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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남자] 청나라 여행기에 숨어있는 조선 망국의 전조 /정광모

열하일기 (상·중·하) - 박지원 지음/리상호 옮김/보리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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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7-08-18 18:59:30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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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지원 1780년 청나라 사절단 방문
- 건축 천문지리 등 신문물 상세 기록
- 당시 조선 지배층 받아들이지 못 해
- 필사본으로 전전하다 1901년 출판

‘열하일기’는 방대하다. 번역된 본문만 상·중·하권으로 1600쪽에 달한다. 천하의 박지원인들 이걸 단숨에 쓸 수는 없다. 1780년 청나라 건륭제의 칠순연(七旬宴) 축하 사절단에 동승해 북경과 열하를 찾은 후 4년에 걸쳐 심혈을 기울여 탈고한 책이 ‘열하일기’다. 중국 건축과 천문지리, 정치, 경제 등 모든 분야가 백과전서로 들어 있다. 지금도 책에 쓰인 길을 따라 똑같은 여정을 밟을 수 있을 만큼 기록은 꼼꼼하다.
   
박지원의 ‘열하일기’ 여행 지도. 보리 제공
박지원의 호기심은 무궁무진하다. 요동 관제묘를 들러서는 권술과 창봉을 보고, 북경에서 우리의 ‘동의보감’이 출판되어 유행하는 사실을 적는다.

연암은 별별 신기한 사실도 묘사한다. 큰 닭이 있는데 날개를 치면서 하루 삼백 리는 간다고 한다. 타조다. 황제 의장용 코끼리를 키우는 상방을 찾아 코끼리의 코와 어금니를 자세히 살피기도 한다.

박지원은 음풍농월하며 이국 풍경만 즐기는 구경꾼이 아니었다. 예리한 눈으로 나라와 백성의 삶에 도움이 될 사물과 기술을 기록한다. 청나라와 조선의 구들을 비교해 개선점을 찾고, 물을 대는 수레와 체로 가루를 치는 법식과 고치실을 뽑는 기구인 소차의 원리와 움직임을 자세하게 관찰해 조선에서 쓰기를 권한다. 사람과 짐 싣는 수레를 구별하는 점도 눈여겨보고, 그런 수레의 편리함에 탄복하며 조선 실상을 비판한다. “우리 조선에는 아직도 수레란 것이 없지만, 있다는 것도 바퀴가 똑바르지 못하고 바퀴 자국은 궤도에 들지를 못하니 수레가 아주 없는 셈이나 다름없다. 나라에서 수레를 이용하지 않으니 길을 닦지 않는 것이요, 수레만 쓰게 된다면 길은 절로 닦일 것이 아닌가?”

박지원은 북경에서 만리장성을 넘고 호북구 관문을 나서 열하에 있는 건륭제와 라마교 판첸을 만나본다. 멀고 먼 육로 사행은 고달프고 힘들다. 큰물이 지면 요동 벌판이 강으로 변한다. 제날짜에 북경에 닿지 못할까 동동대는 사신 마음이 안쓰럽다. 왜 북경까지 배로 가지 못할까? 신라 장보고 선단은 완도에서 당나라까지 배로 자유자재 다녔다. 조선은 삼면이 무한히 뻗어 나갈 수 있는 바다지만 조정은 황무지 대우만 했다. 사농공상의 위계에 묶인 조선은 공과 상을 천시해 수레도, 무역용 배도 잘 쓰지 못했다. 조선 지배층은 성리학 이념에 매이고 국제 정세에 어두운 편벽함으로 가득 찼다.

청나라 만주족은 불과 200만 인구로 중국을 다스렸다. 누르하치부터 건륭제까지 여섯 임금이 180년 통치하면서 청은 거듭 팽창했다. 몽골과 티베트, 준가르를 복속시켜 유라시아 대제국이 되었고, 인구는 명말 5000만 명에서 청 건륭제 때 2억8000만 명에 이르렀다. 청은 안으로는 다수 민족이자 구지배층인 한인을 잘 등용하고 대우하는 ‘만한일가’ 정책을 펴 안정되었다.

조선은 대제국으로 변신한 청나라의 문물과 통치술을 배우기는커녕 멸시하기 바빴다. 박지원은 열하일기에 쓴 ‘호질’과 ‘허생전’에서 성리학에 빠져 공허한 담론을 일삼고 북벌 망상에 젖은 조선 지배층을 비웃는다. 조선은 명나라가 망한 지 130년이 지나서도 명나라 마지막 황제 숭정의 연호를 쓰고 청나라를 오랑캐라고 얕잡는 망상에 사로잡혔다.

그 당시 서양은 어땠는가? 산업혁명을 시작하며 동양 침략 준비를 마쳤다. 조선은 바로 옆 청나라 문물마저 배척했으니 서양 무기와 과학을 받아들일 마음이 어찌 날까. 조선은 안에서 무너지고 있었다.

   
박지원은 ‘열하일기’에서 오랑캐면 어떤가, 누구에게든 배우고 또 배우자고 외치지만 정조마저 ‘열하일기’ 문체를 비판하고 속죄를 요구하는 형편이었다. 결국 필사본으로 돌던 ‘열하일기’는 조선이 기운 1901년이 되어서야 출판된다. ‘열하일기’는 유쾌하고 활발한 여행기이지만 역설적으로 조선 망국과 민족 고난을 알리는 전조로도 읽힌다.

소설가·‘작가의 드론 독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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