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4인조 모던 록 밴드 로우필즈. 왼쪽부터 팀 리더이자 보컬 김성현, 드럼 이신효, 기타리스트 조종원, 베이스 이원선이다. 로우필즈 제공

지난 11일 금요일 저녁 부산 도시철도 사상역 앞, 컨테이너를 쌓아올린 것 같은 독특한 외관으로 행인의 눈길을 끄는 사상 인디스테이션 무대에서 4인조 모던록 밴드 로우필즈를 만났다.

이날 부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뮤지션들 중 올해 음원을 발표한 밴드 카우칩스와 하퍼스, 싱어송라이터 김일두가 함께 'That's New New'라는 타이틀로 새 앨범 발매 기념콘서트를 했다. 마실 나온 듯 보이는 동네 어르신들과 아이들, 일 마치고 귀가하던 중 심장을 두드리는 라이브 연주에 이끌려 온 외국인 노동자들까지 보통 라이브 클럽에선 쉽게 모이기 어려운 다양한 관객이 공연장을 메우고 있었다.

4인조 모던 록 밴드 로우필즈는 탁 트인 고속도로를 시원하게 질주하는 듯 거침없고 탄탄한 리듬 위에 감성을 건드리는 멜로디와 호소력 있는 보컬로 무대를 장악했다. 팬은 물론, 그들이 뿜어내는 사운드가 생소했을 관객까지 모두 그들의 무대에 집중하며 흥겹게 즐기고 있었다. 음원으로만 즐겨 듣다 처음으로 라이브를 목격한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로우필즈의 음악을 어떻게 글로 옮겨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다음 무대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던 김일두가 그들의 무대를 바라보며 한마디로 총평했다.

''지기네예!"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었다.


낮엔 일터에서, 밤엔 밴드로

팀 리더이자 보컬 김성현, 팀의 맏형인 기타리스트 조종원, 베이스를 맡은 이원선, 드럼을 치는 팀의 막내 이신효. 이렇게 네 명의 멤버로 2011년에 결성한 로우필즈는 브리티시 록의 색채가 짙은 모던 록을 지향하는 밴드다.

멤버 중 김성현과 이원선은 직장인, 조종원은 기타 리페어숍의 사장님이고, 가장 어린 이신효는 공익요원. 낮엔 각자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며 생활인의 임무를 수행하다 어둠이 내리면 마치 고담시티의 다크 나이트처럼 모던 록 밴드 로우필즈의 멤버로 변신한다. 언체인드, 나이트 쉐이드가 속한 부산의 대표적인 인디레이블 진저레코드에 소속된 로우필즈는 지난해 6월 첫 번째 데뷔 싱글 '오아시스'를 발표했다. 세상에 처음으로 선보이는 음원이라 멤버 모두 몹시 들떠있었다.

'오아시스'는 어린 시절 흠모했던 밴드의 열정적인 라이브 영상을 보던 그 순간의 감동이 황량한 사막 위로 흐르는 한줄기 시원한 바람이 되어 당장에라도 화면 밖으로 뚫고 나올 것만 같았던, 형언할 수 없는 환상적인 느낌을 표현한 곡이다. 팬으로서 받았던 그 감동을 이제는 뮤지션의 자리에 서서 전해 주려 했다고 한다. 문득, 그들을 그토록 감동시켰던 밴드는 어떤 밴드였을까 궁금해진다. 곡 제목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까? 참고로 보컬 김성현은 노엘 갤러거를 가장 존경하는 뮤지션으로 꼽는다. 극한의 슬픔, 기쁨, 분노가 공존하는 정서를 무척 좋아한다고 했다.



다음 달 10일 '특별한 무대'

올해 4월 발표한 미니 앨범 '달빛찬가' 역시 첫 싱글과 마찬가지로 진저레코드에서 녹음과 믹싱 마스터링을 모두 마쳤다. 선배 밴드 언체인드의 멤버 김광일과 김지근이 프로듀서로 참여해 한층 깊이 몰입하여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앨범의 '필청 트랙'으로는 정규방송이 끝남을 알리는 화면조정시간 알림음으로 시작하는 첫 곡인 '달빛찬가'를 꼽는다. 다시는 볼 수 없는 세상으로 떠나버린, 늘 우리 곁에 있음이 마땅한 이들에게 보내는 그리움의 찬가이다. 보컬 김성현은 이 곡을 추천하는 이유가 다음 앨범의 예고편 같은 느낌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최근 로우필즈는 내년 발표할 다음 앨범의 새로운 곡을 만드는 작업에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오는 10월 10일엔 부산클럽투어 10주년 무대에 선다. 이날은 특히 부산의 여러 인디레이블이 함께 밤늦게까지 즐기는 공연 프로그램을 마련한단다. 뮤지션과 팬들 모두에게 부산 로컬 인디 씬의 현재를 확인할 기회가 될 것이라고.

리더 김성현은 학창시절 나이 탓에 라이브 클럽 출입이 어려워 지하 클럽의 환풍기에서 조그맣게 새어 나오는 밴드 연주를 귀기울여 듣곤 했다. 부산 로컬 인디 씬이 가장 뜨거웠던 시절이 그때였다고 기억한다. 라이브 클럽 무대에 서기 위해선 반드시 오디션을 거쳐야 했고, 김성현도 몇 번이고 오디션에 떨어졌던 기억이 있다. 무대에 서려면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 만큼 무대에는 멋지고 재미난 밴드가 많았다.

현재 부산을 굳이 서울에 비교하자면, 아무래도 홍보해줄 매체도 부족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런 문제를 핑계나 콤플렉스로 여겨선 안 될 것 같다고 그는 말한다. 아티스트는 좋은 음악을 만드는 데 우선 욕심을 내야 하고, 홍보는 그다음 생각할 문제라고 한다. 최근 홍대 앞 인디 씬을 보면 세계적 수준의 밴드가 속출하는 것이 가장 부럽다고 했다. 사실 이런 현상 또한 매체 영향이 없진 않겠지만, 그보다는 노력의 결실이라고 생각한다.

서울보다는 덜 팍팍하고 여유로운 분위기가 강점인 부산 인디 씬에서도 그런 노력이 더해져 멋진 밴드가 무수히 쏟아져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로우필즈 역시 그 언저리에 끼어 있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덧붙인다.

어린 시절 열광했던 뮤지션의 공연 영상을 보며 들뜨고 행복했던 순간을 누군가에게 되돌려 주고 싶어하는 로우필즈의 행보를 지금부터라도 주의 깊게 지켜보도록 하자.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들뜨고 행복해질지 모른다. 분명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 여기에선 사실 흔히 일어나는 일이니까.

작가·다큐멘터리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