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서고금 미식가·술꾼에 사랑
- 횟감 참복, 탕용 으뜸인 까치복
- 겨울부터 봄까진 밀복이 제철

- 부산 자매도시 日 시모노세키
- 조선 침략 위해 집결한 사무라이
- 맛 본 후 사망 속출해 금식령도

- 뜨끈하고도 시원한 복국 매력
- 부산사람의 기질과 닮아 있어

"어~ 시원하다.", "아따~ 조~오타!" 탄성이 연발이다. 식탁 마다 펄펄 끓는 뚝배기 한 그릇씩 끌어안고 연신 감탄사를 자아낸다. 이마에 흐르는 땀 닦아내며, 후루룩 후루룩 큰 소리 내어 국물 한 뚝배기씩 들이켜는데, 가히 '삼매경(三昧境)' 그 자체다. '국물 한 술에 탄성 한 번' 지르며 먹는 음식, 복국집 풍경이다.

맑은 국물에 깔끔하고 시원한 맛을 내는 복지리. 사진가 문진우 제공

복어는 오래전부터 미식가 사이에서 '일미(一味)'로 정평이 나 있는 음식이다. '첫째로 꼽는 맛'이란 뜻이다. 재료 손질부터 맛 내기까지, 라이선스가 있는 복전문가가 솜씨를 부려야 제대로 발현되는 음식이다. 복어는 '캐비어(철갑상어 알)', '트뤼플(송로버섯)', '푸아그라(거위의 간)'와 함께 '세계 4대 진미'로 손꼽힌다.

'최고의 음식'에는 치명적인 조건이 있다 했던가. '천상의 맛' '죽음과도 견줄만한 맛' 뒤에는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큰 위험이 따른다. 바로 복어가 품은 맹독을 이른다. 해서 예부터 '복어 한 마리에 물이 서 말'이라 할 정도로, 조리 과정에 세심한 정성이 들어가야 하는 음식이다. '독성'을 잘 제거해야, '최고의 약성'을 가진 음식으로 재탄생하는 것이 바로 복어다.

칼칼한 듯 개운한 맛의 복매운탕. 사진가 문진우 제공

이독치독(以毒治毒)이라 했던가? 복국은 숙취 해소와 신진대사에 탁월하여 해장국으로도 최고 반열이다. 숙취가 심할수록 복국이 풀어주는 '속풀이'의 깊이는 웅숭깊다. 속을 뜨겁게 파고들면서 시원하게 어루만져 주는 것이, 뼛속까지 후련한 맛을 제공한다. 특히 부산은 복국과는 뗄 수가 없는 역사적, 지리적 여건을 지니고 있다. 복어 최대 생산 및 유통량의 도시, 복국 최다 소비도시인 점 이외에도, 복어를 적극적으로 식재료로 활용하는 일본과 복어 식문화를 서로 교류하고 있다는 점 또한 그러하다.


오래전부터 맛객 사로잡은 일미

졸복

부산의 자매도시 시모노세키는 일본 최대 복어 생산지이다. 이곳에서 일본은 임진왜란을 도모했고, 관부연락선을 통해 조선을 식민지화했다. 임진왜란 때는 조선으로 출병하기 위해 시모노세키에 모인 일본 병사들이 복어를 먹고 죽는 일이 속출하자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복어 식용을 금지했다.

이후 조선 지배권을 강화하려고 벌인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전, 시모노세키에서 청일강화조약을 체결할 때, 당시 회담장이던 춘범루의 주인은 태풍으로 신선한 생선을 구할 수 없자, 일본 대표 이토 히로부미에게 금지 음식인 복어요리를 접대했다. 이 복어요리에 감탄한 이토 히로부미가 춘범루에서는 특별히 복어요리를 팔 수 있도록 허가했다.

이후 일본인들은 복어를 아무런 제재 없이 즐겨 먹었고, 조선에 와서도 복어 사랑을 멈출 수 없었다. 복어가 맛있는 계절이면 버려진 복어알과 내장을 먹은 조선인들이 심심찮게 목숨을 잃었다. 부산을 비롯한 남해 항구도시에서도 일본인의 식욕을 자극하는 복어가 대량 어획되고 소비됐는데,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에서도 식재료로서 복어가 널리 쓰인다.

복어는 동서고금 문헌 속에서도 재미난 이야기로 심심찮게 전래된다.

'대밭 밖에 복사꽃 두세 가지 / 따스한 봄 강물을 오리가 먼저 아네 / 쑥은 땅에 가득하고 갈대 움 돋으니 / 이제야말로 하돈(河豚)이 올라올 때'. 중국 송나라 시인 소동파가 읊조린 복어 관련 시 한 구절로, 복어를 맛보기 위해 봄을 기다리는 미식가의 설렘이 잘 표현됐다. 하돈(河豚)은 '강의 돼지'란 뜻으로 '복어'를 지칭한다. 몸집이 통통하면서도 성질이 나면 몸을 부풀리며 돼지처럼 운다고 지어진 이름. 특히 소동파는 봄에 황하를 거슬러 오르는 황복을 '죽음과도 맞바꿀 진미(搏死食河豚)'로 장황하게 소개하고 있다.

또 중국에서는 '천계옥찬(天界玉饌)'이라 하여 '천상의 사람들이 먹는 아름다운 음식'이라 평했고, 일본에서는 '유서를 써놓고서라도 먹어봐야 할 음식'이라며 복어의 치명적인 맛을 칭송했다. 복어 수컷의 유백색 정소(精巢·곤이)를 중국에서는 '서시유(西施乳)'라 하여, 춘추전국시대 미인이었던 '서시(西施)의 뽀얀 젖'에 비유할 정도로 궁극의 맛으로 꼽았다.


밀복 까치복 졸복…종류도 맛도 다양

까치복

이처럼 복어는 '천국과 지옥', 두 가지 맛을 함께 지닌 음식이다. 그러하기에 예부터 '금기'에 대한 인간의 '극단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음식'으로 알려졌다. 그 정도로 복어요리는 치명적이면서도 도저히 끊기 힘든 중독의 맛을 낸다. '독성이 강한 복어일수록 맛이 좋다'는 속설도 떠돈다.

부산에서 요리 재료로 사용되는 복어 종류는 대략 5, 6여 종. 최고급 어종으로 참복 회의 주인공 '참복'부터, 탕으로는 최강의 시원함을 자랑하는 '까치복', 겨울 진객 '밀복', 고소한 살점을 발라먹는 재미가 쏠쏠한 '졸복', 어디서나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은복' 등 그 맛이 달라 선호하는 입맛에 맞춰 먹을 수가 있다.

그중에서도 부산 연안에서 대량으로 어획되는 어종은 까치복과 밀복. 까치복은 5~7월 낙동강 연안으로 올라와 산란을 하는데, 이때 주낙으로 잡는다. 까치복은 등 쪽으로 선명한 흑청색 줄무늬가 얼룩말처럼 나 있다. 지느러미는 진한 노란색을 띤다. 까치복은 진하면서도 시원한 국물이 대단히 흡족한 어종이다. 떠먹을수록 시원한 맛이 깊이를 더하고, 그 깊은 맛은 끝이 없을 정도로 사람 속을 후련하게 지지며 종국에는 부드럽게 다독여준다.

밀복은 겨울이 제철로, 지금 이맘때가 한창 맛이 익을 철이다. 11월 말에서 4월까지가 밀복 철이다. 주로 겨울 동해안에서 잡는데, 기장 연안에서도 곧잘 잡힌다. 해방 전후로는 기장 일대가 밀복어업의 전진기지였다 하니, 그 어획량을 짐작하고 남음이 있다. 요즘은 기장 일광 학리에 밀복잡이 어선 몇 척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고. 이 밀복에는 생복에서만 채취할 수 있는 곤(수놈 정소)이 들어있어 국이 부드럽고 고소해 귀하게 먹는다. 육질도 밀집도가 높으면서도 부드러워 남녀노소가 좋아하는 식감을 지녀 인기가 높다.

복국식당에서 '생밀복국'을 주문한다. 곧이어 파르르 끓는 '밀복국' 뚝배기가 앞에 놓인다. 한 숟가락 떠먹는다. 뜨거운 국물이 찌르르 목젖을 타고 넘어간다. 곧이어 속이 환하게 풀린다. 한 숟갈 더 떠먹어 본다. 시원한 맛과 깊은 맛이 '극치'를 이룬다. 남은 국물을 뚝배기 채 들고서 후루룩 후루룩 남김없이 마신다. 시원한 우물이 몸속 깊숙이 자리 잡는 느낌이다. 무릇 복국은 이렇게 시원하게 뚝배기를 다 비워야 끝이 난다. 그래야 마음마저 든든한 식사가 완성된다.

부산의 향토음식 복국. 부산 사람처럼 뜨거우면서도 시원한 매력이 있는 부산 음식. 몸도 춥고 마음도 으슬으슬할 때, 복국 한 그릇은 부산 사람의 마음을 뜨끈하게 지져준다. 아직 바람이 차다. 복국집에서 복국 한 그릇들 하시라. 봄이 한 발 한 발 다가오고 있을 것이다.

문화공간 수이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