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북학파 학자 유득공(1748~1807)이 쓴 '발해고'의 초판(1권 본)이 아니라 '개정증보판(4권 본)'을 번역한 책이 발해고, 우리가 버린 제국의 역사이다. 이 책에 주목한 이유는 일단 두 가지다. 첫째, 고전이나 널리 알려진 책은 다른 길로 돌아가지 말고, 직접 읽어보는 것이 낫다. 논어에 관해 학자나 예술가가 쓴 해설서나 에세이를 읽는 것보다 직접 논어를 읽는 게 여러모로 좋다. 그런 다음 해설서나 에세이로 넘어가면 된다.

	대조영이 698년 고구려 유민과 말갈 유민을 데리고 발해를 건국했다는 중국 지린성 성산자산성(동모산). 국제신문 DB

둘째, 이 책은 다르다. 옮긴이 김종성 씨가 쓴 '옮긴이의 말'을 간추리면 이렇다. 유득공이 37세에 쓴 1권짜리 '발해고'는 이미 번역돼 있고 적지 않은 독자가 읽었다. 유득공은 정확히 몇 년 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1권짜리를 꽤 오랜 세월 보완하고 양을 늘려 4권짜리 '발해고'로 펴냈다. 이 4권 본은 한글로 번역된 적이 없다. 이 책이 최초 번역인 것이다.

그렇다면 쟁점은 자연스럽게 '1권짜리와 4권짜리가 과연 다른가, 어떻게 다른가'로 이어진다. 옮긴이는 "다르다"고 답한다. '발해고'가 유명해진 것은 37세 때 세상에 내놓은 1권짜리의 서문에 유득공이 '신라와 발해를 남북국 관계로 규정'한 것에 크게 힘입었다. 이는 "백제·고구려 멸망 뒤에 신라만 살아남아 통일국가가 되었다는 기존의 역사인식에 대한 신선한 도전이었다.(…)고구려 멸망 후에도 우리 민족이 약 250년간 만주를 더 지배했다고 밝혀주는 선언이었다."('옮긴이의 말' 중) 한민족의 역사 인식 지평을 넓혀버렸다는 뜻이다.

4권짜리 개정증보판에는 바로 그 '남북국 관계'라는 표현을 담은 서문이 없다는 점이 차이다. 여기서 주의할 것! 그렇다고 4권 본이 발해가 우리 역사임을 초판보다 헐겁게 생각했을까? 이 책을 읽어보면, 유득공이 발해를 한민족 역사의 판도와 관계 안에서 글을 전개한다는 점을 곳곳에서 진하게 느낄 수 있다. 이것이 이 책을 읽는 재미다. 다시 말해, 유득공은 4권 본 개정증보판을 내놓음으로써 자신이 발해 연구를 더욱 깊이 엄정하게 진행해왔음을 내보였다.

조봉권 기자 bgjo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