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운 선생의 젊은 날은 조선 말기 서세동점의 혼란한 세상에 대한 번민, 방랑과 방황으로 점철하였다. 그럼에도 십여 년 동안 구도의 길을 멈추지 않았다. 이런 사정을 속속들이 꿰고 있던 상제(천주, 한울님)는 마침내 수운에게 강림한다. 금으로도 살 수 없고 은으로도 살 수 없는 경지, 또한 지벌과 문벌로도 얻을 수 없는 높은 지경에 이른 수운을 인정하며 한울님은 "개벽 후 5만 년에 네가 또한 처음"이라고 하였다.

천도교를 창도한 수운 선생이 태어난 경북 경주시 현곡면 가정리에 그를 기리는 추모비가 서있다. 천도교 홈페이지 캡처

수운 선생은 "의심하지 말고 의심하지 말라"는 한울님의 소리에 비로소 진리를 확신한다. 의심하지 말라는 한울님의 당부에도 수운은 거의 일 년을 닦고 단련한 뒤에야 마침내 포덕에 나선다. 동학의 수행 과정은 수운의 득도 과정을 그대로 빼닮았다.

먼저 강령(降靈), 강화(降話)라는 단계다. 강령은 온몸이 춥고 떨리고 때로는 두렵고, 참회의 감정 또는 기쁨이 교차하기도 하는 신내림과 비슷한 것으로, 영부(신령한 부적 같은 글이나 그림)를 받기도 한다. 강화는 내 몸에 모신 한울님의 말씀을 아는 것으로 처음에는 공중에서 들리기도 하고 혹은 자신의 입으로 나오기도 하고 때로는 한울님과 대화를 주고받기도 한다.

강령과 강화는 마치 한여름에 몰아치는 태풍처럼 강렬하고 때로는 충격적인 체험이다. 그러나 비바람이 잦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세상은 고요해진다. 수행도 마찬가지다. 수행의 처음에는 강령과 강화를 받기 위해 안달도 하지만, 점차 강령과 강화도 잦아지며 무심해진다. 강령, 강화는 수행의 첫 단계로 내 몸에 계신 한울님의 존재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다음 단계는 재사심정(再思心定 거듭 생각하여 마음을 정한다)하는 단계로, 자천자각(自天自覺)·대도견성(大道見性)이라 해도 된다. 거듭 생각하는 과정 즉,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과정과 절차를 밟아 확고한 믿음에 이르는 것이다. 처음부터 생각할 필요 없이 그냥 다 좋고 괜찮은 것은 없다. '한울님 말씀'이라도 의심할 것은 의심하고, 따질 것은 따져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친 뒤의 믿음이 제대로 된 믿음이다. 수운 선생은 이런 절차를 믿을 신(信)자를 풀이하며 설명하였다.

"사람의 말 가운데는 옳고 그름이 있는 것을, 그중에서 옳은 말은 취하고 그른 말은 버리어 거듭 생각하여 마음을 정(定)하라. 한번 작정한 뒤에는 다른 말을 믿지 않는 것이 믿음이니라" (동경대전)

의심하고 또 의심하는 절차노정은 천리장풍에 일어나는 불길 같았던 수운의 삶이었고, 한번 작정한 뒤의 다른 말을 믿지 않는 것은 비바람 지난 뒤의 평온한 세상 그것이다. 득도 후 수운은 목숨을 바쳐서라도 도를 지켜야 한다는 태산 같은 믿음을 세운다. 이러한 수운의 교훈은 해월에게로 이어진다. 해월 선생은 마음을 정한다고 할 때의 정할 정(定) 자의 의미를 이렇게 풀었다.

"내가 젊었을 때에 스스로 생각하기를 옛날 성현은 뜻이 특별히 남다른 표준이 있으리라 하였더니, 한번 대선생님(수운 최제우)을 뵈옵고 마음공부를 한 뒤부터는, 비로소 별다른 사람이 아니요 다만 마음을 정하고 정하지 못하는 데 있는 것인 줄 알았노라." (해월신사법설)

천도교 '신인간' 편집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