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연 교직 접고 3년간 전국 순례
- 산문집 '걷는 자의 대지' 펴내

- 고전·시 등 온갖 문학자료 섭렵
- 달팽이 매미 소나무 등 재해석
- "길서 만난 사람 이야기도 쓸 것"

평생 글에 파묻혀 사느라 걷는 시간이 아까웠다.

	하창수 문학평론가가 길 위에서 포착한 달팽이 사진. 하 평론가는 지난 3년간 길을 걸으며 생태주의자가 됐다고 말했다. 전망 제공

그런 고집스러움 덕분에 길에 관한 소설만 모아 비평한 '길의 현존' '길의 궤적', 집에 관한 소설을 모아 재해석한 '집의 지형' '집의 지층' 등 보기 드문 비평집이 탄생했다. 그랬던 하창수(62·사진) 문학평론가가 정년퇴직을 4년이나 앞두고 '걷겠다'며 교사를 관두자 주변에서 술렁였다.

걷기에 빠져 길에서 보낸 시간이 3년. 그는 길에서 만난 생명에 관한 산문집 '걷는 자의 대지-길에서 만난 생명들(전망)'을 펴냈다.

걷는 이유는 비슷하고, 걷기에 관한 책도 이미 많다. 주로 걷기 좋은 길을 소개하고, 길에서 만난 사물과 생명에 관한 느낌을 쓴다. 이 책은 한 발짝 더 나아간다. 그는 길 위의 생명을 '재해석'한다. 재해석의 근거는 중국 고전과 고대 시, 일본 전통 시가 하이쿠, 현대시다. 평소 눈여겨보지 못했던 숱한 생명을 발견하고, 추억을 떠올린 뒤 시는 그들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일일이 찾아보고 해석했다. 무엇하나 허투루 넘기지 못하는 그답다.

-지난 3년간 전국 각지를 걸었다. 걷기 시작한 이유는?

▶글에 갇혀 있다 보니 건강이 나빠졌다. 그리고 내가 나고 자란 땅에 대한 예의랄까. 우리 땅 구석구석을 훑어보지 않으면 다음 생에 다른 땅에 태어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을 것 같았다. 퇴직 2년 전부터 부산의 해안길과 산길을 살살 걷기 시작했다. 학교를 그만두고 제대로 걸었다. 동해안길(부산 오륙도~강원도 거진 해파랑길), 낙동강길(부산 을숙도~강원도 태백 황지), 섬진강길(섬진댐~광양 하구언), 금강길(대청댐~군산 하구언), 영산강길(담양댐~목포 하구언) 등이다. 일주일에 한두 번 1박 2일, 2박 3일 하루 평균 8시간씩 걸었다. 발톱이 빠지고 무릎 통증으로 고통을 겪기도 했지만, 멈출 수 없었다.

-걷기에 관한 책이 많이 나와 있지만, 이 책은 또 다른 깊이가 느껴지는데.

▶걷기에 관한 책은 '길을 걸은 경험담'과 '길을 걸으며 깨달은 것을 개념화한 것'으로 나뉜다. 여기서 직업의식이 발동했다. 평생 평론을 하다 보니 남의 책에 아쉬움이 생겼다. 그래서 길에서 만난 생명에 관한 문학 자료를 모았다. '시경' 등 고전, 베르나르 베르베르 같은 해외 작가의 책, 류시화 박정애 등 한국 시인의 시까지 찾아 생명에 관한 표현을 비교하고 해석했다. 결국, 이 책은 생명에 관한 책이다.

-평생 '소설'만 평론했는데, 이번에는 '시'에 집중한 느낌이다.

▶소설만 붙잡고 해석해도 시간이 모자랐으니 그랬지, 생명을 표현하는 데서 시만한 게 있을까. 각각 표현 방법이 달라 재밌다. 예를 들어 '매미'편을 보면 장자는 매미가 1년이 얼마나 긴지 모른다며 성인을 비웃는 하찮은 벼슬아치로 비유한다. 사마천은 매미가 허물을 벗고 빠져나오는 모습을 혼탁한 세상에서 나온, 벼슬길에서 물러난 사람으로 묘사한다. 우리 시조는 오히려 사마천과 거꾸로 공부한 선비가 출사길에 오르는 것으로 표현한다.

-달팽이, 제비, 소, 소나무처럼 길에 흔히 있는 생명을 다뤄 심심한 느낌도 든다. 책에서 말하고자 한 것은 무엇인가?

▶길에 나가 보니 지금의 생명은 어렸을 때 알던 것이 아니었다. 생명이 살던 흙길은 아스팔트로 포장해 자동차길이 되었고, 그 위에서 수많은 생명이 로드킬 당한다. 밭을 갈며 30년간 사람 곁에 살던 소는 기계에 밀려나 식용을 목적으로 30개월밖에 살지 못한다. 우리 스스로 욕망의 시스템에 갇혀 생명은 물론 사람까지 욕망을 실현시키는 도구로밖에 보지 않는 게 안타까웠고 생명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길을 걷다 보니 생태주의자가 됐다.

-앞으로 계획은?

▶이번 책은 생명에 관한 글만 추렸다. 길에서 만난 폐교, 가로등과 같은 사물과 택시기사, 식당 주인 등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후속으로 준비할 것이다. 너무 훈계만 하는 책이 될까 걱정도 된다. 평론집 '방'과 '길' 시리즈도 한 권씩 더 내야 하고 할 일이 태산이다. 부산 문단에서 나를 '은둔의 평론가'라고 부른다는데 계속 그렇게 불릴지도 모르겠다.

김현주 기자 kimhju@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