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드터는 고백하고 만다. 그녀는 끝내 썸머가 자신을 모델로 한 사실을 몰랐다는 것이다. 자칭 위대한 복수라고 부른 그 복수는 우습게도 실패한 것이다. 어떻게 된 일일까. 한 가지를 가정해 볼 순 있다. 썸머의 모델이 된 그녀가 실제로 보고 느꼈던 것과 썸머라는 인물이 보고 느꼈을 것이라고 각본가 뉴스타드터가 상상했던 것은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그녀를 끝내 몰랐던 것이다. 

두 번째 일화, 나의 일화. '500일의 썸머' 재개봉을 계기로 얼마 전 어느 극장에서 해설을 맡았다. 재치 있고 귀여운 영화이니 진지한 해설 보다는 그냥 즐겁게 수다를 좀 떤다는 기분으로 임했다. 객석에서 질문을 받는 시간이 돌아왔을 때 지적인 생김새의 한 중년 여성 관객이 점잖게 손을 들고 해설자의 실수를 지적했다. "주인공인 톰이 썸머와 처음 사랑을 나눈 다음 날 행복에 가득차서 출근하는 뮤지컬 식의 장면이 있는데 그때 길가에 세워져 있는 차의 창문에 얼굴을 대보면 톰의 얼굴이 해리슨 포드의 얼굴로 반사되는 장면이 있다"고 해설자는 말했지만 실은 그 얼굴은 "해리슨 포드가 아니라 리차드 기어"라는 것이 관객이 지적한 요지였다. 

해설자인 나는 잠시 멈칫했다가 해리슨 포드가 맞다고 다시 말했지만 관객은 여전히 강경했다. 물론 해리슨 포드가 틀림없지만 그것과 무관하게 무언가 재미있다는 생각이 함께 들었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져 행복에 가득 찬 어떤 미남자의 이미지라고 했을 때 사실은 그 관객의 지적대로 해리슨 포드보다는 리차드 기어가 더 잘 어울리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다. 그러니까 그 관객은 영화에서 실제로 본 것 보다는 그 상황에 가장 이상적이라고 여겨지는 혹은 그 상황에서 자신이 사랑할 수 있을 만한 혹은 대면하고 싶은 어떤 이미지를 자의적으로 상상하며 본 것일 수도 있다. 그러한 관객과 나와의 기억의 상대성이 흥미로웠다. '500일의 썸머'는 사랑의 상대성에 관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혹은 톰이 기억하고 톰이 사랑하는 이상형 썸머, 그녀에 관한 상대적이고 파편적인 이미지에 관한 영화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