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추억 속 아련한 향기를 가진 음식 하나쯤 있을 것이다. 살아가다 힘들 때 그 음식 한 가지로도 그 시절 삶이 어땠는지 떠오르고, 소중했던 누군가를 떠올리기도 한다.

추억이 담긴 음식, 냉면. 주석 스님 제공

나는 어린 시절 친했던 짝꿍이 좋아하던 오렌지색 탄산음료를 볼 때마다 그 친구를 생각한다. 김치 한 조각에 막걸리 잔을 드는 어르신을 뵐 때마다 선친이 생각난다. 음식 앞에서 그것을 좋아했던 대상이 떠오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요즘처럼 물질과 먹는 것이 풍부한 시절에는 알 수 없는 과거의 음식 속에서 고향도 추억할 수 있다.

먹는 일, 어쩌면 참 쉽다면 쉬운 것이겠지만, 먹는 일은 우리 삶에서 결코 뗄 수 없는 첫 번째 일이다. 필자가 있던 암자는 농촌이라 사계절 동안 농사짓는 분들의 삶을 볼 수 있었다. 그때는 나의 부모님도 저렇게 살아오신 것이라 싶어 한 번 더 눈길이 머물게 됐다.

농사를 짓는 부모님의 삶은 흙이 꽁꽁 얼고 물이 얼어붙는 겨울에도 쉼은 있지 않았다. 한겨울에도 다가올 봄을 미리 준비한다. 이른 봄 바빠지는 시기에는 그 일을 바라보는 내 눈길도 바빠진다.

한창 모내기를 시작하는 철에 들어있는 불교의 최대 명절 사월초파일의 날씨가 좋으면, 모내기를 해야 하는 신도들은 부처님이 정말 살아오셔도 부처님과 눈을 맞출 수 없을 만큼 바빴다.

늦봄이 지나고 모가 어느 정도 키가 자랄 때,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면 쓰러진 모를 세워주고 잡아주는 의식을 농부는 치러야 한다.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논에 모도 밭에 푸성귀도 자란다 하지 않던가. 부지런함의 힘으로 논밭의 벼와 푸성귀는 자라난다. 그렇게 긴 장마와 태풍을 이겨낸 작물은 뜨거운 한여름 긴 태양빛을 받으면서 익어간다.

점점 색깔이 변해간다. 가을이다. 누렇게 익어가는 들녘을 보는 농부의 눈빛이 반짝인다. 이어 벼를 베고 타작하고 도시에 사는 아들딸에게 농사지은 것을 보내고 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는 나는 그런 우리 부모님들이 안쓰러웠다. 평생 자식 먹이는 일을 하루도 쉬지 않으시는구나 싶어 마음이 아팠다.

어느 해 여름이었다. 속가 어머니가 고향 뒷산에서 따셨다면서 머루를 잔뜩 들고 오셨다. 머루로 효소를 담가 위가 좋지 않은 나를 먹이겠다고 더운 여름에 손에 무겁게 들고 암자로 오신 거였다. 그 사랑을 마음으로는 알지만 표현할 수 없었다.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을 음식 하나로 만들었다. 그 여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냉면을 만들어 드렸다.

지금도 기억난다. "어떻게 이렇게 맛있는 냉면을 만들 수 있어요? 우리 스님 언제 냉면 만드는 것도 배웠어요? 세상에서 이런 맛있는 냉면은 처음 먹어봐요.…스님 고마워요." 냉면 한 그릇에 그렇게 좋아하시던 어머니는 이제 계시지 않지만 여름날 냉면 한 그릇 앞에 두면 그렇게 좋아하시던 그때의 얼굴이 떠오른다. 어머니께서 계신다면 요즘 같은 봄날 냉면 잘 삶고 꾸미 잘 올리고 양념장 맛나게 만들어 냉면 한 그릇 드리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누군가와 따뜻한 마음을 나누고 싶을 때, 곱게 채 쓴 꾸미 올리고 냉면 한 그릇 내어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마음을 담아서 말이다.

대운사 주지·복합문화공간 쿠무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