31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고 12개 부문에서 수상하는 등 극찬을 받았다.

가난과 절망에 찌들어가던 서른두 살 저자의 인생을 이렇게 바꾼 건 버스 안에서 만난 아이들이었다. 자기의 행복한 세계에서 살아가는 자폐아 개빈, 지적 장애가 있지만 스타워즈에 관해서는 백과사전 수준인 빈센트, 핑크색을 사랑하는 소녀 나자, 미친 과학자 같은 면모가 가끔 출몰하는 올리버, 뇌성마비에 자동차 사고를 당해 휠체어를 타고 생활하는 제이크 등은 저자와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하며 친구가 된다.
“차이의 경계가 흐려지고 이 아이들도 여느 아이들과 똑같다고 보게 된 순간은 언제부터였을까? 그래, 이 아이들은 휠체어를 타고 틱 장애로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쉴 새 없이 손을 움직였다. 하지만 이제 그런 모습만으로 아이들을 정의하지 않는다. 애초에 그런 것들로 정의하지 말아야 했다. 그냥 평범한 아이들과 똑같았다. 내 아이들이었다. 빌어먹을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아이들이었다.”(273쪽)
속 ‘버스 이야기’는 시끌벅적하고 가슴 따듯하다. 버스는 고해성사의 장이었고 침묵 속에서 비밀을 공유하는 방이었다. 전날과 똑같은 노선, 매일 같은 길을 반복하는 건 지겨웠지만 버스 안에서는 지겨울 새가 없다. 대다수 일반인은 장애인을 만나면 적대감을 보이거나 무작정 동정한다. 저자도 “천사 같은 아이들을 지켜줘야겠다”고 생각해 아이들을 괴롭히는 사람들과 싸우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스스로 지키는 나름의 방식이 있었다. 벗어날 수 없는 짐을 짊어지고도 평범한 하루를 살아내는 아이들이야말로 강하다는 사실을 저자는 마주한다.

최민정 기자 mj@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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