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이 피기도 전에/꽃봉오리는 떨어졌다//수상한 계절,/깊은 안개와/방향을 가늠키 힘든 바람이/때 이른 음모처럼 습격한다//(…)무수한 생채기를 내며/거대한 쇳덩어리 같은 무게로/순장되었다//새파래서 너무 슬픈/꽃봉오리들이 눈물처럼 흩어져있다//세월이 지독하게 잔인하다('세월이 잔인하다' 중)

김요아킴(본명 김재홍·사진) 시인의 새 시집 '그녀의 시모노세끼항'(황금알)에는 세월호 참사 추모 시 여러 편이 실렸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뒤 슬픔과 분노를 고스란히 담아 추모 현장에서 낭독한 시들이다.

그가 2013년 '행복한 목욕탕' 이후 4년 만에 낸 시집 '그녀의 시모노세끼항'은 세월호 추모 시처럼 사회 부조리를 꼬집으며 문제를 직시하는 시가 다수 실렸다. 개인이 느낀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세월호 참사처럼 사회에서 벌어진 비상식적인 일에 대한 분노가 적나라하다. 그렇지만 분노를 쏟아내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에게 돌아온다. 이민호 문학평론가는 이에 대해 "자기로부터 출발해 역사속으로 들어가 다시 자기에게 돌아오는 홈커밍 스토리, 자기 현실에서 나와 광막한 역사의 현장에서 위대한 모험을 하는 오디세우스"라고 평가했다.

김 시인은 "사회 문제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시를 써왔다. 시가 지난한 삶의 경계에서 고통받는 사람에게 희망을 주고, 그들에게 위안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시가 자기세계에만 빠지다 보면 언어에 집착하게 되고, 일반 독자는 그것을 어렵게 느낀다.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하고, 그것이 공감을 얻으며 상처를 치유하는 순기능을 하는 것, 그것이 시를 쓰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그의 말대로 이번 시집을 들여다보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이야기가 많다. 개인정보 유출로 문자 폭탄을 맞은 현대인의 답답함('문자 birthday')부터 택시에서 바라본 사회의 쓸쓸한 모습('택시 안에서 서사를 읽다'), 세월호 참사의 부당함에 단식으로 저항한 김영오 씨('그 사람, 김영오'), 원폭 피해자 고 김형률 씨의 억울한 외침('불꽃') 등 시에 등장하는 배경도, 인물도 다양하지만 사회의 한 장면을 포착하고 그에 관한 느낌을 전하며 공감을 끌어낸다.

김 시인은 "시는 삶이나 다를 바 없다.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 좋은 시를 쓰기 위해 끊임없이 사회를 들여다보고, 내 주변을 바라본다. 진정 시가 우리 생의 자그마한 위로와 희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고 말했다.

김 시인은 2003년 계간지 '시의나라'와 2010년 계간지 '문학청춘' 제1회 신인상을 받으며 시인의 길에 들어섰다. 시집 '가야산 호랑이' '어느 시낭송' '왼손잡이 투수' 등과 산문집 '야구, 21개의 생을 말하다'를 펴냈다.

김현주 기자 kimhju@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