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헐크'를 영화나 마블 원작이 아니라 한국어로 더빙된 텔레비전 드라마로 유년에 처음 보았다. 얌전하게 생긴 남자가 화가 나면 녹색 괴물이 되는 그 드라마를 매주 기다렸고 종종 흉내도 냈던 것 같다. 애들이라면 한 번쯤 해보았을 법한 질문들 그리고 훗날 시간이 지나자 어른들의 농담거리가 되기도 했던 엉뚱한 질문들 역시 그때 종종 떠올랐던 것 같다. 저 사람은 매번 저렇게 상의가 터져 나가는데 왜 하의는 그대로인가. 저 사람은 저 찢어지는 옷의 비용을 전부 어떻게 감당하는 것일까. 그리고 옷은 언제 어디서 저렇게 다 갈아입는 것일까.

수많은 영화 추적 장면의 상투구가 되었고 그래서 어느 코미디 영화에선가는 자기 반영적인 농담으로까지 진전됐던 장면을 떠올려 봐도 될 것 같다. 주인공이 악당을 뒤쫓고 있다. 주인공의 차가 전복되고 악당은 저 멀리 도주하고 있다. 긴박한 순간이다. 주인공은 지나가던 차량을 강제로 멈춰 세운 뒤 운전자를 끌어내고 그 차를 타고 다시 악당을 뒤쫓는다. 장르적 긴장감이 훨씬 더 긴박해지고 영화는 다시 도약한다. 하지만 이때 영화가 자칫 허술하기라도 하면 우리는 엉뚱한 샛길로 빠지게 된다. 아니, 저렇게 하면 저 운전자는 뭘 타고 집에 가나, 차 값은 누가 물어주나.

현실 세계의 현실성을 잣대로 장르물을 따지는 일종의 리얼리티 체크의 발동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는 유치하거나 일차원적인 혹은 그렇기 때문에 현실 세계에서는 중요할 수도 있는 그 질문의 양상을 장르 영화의 내용적 차원으로 끌어 들여 만들어졌다.

초인들이 선의의 의도로 사람들을 구하던 중에 벌어지는 부수적인 파괴 행위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니까 무너진 건물들, 어쩌면 그 안에 있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 그들의 손상과 상해는 다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질문이 이 장르영화에는 전제되어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는 초인들이 정부의 통제 아래 규칙을 지켜 가면서 마치 공직자처럼 활동해야 한다는 초인등록법안제가 제기되고 그들의 무리는 반대파와 찬성파로 갈린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는 때때로 이 문제를 심각한 표정으로 다루거나 진지하게 말하고 있는데 사실 그건 좀 알량한 짓이다.

현실성 체크의 양상을 내용적 차원으로 도입하여 이루어내길 바라는 결과는 다시 다음과 같은, 철저하게 아이다운, 또 하나의 질문을 완성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람보와 코만도가 붙으면 누가 이길 것인가. "헐크와 바야바가 붙으면 누가 이길 것인가. 마징가와 로보트 태권브이, 짱가와 철인 28호가 붙으면 누가 이길 것인가"하는 가상의 승부와 그 결과들. 그러니 아이들 식의 리얼리티 체크를 어른 식으로 재전략화 한 뒤에 다시 아이들 식의 상상력을 부추기는, 애들 상상력에서 빌려온 어른들의 영화 전략화의 결과가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라고 해도 될 것 같다.

마블의 열성적인 팬들은 공감하지 못하겠지만, 사실 마블은 영화를 잘 못 만드는 것 같다. 마블이 제작하는 영화들은 언제나 마블 로고가 나오는 첫 장면이 가장 신나고 나머지는 늘 기대 이하다. 하지만 다들 흥이 나서 노는 자리에 일부러 찬물을 끼얹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이 영화는 그럴 정도로 중요하지 않다. 그냥 누군가가 유년의 엉뚱한 질문을 잠깐 떠올려보면 될 일이었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