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맛 없다고 더럽다고 냄새난다고
- 근거없는 편견으로 천대한 생선
- 탄력있는 육질에 향긋함 더한
- 가덕도 숭어가 들으면 섭한 말씀

- 4월말~5월초까지 많이 잡아올려
- 익히 알려진 회·회무침 말고도
- 구이·미역국·맑은매운탕·찜…
- 부산 대표 음식으로도 손색없어

생선회에 구이, 탕 그리고 회무침에 생선미역국, 게다가 제대로 별미인 생선껍질 숙회까지… 한상 가득한 데다 푸짐하다. 고소한 생선구이 냄새가 식욕을 자극하고, 쫄깃쫄깃한 생선회 육질이 깨끗하고 선명하다.

가덕도 가덕횟집에서 맛본 숭어요리 한 상 차림. 숭어회부터 회무침, 숭어미역국, 숭어구이로 푸짐하게 차렸다. 사진가 문진우 제공

부산 가덕도에서 전국 생산량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생선, 숭어. 그 맛이 빼어나고 수려해 수어(秀魚)라고 불리기도 했고, 임금께 진상하기도 했던 꽤 괜찮은 물고기, 숭어. 이러한 숭어가 정작 생산지인 부산에서 천대받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워낙 대량으로 어획되는 데다 숭어의 습성과 그 조리법의 부재로 인한 오해가 컸기에 그렇다. 그럼 숭어에 대한 치명적인 오해와 진실은 무엇일까? 그 첫째는 '맛이 없는 생선'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횟감으로만 그나마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음식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개체 수가 많고 또한 제철에 먹지 않으면 그럴 수도 있겠다. 낚시꾼에게 꿈의 생선인 '감성돔'도, 산란철이 지나면 '똥감시'라고 하대 받을 정도로 맛이 떨어진다. 모든 생선이 그러할진대, 유독 숭어만 오해를 특별히 사고 있는 것이다.

■숭어를 오해하지 마세요

부산 강서구 가덕도 인근 바다에서 '숭어들이'를 하는 모습. 사진가 문진우 제공

숭어는 몸에 지방이 축적되어 눈에 백태가 끼는 3~4월이면 그 맛이 최고점을 찍는다. 이맘때쯤의 숭어는 차지고 쫄깃한 데다 고소한 지방분까지 함유하고 있어 가히 '수어'라 할 만큼 '맛있는 횟감'이 된다.

숭어에 대한 두 번째 오해는 연안의 개흙을 먹기도 하고 수면 위로 회유하는 어종이라 물에 떠 있는 기름을 먹을 수 있어 '더러운 생선'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장만을 잘하면 아무런 관계가 없다. 또한, 연안의 개흙을 먹기에 그 살이 오히려 달고 부드럽다.

나머지 오해는 흙내나 기름 냄새 등 잡냄새가 심해, 요리 재료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조리하는 사람의 장만법이 잘못돼서 일어나는 일이 대부분이다. 숭어는 민물의 개흙을 먹기도 하고 본의 아니게 기름에 노출될 수도 있다. 때문에 내장 제거를 잘 해야 된다. 내장을 터트리지 않으면 잡냄새도 없다.

숭어는 가덕도 인근에서 4월 말이나 5월 초까지 잡힌다. 그 이후에는 눈을 가리고 있던 백태가 사라져 영민해지기에 잡기가 쉽지 않다. 백태가 낀 계절이 숭어를 잡기도 쉽고 맛있기도 한 것이다. 때문에 숭어는 조기, 웅어와 더불어 봄을 대표하는 최고의 생선으로 꼽히기도 한다.

이 중 가덕숭어는 다른 지역 숭어보다 육질이 부드럽고 탄력이 있으면서 향긋한 맛이 더해져 가히 일품이다. 이는 가덕도 일대가 낙동강과 바다가 만나 영양분이 풍부한 천혜의 어장인 데다 가덕도만의 독특한 어로방식에서 기인한다.

가덕숭어는 국내 유일의 전통어로방식인 '숭어들이(육소장망,六張網) 어로법'으로 잡는다. 160여년 역사를 가진 이 어로법은 타원형으로 배치된 소형 어선 6척이 숭어가 다니는 길목에 그물을 넓게 쳐놓고 기다리다가, 숭어떼가 지나갈 때 일제히 그물을 들어 올려 건져내는 방식이다.

가덕숭어는 다른 어로방식으로 잡는 것보다 숭어의 상처가 적고 스트레스가 덜해 오래도록 싱싱함을 유지한다. 해마다 4월쯤이면 가덕도 대항항을 중심으로 숭어조업이 펼쳐지는데, 많이 잡을 땐 한 번에 3000여 마리 이상 들어올리기도 한단다. 지금은 그물을 기계로 들어 올려, 전통어로법의 보존을 기대하는 이들에게는 아쉬움이 크다.

■가덕도 대항마을서 숭어를 맛보다

숭어는 성장하면서 각기 다른 이름을 갖는데, 이를 두고 '출세어(出世魚)'라 한다. 새로운 세상으로 나설 때마다 이름이 달라지는 것이다. 치어일 때는 '모치' '모쟁이'로, 크기가 작은 숭어는 '댕가리' '동가리', 중치급은 '남방'이라 부른다. 7년 이상 되어 1㎏, 70㎝ 정도 되면 비로소 숭어라 한다. 모치는 뼈회로 먹고, 남방은 회가 부드럽고, 숭어는 씹는 맛이 쫄깃쫄깃하고 고소하다.

가덕숭어를 만나기 위해 가덕도 대항마을을 찾았다. 대항은 숭어들이의 전진기지 격인 항구마을이다. 가덕도 전통의 숭어요리를 제대로 차려내는 식당을 수소문해보았다. 가덕횟집 김영옥 여사가 흔쾌히 가덕도 전통 숭어요리를 한상 차려주기로 했다.

"가덕도 사람들은 봄철에 숭어로 끼니를 때웠어예. 그때는 숭어가 노다지로 있었으니까예. 그래서 숭어찜, 숭어조림, 숭어미역국, 숭어수제비, 숭어구이, 숭어전… 해먹을 수 있는 음식은 다 해먹었지예. 숭어를 푹 고면 산모들 조리하는 데도 최고였고예."

그 중 바로 요리할 수 있는 음식으로 '생선회'와 '회무침' '숭어구이'에다 '맑은 숭어매운탕' 그리고 '숭어 미역국'을 조리해 주겠단다. 조금 있으려니 주방에서 고소한 생선구이 냄새가 진동한다. 숭어를 굽는 모양인데, 그 냄새에 벌써 한입 가득 군침이 돈다.

소금 간을 해 노릇하게 구워진 숭어를 한 젓가락 입에 넣는다. 하얀 숭어 속살 속에서 짭조름한 바닷냄새가 물씬 풍긴다. 가덕 사람들이 입맛 없을 때 먹었다는 숭어구이. 밥에 얹어 먹는다. 고소한 생선살이 입안에서 돌고 또 돈다.

곧이어 숭어회와 회무침이 나온다. 두툼하게 썬 숭어회를 한 점 먹으니, 숭어 한 마리가 입안에서 우당탕탕 튀어 오르듯 육질이 쫄깃하다. 묵은지에 숭어회를 올려 먹는다. 담백한 숭어회와 묵은지의 깊은 맛이 어우러져 입안 가득 알콩달콩하다.

■'숭어코스요리' 즐기게 되기를

회무침을 깻잎에 싸서 한입 크게 먹어본다. 깻잎 향이 그윽하게 다가오다가 탱글탱글한 숭어회와 만나 들큰하고 구수한 맛이 길게 이어진다. 씹을수록 온갖 채소의 풋풋한 식감이 스쳐 지나간다. 봄채소와 봄 숭어의 환상조합이다.

뒤이어 숭어미역국을 한 술 뜬다. 숭어 한 토막에 직접 채취한 자연산 돌미역을 집 간장으로 간을 했다. 생선국이라 하기에는 비린 맛도 없고 삼삼하고 담담하다. 돌미역의 향 뒤로 숭어의 담백한 육수가 파도가 일듯 찰랑댄다.

맑은 숭어매운탕은 딴판이다. 생선국의 질펀한 맛이 진하게 풍겨온다. 탕에 들어가는 모든 양념이 숭어와 어우러지며 진하면서도 개운하다. 땡초의 알싸함에 웅숭깊은 시원함 또한 끝 갈 데가 없다.

'숭어음식의 재발견'에 기꺼워하다 보니 어느새 음식은 바닥을 드러낸다. 김 여사에게 '맛있게 잘 먹었다'고 인사하니, 꾸덕꾸덕 말린 숭어를 묵은지에 얹어 쪄먹는 '숭어찜'과 숭어와 무를 숭덩숭덩 썰어 넣고 조려먹는 '숭어조림'이 '숭어요리 중의 일미'라며 다음에 기회가 오면 맛있게 대접하겠단다. 대량으로 어획되고 싸다고 천대받는 생선, 가덕숭어. 그러나 가덕숭어의 여러 요리를 접하고 나면, 근거 없는 편견이 참으로 근거 없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이 맛깔진 수어(秀魚)를, 부산을 대표하는 향토음식으로 개발하면 어떨까? 다양하게 차려내는 봄철 건강식단의 코스 요리로 보급한다면, 부산의 새로운 전통음식으로도 전혀 손색이 없을 것이다.


◇성장기마다 각기 다른 이름의 숭어
치어일땐- 모치 모쟁이

크기 작을땐- 댕가리 동가리

중치급은- 남방

7년이상 1㎏·70㎝ 되면- 숭어

새로운 세상으로 나설 때마다 이름이 달라지는- 출세어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