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걷는 것은 명상, 자연스러움, 소요의 모색인데 동반자가 있으면 이런 덕목이 크게 훼손되고 의사소통의 의무를 지게 된다는 거지요. 침묵을 감각의 한 양식으로 표현한 작가는 침묵은 자아로 되돌아오는 길이므로 스스로 그 침묵을 추구하려는 노력, 그 침묵을 찾아내려는 노력 또한 요구된다고 말합니다. 작가는 걷기의 정신성도 거듭 강조하는데 그 효용적 측면의 한 예를 든다면 이렇습니다. 오래 전 유럽의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죄인에게 순례의 길을 떠날 것을 명령합니다. 종교적 율법이나 세속의 법을 어긴 죄를 성지순례로 갚도록 한 후 그들이 지은 죄를 씻기 위하여 먼 길을 걷고 나서 목적지에 도착하면 형량을 다했다는 증명서를 발급해주고 집으로 돌려보냅니다. 걷기에 담긴 신성성과 정화력에 대한 강한 믿음은 현재도 크게 다르지 않아 종교적 신념, 정치적 투쟁, 개인적 염원의 한 방법으로 많은 이들이 여전히 걷기를 선택합니다.책의 한 페이지에 초록색 색연필로 밑줄 그어놓은 문장을 다시 읽어봅니다. '자동차 운전자나 대중교통의 이용자들과는 달리 발을 놀려 걷는 사람은 세상 앞에 벌거벗은 존재로 돌아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고 있음을 느낀다. 그는 인간적인 높이에 서 있기에 가장 근원적인 인간성을 망각하지 않는다.' 가끔은 인위적 교통수단에서 벗어나 두 발로 선 인간적인 높이에서 모든 것들과 눈맞춤해보는 건 어떨까요. 여유가 있다면 좀 걸어도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