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수·조명희 등 시·소설 정리
- 배경이 된 장소 옛 모습도 수록

'내가 가까이 가자 필사적으로 햇빛을 붙들고 있던 강이 묵묵히 곪은 어깨를 내보였다/(…)내가 가까이 가자 필사적으로 물을 붙들고 있던 작은 배 몇 척이 헌데투성이 얼굴을 씻고 있다가 힐끔 나를 바라보았다//끙끙-끙끙-//신음 소리 새나는/보랏빛 입술.'(강은교 '낙동강' 중)

낙동강 경부선 철도 수해 현장 모습. 문화콘텐츠닷컴, 부산발전연구원 제공

낙동강은 부산 시민의 삶의 젓줄이자, 문인들의 문학 젓줄이었다. 이광수 김정한 강은교 등 많은 문인이 낙동강을 배경으로 시와 소설을 썼다. 낙동강을 배경으로 한 문학은 어떤 것이 있고, 낙동강의 어떤 모습을 간직했을까.

부산발전연구원 부산학연구센터가 낙동강을 배경으로 한 문학의 자취를 따라간 '서부산 낙동강 문학지도(사진·구모룡 김만석 김대성 최은순 집필)'를 발간했다. 길이 22㎞인 낙동강의 장소와 세월을 문학에 담은 작품을 좇은 연구로, 문학을 통해 낙동강의 옛 모습을 복원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문화 자료로 볼 수 있다.

근대 초기 작품에서 낙동강은 민중의 삶의 터전이자 일제 강점기의 아픔을 딛고 일어선 고향이었다. 낙동강은 해마다 반복되는 수해로 그 유역의 주민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일제와 지주의 수탈을 견디지 못해 고향을 떠나는 발길도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현실의 고통을 감내하며 삶터를 지켰다. 이광수는 '무정'의 마지막 무대로 낙동강 삼랑진을 설정하고, 주인공들이 경부철도 삼랑진역 수해 현장에서 주민을 위한 음악회를 열고 재난을 극복하고자 용기를 내는 장면을 통해 삶을 향한 계몽 의지를 북돋웠다.

조명희가 소설 '낙동강'에서 혁명적인 사회운동가와 여성운동가의 서사를 탁월하게 풀어낼 수 있었던 것은 경상남도의 주요 길목이자 삶의 터전이었으며 동시에 수탈의 현장이었던 낙동강의 역동적인 모습 덕분이다.

을숙도 뱃길 사진.

또한 이 책은 낙동강 뱃길과 민중의 애환을 드러낸 시와 소설을 정리해 그동안 흩어졌던 '낙동강 문학'의 지도를 완성하고자 했다. 일제의 수탈과 유민 현상을 담아낸 김용호의 시집, 소금뱃길이었던 낙동강을 그린 강인수의 소설 '낙동강', 낙동강 범람 기사를 쓰며 이를 시에 담아낸 박팔양의 시와 기사 등이 그것이다. '낙동강 파수꾼' 요산 김정한 선생의 여러 소설에 남겨진 낙동강의 모습과 해방 이후 각종 개발에 의해 남겨진 것보다 사라진 것이 더 많다는 측면에서 생태문학의 배경이 된 낙동강에 관한 시와 소설까지 다양하게 담았다.

특히 조명희 이문열 강인수 최해군 등 낙동강을 소설 배경으로 삼은 이들의 소설을 재배치하고, 허만하 김형술 강은교 김상화 서태수 등의 시에서 가덕도 다대포 하단 에덴공원 을숙도와 낙동강 포구 등 지금은 사라졌거나 전혀 다른 모습이 된 낙동강의 장소를 되살려낸다.

이번 연구를 총괄한 한국해양대 구모룡(동아시아학과) 교수는 "각종 개발 계획과 급격한 변화가 이뤄지는 가운데 낙동강의 기억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며, 문학지도를 되돌아보는 과정을 통해 부산의 원형질적 가치를 찾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현주 기자 kimhju@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