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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세대, 일제의 만행 막연한 증오보다 제대로 알았으면"

이규정 '먼 땅 가까운 하늘' 21년만에 '사할린'으로 재출간

  • 국제신문
  • 김현주 기자 kimhju@kookje.co.kr
  •  |  입력 : 2017-05-25 19:33:34
  •  |  본지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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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할린 끌려간 동포의 삶 담아
- 여러번 울면서 집필한 대표작

- 작가는 역사의 파수꾼 사명감
- 재일동포 다룬 새 작품 쓰는 중

작가 이규정(80)의 '사할린'(산지니·전 3권)은 '집념의 소설'로 불러야 할 것 같다. 구상한 뒤 집필을 위해 1991년 러시아로 현장 취재를 떠나기까지 꼬박 20년을 기다렸고, 1996년 '먼 땅 가까운 하늘'(동천사·전3권)로 처음 발간하기까지 6년간 자료 정리와 퇴고를 거듭했다. 출간 뒤 출판사 사정으로 너무 빨리 절판됐던 이 소설이 '사할린'이란 제목으로 다시 빛을 보기까지 21년이 걸렸다.
이규정 작가가 부산 수영구 망미동 자택에서 21년 만에 재출간한 장편소설 '사할린'(전3권)의 내용과 그 속에 담은 뜻을 말하고 있다. 전민철 기자 jmc@kookje.co.kr
일제강점기에 속아서, 돈이 필요해서, 강제로 탄광으로 끌려간 사할린 동포의 눈물과 회한의 삶을 생생하게 그린 소설을 최근 재출간한 이규정 작가를 만났다.

이규정 작가는 1977년 월간 '시문학'에 단편소설 '부처님의 멀미'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사)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이사장을 지냈고, 부산 원로 민주인사 단체 '민족광장' 공동 의장이다. 신라대 국어교육과 교수로 2002년 정년 퇴임했고, 요산문학상 등 여러 문학상을 받았다. '번개와 천둥' '치우' '멀고도 먼 길' 등 소설집, 장편소설, 산문집, 동화집 등 많은 책을 냈다.

-'먼 땅 가까운 하늘'을 21년 만에 '사할린'으로 재출간한 소감은?

▶100여 편 소설을 썼지만, 긍지와 자부심 면에서 이 작품을 대표작으로 꼽고 싶다. 감회가 남다르다. 많은 분의 도움이 없었다면, 빛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장편소설을 재출간하는 사례는 드물다. 어떻게 성사됐는지?

▶1996년 '먼 땅 가까운 하늘'을 냈는데 출판사가 없어지면서 일찍 절판됐다. 안타까웠지만 잊고 지냈는데, 지난해 국제신문이 이 책을 "반드시 되짚어야 하며 지역 문단이 재출간을 모색해야 할 작품"으로 소개했다. 기사가 나간 뒤 몇몇 문인과 산지니출판사 강수걸 대표와 논의한 끝에 재출간에 뜻을 모았다. 그런데 20년 전 작업한 책이라 컴퓨터 파일이 남아있지 않았다. 난관에 부딪쳤는데, 내게 소설을 배운 제자가 방대한 원고를 파일로 완성해주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소설은 일제강점기 사할린 탄광으로 끌려간 조선인의 삶을 전한다. 고통받으면서도 꿋꿋했던 조선인과 위안부의 삶이 생생하다. 르포르타주(기록문학)를 읽는 듯하다.

▶이문근 최숙경 부부를 중심으로 일제에 의해 사할린 탄광으로 끌려간 다양한 인물의 사연과 억압받은 삶을 생생히 묘사하려 했다. 현지에서 만난 사할린 동포 여러 명의 경험을 구체적으로 옮겨 그런 면이 잘 드러났다. 주인공의 후손이 등장하는 1990년대 직전까지 이어져 대하소설 같다는 평가도 있다.

-소설 속 인물은 대체로 의지가 강하고, 주체적인 삶을 살았다. 모델로 삼은 인물이 있나?

▶이문근과 최숙경 외에도 박판도, 허남보, 최해설, 김형개, 박소분 등은 일본의 억압에도 자주적인 삶을 살려고 노력한 인물이다. 특히 최숙경은 신여성이었으나 남편을 위해 허벅살을 잘라주고, 약값을 벌려고 사할린까지 간다. 일본 앞잡이 노릇을 한 인물도 간간이 나오나 주요 인물은 아니다. 구태여 민족 배신자를 설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이야기가 풍부했다. 다만, 이문근은 대구사범 항일 학생운동을 주도한 이태길 선생의 넋과 기백을 참고했다.

-사할린 현지 취재는 어떻게 했는지?
▶일본에 억압당한 동포 이야기를 기록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다. 국제신문 복간(1989년) 기념으로 중편소설을 연재했을 때 사할린 동포에 관해 썼는데, 자료에만 의존하니 한계가 있었다. 그러다 1990년 '중·소 이산가족회'가 당시 소련을 방문한다는 신문기사를 발견하고 무작정 연락했고, 1년을 기다린 끝에 사할린에 갈 수 있었다. 2주일간 머물며 동포를 많이 만났고, 생생한 이야기를 취재했다. 고려인연합회 회장 등 현지 동포의 도움도 컸다. 인터뷰하면서 울고, 돌아와 자료 정리하면서 울고, 소설이 나온 뒤 울고, 세 번을 울었다.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일제강점기를 겪었기에 일제 만행을 직접 봤고 복수를 다짐했다. 요즘 세대는 이런 상황을 잘 모르고, 막연히 증오심을 갖더라. 일본이 우리나라에 저지른 천인공노(天人共怒)할 범죄를 세상에 알리고, 후손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기록해야 한다. 최근 위안부 소녀상을 둘러싼 한·일 갈등을 보면서 우리가 더 경각심을 갖고 한국의 얼과 정신, 무게를 지키고 살았으면 한다.

작가 역시 잊어서는 안될 역사를 기록해야 한다. 요산 김정한 선생께 배우길, 작가는 역사의 파수꾼이자 현실의 감시자이다. 어쩌면 '사할린'이 불편한 소설일 수 있다. 그러나 젊은 세대가 읽어주길 바란다. 나는 지금도 재일동포에 관한 장편을 쓰고 있다.

김현주 기자 kimhju@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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