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회춘프로젝트 프로그램으로 필자가 주축이 되어 온천천 문화살롱 무대에서 진행한 온천천 행사들 모습. 도시철도 1호선 부산대역 아래 온천천 야외무대서 열린 음악 공연. 박진명 제공

- 예술의 공공성 다양한 실험속
- 온천천 문화살롱 무대 결혼식
- 도심 마을잔치 되어 눈길끌어

- 반송 희망세상·남산 금샘마을
- 자생적 지역 공동체 공통점은
- 커뮤니티 기획의 연속성 보장

- 지역과 유대 다지려는 청년과
- 믿음 주는 주민이 어우러질때
- 건강한 커뮤니티 만들어질 것

2010년 부산 금정구 장전동에 '생활기획공간 통'을 친구들과 만들어 많은 사람을 다양한 방식으로 만났다. 고구마요리대회를 열어 1등 한 사람에게 고구마 한 봉지를 주었고, 짝 없는 문화예술인을 위해 릴레이소개팅을 열었고, 주민들 시 쓰기 모임에서 "정신이 더 가물가물해지기 전에 꼭 시를 써보고 싶다"며 기장군에서 스쿠터를 타고 오신 할머니를 만났다.

'문화기획'이라는 자의식 없이 우리 이야기부터, 우리 주변 가까이의 이야기부터 즐기며 어울리는 자리를 만들다 보니 장르도 대중없고 형식도 제멋대로였다. 그런데도 이웃 마을공동체, 주민, 청년, 예술가 등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다. 생활기획공간 통은 운영자도 여럿인 데다 하나의 장르를 고집하지 않아 오히려 다양한 만남의 방식을 시도할 수 있었다.

그 뒤 1년간 우리 즐겁자고 했던 일이 영 나쁘게 보이지는 않았는지 2011년 부산에서 공공예술 프로젝트 등도 진행할 기회가 생겼다.

■생활기획공간 통의 실험

같은 장소에서 열렸던 필자의 실제 결혼식 모습.

젊은 예술가들이 지역에서 이탈하고 있던 2011년 부산을 떠들썩하게 했던 '부산회춘프로젝트'를 생활기획공간 통이 함께 맡게 됐다. 필자는 '온천천문화살롱'이라는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맡아 30번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했다. 온천천 문하살롱을 위해 도시철도 1호선 부산대역 앞 온천천에 무대를 마련했다.

이 무대는 뮤지션의 공연장소로, 화가의 작업실로, 음악다방으로, 포장마차로, 고시원의 방으로, 고고장으로, 연극의 무대로, 사진스튜디오로 다양하게 변신했다. 비가 왔던 마지막 서른 번 프로그램은 필자의 실제 결혼식 무대였다. 나와 아내는 온천천 문화살롱 무대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비오는 온천천 다리 밑에서 결혼식까지 하게 된 것은 예술의 공공성에 관한 고민을 다양한 방향으로 펼쳐보자는 뜻에서 나온 시도였다. 한 집안의 결혼이 마을잔치이기도 했던 공동체 문화를 도시 안에서 만들면서, 이 프로젝트의 목적과 가치를 가볍게 보지 않겠다고 다짐도 했다.

기획자를 하나의 '역할'이라고 규정하느냐 마느냐는 예술을 기존 방식대로 '기예 전수'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에서 그것을 '세상과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하는 창조적 구성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것과 연관된다. 최근 다양한 장르가 뒤섞이는 융복합이나 시민의 향유에 초점을 둔 생활문화가 강조되면서 기획자의 역할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있던 것을 어떻게 새롭게 구성하여 시민과 향유자에게 제시할 것인가' '낯설게 느껴지지 않도록 접근하려면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등이 중요한 고민이 되고 있다. 생활기획공간 통을 운영한 것이나 온천천 문화살롱을 진행한 것은 기존의 전시·공연 기획과는 달랐다. 요즘은 출판이나 디자인 등 새로운 영역을 묶어 '콘텐츠 기획'이라 하기도 하고 축제기획, 문화공간 운영, 교육 콘텐츠 제작 및 워크숍 진행 등 기획이 다양해지고 있다. 필자가 해왔던 생활기획공간 통 활동이나 최근 진행하는 수영성 문화마을 프로젝트 등은 공간 운영, 공연, 전시, 축제, 교육, 잡지제작 등 여러 요소를 포함하는 '커뮤니티 기획'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공동체의 건강한 욕망을 깨운다

낮 시간에 연 작은 밴드들의 노래 공연 장면.

커뮤니티 기획은 이미 정해져 있는 미션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다. 해당 지역에서 그곳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동안에 이 공동체에서 건강한 욕망을 구축하고 실행하는 것이 주된 관심이자 일이다.

해당 지역에 사는 시각장애가 있는 청소년과 비장애 청소년이 더 잘 어울릴 수있는 방법을 고안한다든지, 공동체의 어른들은 대학가 클럽이나 공연장으로, 청년들은 공동체가 운영하는 도서관이나 축제로 가서 서로 취재한다든지, 10대부터 30대까지 모여 있는 잡지인 '바싹'을 통해 공동기금을 만들고 청년에게 제공하는 긴급생활자금 '바싹론'을 만드는 등은 삶의 고민을 함께했다. 이때,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 자체에 의미를 두고자 했다.

커뮤니티 기획이 조금 더 빛을 발휘하는 영역은 공동체 활동, 도시재생이나 마을 만들기 등 다양한 이해관계가 뒤섞이는 분야일 것이다. 아무래도 많은 사람을 만나서 새로운 일을 벌이거나, 다양한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을 만나 조율해가면서 마을의 발전을 도모하는 일이다 보니 '매개하는 사람'으로서 역할이 더 중요하다.

예술기획의 관점에서 마을에 들어가거나 행정 관점에서 마을에 접근하다가 낭패를 본 여러 사례는 커뮤니티 기획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 결과다. 관 주도로 진행하는 사업은 담당 공무원이 자주 바뀌는 것도 문제이지만, 민간 활동가의 지속적인 활동을 보장하지 못하는 것은 더 큰 문제다. 반송의 희망세상이나 화명동의 대천마을, 남산동의 금샘마을 공동체 등 자생적인 공동체가 더 활기를 띠는 이유는 그분들의 노력에 힘입기도 했지만, 일희일비하지 않고 공동체를 가꾸어 가는 '사람들의 꾸준함과 연속성'에 있다.

■청년이 꾸준히 참여할 수 있도록

지역마다 내로라하는 활동가나 명망가가 많지만, 정작 그분들은 만나기 힘들다는 이야기가 있다. 2014년 광주에서 열린 청년문화기획자대회에서의 중요한 화두가 바로 그거였다. 다양한 영역에서 기획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정작 자기 동네는 잠만 자는 곳으로 소비하고 있다는 것. 이런 반성이 신선했던 이유는 기획자들도 때때로 앞선 성과를 바탕으로 어떤 지역에서든 뭔가 해낼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커뮤니티 기획에서는 공유되는 삶의 범위와 상호작용을 수시로 점검해야 하기에 그런 오만함은 독이 된다. 다른 지역에서는 기획자로서 온갖 기지를 펼치고 있지만, 정작 자기 동네에서는 좋은 이웃이 아니라는 반성은 적어도 커뮤니티 기획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10년 넘게 대구의 골목 지도를 그리고 도시의 층위를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해 사실상 '대구근대골목'을 만들었던 '시간과 공간연구소' 권상구 이사의 중요한 실험은 1㎞ 안에서 세계와 만나기였다. 청년이 지역과 깊이 교류한 과정에서 대구근대골목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었을 뿐 아니라 그 자체로 청년의 자리를 만든 결과로도 이어졌다.

부천의 여러가지연구소 민경은 대표는 지역 청년들과 함께 골목을 걸으면서 간단한 테이핑으로 도시에 말을 걸고, 함께 김치, 피클, 막걸리를 담는 등 도시를 새로운 속도로 바라보는 다양한 실험을 전개하고 있다. 거창의 김훈규 선생님은 농촌의 어르신들이 삶을 시로 표현하는 프로그램에서 시작해 폐교되었던 학교를 다시 열어 동네 주민 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이처럼 커뮤니티의 기획은 도시나 마을이라는 공간, 그리고 관계 맺고 무언가 만들어내는 데 필요한 시간, 그것을 가능하도록 매개하는 사람들이 필수적으로 연동된다. 오래 걷고, 만나고, 상상해야 보이기 시작하고 성취는 뒤따르는 치열한 관계맺음의 과정을 넘어서야만 나오는 것이다. 산복도로를 중심으로 마을활동을 하고 있는 청년 정승창과 동네백수라는 청년팀, 반송의 카페 나무에서 청년들과 다양한 활동을 해온 손수진 등 스스로 어떤 지역과 관계를 맺고 함께 가꾸어 가려는 청년들이 있는 지역은 행운이다.

커뮤니티 기획자에게 그 지역이나 사람들과 진정성을 바탕으로 관계를 엮어가는 미션이 중요한 만큼, 마을과 커뮤니티도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을 소중하게 여겨야 건강한 커뮤니티나 공동체가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대구의 사례처럼 그 과정에서 청년의 자리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병행되어야 공동체는 좋아질 수 있을 것이다.

박진명·수영성 마을 프로젝트 문화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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