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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토박이 '토벽', 타지 출신 '신사실파' 60년 만에 화폭 대결

  • 국제신문
  • 박정민 기자 link@kookje.co.kr
  •  |  입력 : 2017-05-29 19:24:29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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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3년 피란수도 부산
- 추상미술동인 '신사실파' 등
- 전국 유명 예술인 모여들어
- 자극받은 지역 미술작가들
- 서양화동인 형성해 대결구도

- 시립미술관 8월 13일까지
- 두 그룹 작품전 동시 개최
- 현대미술 태동과정 한 눈에

1953년 피란수도 부산에서 벌어진 '토박이 화가'와 '타지 화가'의 타이틀 매치가 64년 만에 다시 펼쳐진다.
   
유영국 작가의 1953년 작 '작품(work)'.(왼쪽) '토벽' 동인으로 활동한 부산 대표 화가 김종식의 1953년 작 '자갈치제빙회사'. 두 작품 모두 1950년대의 실제 신사실파전, 토벽전에 출품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두 그룹의 당시 화풍을 볼 수 있다.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부산시립미술관은 오는 8월 13일까지 2층 전시실에서 '부산미술, 그 정체성의 출발 : 토벽동인전'과 '신사실파, 추상미술의 지평' 전을 동시에 개최한다. 부산 최초의 서양화 동인 '토벽'(김경 김종식 임호 서성찬 김윤민 김영교)과 한국 대표 모더니스트 화가(김환기 유영국 이규상 장욱진 이중섭 백영수)로 구성된 '신사실파'가 64년 만에 다시 대결하는 전시다.

1953년 피란수도 부산은 한국 문화예술의 용광로였다. 전국에서 모여든 예술인들이 출신 지역과 장르를 초월해 실존적 고뇌와 창작 의욕을 공유했다. 한국 대표 작가들의 개인전과 종군화가전, 3·1절 경축미전 등이 연이어 부산에서 열렸다. 한국 미술의 중심이 부산으로 이동한 때였다.

1947년 격동의 시기에 김환기 유영국 이규상 3인이 '새로운 사실을 표방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결성한 '신사실파'도 피란 대열에 합류한 무리였다. 신사실파는 '사실'에 기반을 둔 '새로운 추상'의 탐색이라는 과제를 실천한 우리나라 최초의 순수 추상미술동인이다. 그들은 서구 추상미술운동의 모방이 아니라 한국의 자연이나 전통과 결합을 통한 한국적 추상을 모색했다. 1948년 창립전을 열었고, 1949년 제2회전에 장욱진이 합류했다. 1953년 5월 피란수도 부산에서 이규상이 불참한 가운데 이중섭, 백영수가 합류해 제3회전을 열었다.

타지 화가들의 활동은 토박이 화가들을 자극했고, 긴장시켰다. 1953년 부산 최초 서양화 그룹 '토벽동인'이 창립해 3월 창립전과 10월 제2회 전시를 열었다. 이들은 창립선언문에서 '새로운 예술이란 것이 천박한 유행성을 띄운 것만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 아닐진데 그것은 필경 새로운 자기인식밖에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우리들은 우리 민족의 생리적 체취에서 우러나오는 허식없고 진실한 민족미술의 원형을 생각한다'고 밝혔다. 신사실파를 '천박한 유행성', 토벽을 '민족미술의 원형'으로 규정한 것이다. 신사실파가 추상미술에 경도된 것과 달리 토벽은 형상미술에 천착했다. 이번 전시에 나온 김윤민의 소, 김경의 명태, 김영교의 산, 김종식의 램프, 임호의 염소 등이 향토적 성향을 보여준다.

당시 두 그룹의 감정적 대립은 뜨거웠다. 토박이인 토벽 동인이 제도적 공간이 아닌 광복동 다방(루네쌍스, 휘가로)에서 전시를 연 반면, 외지에서 피란 온 신사실파는 국립박물관 임시사무소(현 중구 광복동 1가 51)에서 전시를 개최했다. 그림 도구가 귀하던 그 시절, 추상미술을 애호했던 주한미국대사관 측이 부산 토박이 작가를 배제하고 신사실파 등 타지 작가들에게만 화구를 후원한 사실이 알려져 지역 예술인들에게 박탈감을 안기기도 했다. 토벽동인 서성찬과 신사실파 김환기가 다방에서 격투를 벌인 일도 있었다.

두 그룹의 격렬한 토론과 경쟁은 부산 미술의 정체성을 태동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김영순 부산시립미술관장은 "토벽의 활동은 형상미학과 초현실주의적 환상성이라는 부산 현대미술의 아이덴티티를 태동시켰다. 피란수도 부산은 동시대 한민족의 집합적 기억을 생산한 문화수도"였다고 평가했다.
토벽동인은 휴전 후인 1954년 창선동 실로암 다방에서 제3회전을 개최한 뒤 해체했다. 시립미술관 양은진 학예사는 "한국미술의 주도 세력이 썰물처럼 빠져 나간 뒤 결집의 동력을 잃고 개별적인 탐색의 시기로 전환한 것이 아닐까 추정"했다. 이번 전시에는 두 그룹의 1940년대부터 1960년대 작품을 선보여 1953년 당시 부산에서 열린 전시의 작품 경향을 보여준다. 아쉽게도 1953년 전시에 실제 출품된 작품은 많지 않다. 당시 부산 광복동 일대 문화공간과 다방을 표기한 지도가 준비돼 눈길을 끈다.

박정민 기자 link@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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