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들이 새벽 예불을 드리는 동안 법당 댓돌에 놓인 스님들의 고무신. 국제신문 DB

수행자들이 함께 모여 사는 대중처소에서는 돌아가면서 한 철에(백일 안거 기간) 한두 번씩 소임을 맡게 된다. 승가대학에서 공부할 때였다. 새벽에 도량석(새벽예불 전 사찰 마당을 돌며 생명체와 대중을 깨우는 의식 )을 할 차례가 되었다. 새벽 3시에 정확히 목탁을 올려야 했기에 그런 날이면 전날 자명종을 새벽 2시50분에 맞춰 놓고는 밤에도 몇 번씩 깨어나서 확인하곤 했다.

혹 시간을 못 맞추면 어쩌지 하는 걱정에 백일에 몇 번씩 돌아오는 그 의식이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날도 몇 번이나 확인하면서 잠을 설쳤지만, 그만 새벽3시를 넘기고 말았다. 새벽 나의 목탁소리에 맞춰 일어나는 대중스님들에게 그날 나는 하루 종일 얼굴을 들 수 없었다. 날마다 맡는 소임도 아니고 한철에 몇 번인데 그 책임을 다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금도 잊지 못하는 얼굴 붉어지는 부끄러움이다.

출가공동수행체로서 대중이 모여 사는 곳에서는 각각 소임을 가지게 되는데 대중큰방에는 그렇게 짠 내용인 용상방(龍象榜)을 걸어 둔다. 한 철 열 명의 대중이 모여 살더라도 증명 조실부터 아래로는 보일러나 불을 맡은 화두, 국을 끓이는 갱두, 대중이 씻을 물을 데우는 욕두, 밥을 하는 공양주, 반찬 만드는 채공까지 80개에 이르는 소임이 있는데 하나도 빠짐없이 각자 소임을 맡게 된다.

그렇게 많은 소임 가운데 단 한 가지 소임이라도 맡은 이가 소홀히 하거나 놓치면 그 대중 전체의 리듬이 깨지고 삐거덕거린다.

가만히 우리 사는 사회를 보더라도 정부는 요소요소에 소임을 맡아 국정을 운영하며 길거리에서 빗자루를 들고 비질을 하는 분에게까지 그 맡은 책임은 무척 소중하다.

불가의 글 치문경훈(緇門經訓) 중에 '蓋衆生之 根欲性殊(개중생지근욕성수)'라는 말이 있다. 각각의 성품과 취향, 업의 본질이 달라 굳이 서로를 맞추려 하지 않아도 각자 본성대로 세상 한 부분을 담당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세상과 함께 호흡하다 보면 나에게 와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누구는 자기 맡은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럴 때 나는 이렇게 말한다. '타인의 잘하고 못하는 것을 탓하지 말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세요'라고.

물론 우리가 기본으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 선을 크게 넘지 않는 이상 타인의 어떤 행동에 크게 관여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다.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자신이 하는 일에 집중하고 살다 보면 누군가의 잘잘못에,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크게 신경 쓰일 일은 없다.

배우 이영애의 영화 속 대사가 유행한 적이 있다. "너나 잘하세요"라는, 조금은 거슬리는 말이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챙겨보게 하는 좌우명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각자의 위치에서 2016년에는 정말 좀 잘해 봤으면 싶다.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어머니는 어머니답고 아들은 아들답고 딸은 딸답고 수행자는 수행자답게 각각의 사람들이 그답게 그 위치에서 살아간다면 타인이 어떻게 사는지 잘 사는지 못사는지 이런 것에 신경 쓸 겨를 없이 자신이 처한 곳에서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 모두 다 잘하는 2016년 되기를 기원하며 두 손 모아 본다.

대운사 주지·복합문화공간 쿠무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