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춘을 처음 만난 건, 비 내리던 2012년 5월 어느 저녁, 지금은 사라진 부산대학교 후문 근처에 있던 2층 카페 '업 스테어'에서였다.

'중구천재 김일두'와 '씨 없는 수박 김대중'(가수 이름이다) 이 함께한 '삼김시대'라는 어쩐지 수상한 타이틀의 첫 공연이 있었던 날이다. 컨트리 음악을 연주하던 '일요일의 패배자들'이란 밴드가 해체되고 난 뒤 홀로 꿋꿋하게 컨트리 음악을 고수하던 싱어 송 라이터 김태춘의 정체에 대해 늘 궁금해 하고 있던 터였다.

온갖 새로운 장르의 음악이 어지러이 범람하고 있는 와중에도 유독 컨트리라는 장르는 우리나라에선 여전히 생소하다. 오래 전 카우보이모자를 멋들어지게 쓰고 '동물농장' '시골 영감' 같은 유쾌한 노래를 불렀던 추억의 남성듀오 '서수남과 하청일', 마초적인 컨트리 록을 표방했던 밴드 '바비 빌' 정도 외엔 도무지 기억나는 한국의 컨트리 뮤지션은 없었다.

포마드를 잔뜩 바른 머리를 틈나는 대로 가는 빗으로 정성스럽게 넘겨 붙이던 날카로운 눈매의, 어쩐지 고액의 현상금이 붙어 있을 것 같은 인상의 사내가 기타를 들고 무대에 섰을 때, '닭장 속에는 암탉이~ 꼬꼬댁 꼬꼬'로 남아있던 컨트리의 추억은 산산조각 박살나버렸다. 김태춘은 조롱에 최적화된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차마 아이들이 볼까봐 지면으로는 옮길 수 없는 욕설과 19금 표현이 가득한 위악스럽고 불온한 가사의 노래를 쏟아냈다.

■이효리 컴백 앨범에 노래 수록

특히 종교에 대한 원색적이고 날선 비판과 조롱은 만약 이 자리에 신실한 형제자매님들이 있다면 뒷목 잡고 쓰러지지 않을까 우려될 정도였다. 가히 독보적인(혹자는 독버섯이라 말할지도 모르겠다) 존재감을 유감없이 드러낸 무대였으며 학창시절 처음 헤비메탈을 접했을 때만큼 충격적인 컨트리의 발견이었다. 유독 종교에 대해 비판하는 이유를 묻자 "쉽고 재밌어서"라고 대답했다. 종교에 깊이 빠진 이들은 너무 진지하고 심각해 조그만 것에도 정색하기 때문이란다. 김태춘의 많은 노래에 19금 딱지가 당당하게 붙었지만, 의외로 아직까지 종교계의 항의를 받은 적은 없다고 한다. 오래 전 김태춘은 '피바다' 라는 살벌한 이름의 펑크 밴드로 활동해왔으나, 군대를 다녀온 후 밴드가 해산되고 혼자서 이런 저런 음악을 찾아 듣다가 컨트리에 빠지게 되었다. 촌스럽고 거친 가사와 멜로디에 매료되었고, 무엇보다도 '똥폼'을 잡지 않는 자연스러움이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한다.

독특하고 희소성 있는 음악 세계를 가진 우리 동네 록 스타 김태춘은 어느 날 문득, 공중파 방송에서도 볼 수 있는 그냥 록 스타가 되었다. 군 시절 내무실 침상 끝에 각 잡고 앉아 곁눈질로 훔쳐보던 TV속 요정 '핑클'의 전 멤버, 가수 이효리의 컴백앨범 '모노크롬'(2013년)에 작사·작곡가로 참여해 두 곡을 수록해버린 것이다. TV 속에서 이효리와 함께 다정하게 노래부르기도 하고, 전혀 어색하지 않게 "효리 누나!"라고 부르는 그의 모습을 보니 단순한 부러움이나 질투 따위가 아니라 다만 '나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네가 있을 뿐' 이란 노래가 떠올랐을 뿐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믿던 나는 김태춘에게 앞으로 형이라고 불러도 되냐고 진지하게 물었으나 거절당하기도 했다. 개그맨 김구라가 방송에서 특유의 아는 척 하는 말투로 김태춘을 소개하면서 '홍대 앞에서 활동하는 친구' 라고 했을 때 "아닌데! 부산대 앞에서 활동하는데!" 하고 소리친 적도 있었다. 정작 김태춘은 TV 나와도 아무도 알아보는 사람은 없더라며 시큰둥하게 얘기했다.

데뷔 앨범 '가축병원 블루스'에 이어 작년 겨울엔 '산타는 너의 유리창을 두드리지 않을 거야' 캐롤 앨범을 발매했다. 역시 짓궂은 농담 가득한 김태춘 특유 캐롤 앨범이었다. 크리스마스를 좋아하진 않지만, 좋아하는 컨트리 뮤지션들이 캐롤 앨범을 냈길래 따라서 만들어보았다고 한다. 현재 서울과 부산을 틈틈이 오가며 활동 중인 김태춘은 기타와 우쿠렐레 등 악기 레슨을 하며, 2집 앨범에 수록될 곡을 정리 중이다. 다음 앨범은 쉽고 단순하고 쓸쓸한 노래로 채워질 예정이다. 앨범 준비 때문에 중요한 공연 외엔 거의 공연도 하지 않고 있다.

■8일엔 부산서 '삼김시대' 공연

오랜만에 중요한 공연이 부산에서 예정되어있다. 바로 '삼김시대' 공연이다. 2012년 첫 공연 이후로 서울과 부산에서 수차례 해온 공연이다. 김태춘, 김대중, 김일두 각자 다른 색깔과 매력을 가진 뮤지션이지만, '삼김시대'라는 이름으로 함께 어울리는 무대는 마치 싱어 송 라이터들의 '어벤져스' 라 할 수 있을 만큼 강렬한 시너지를 만들어 내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셋이 모인다는 것 자체가 가장 큰 의미가 있다고 김태춘은 말한다. 김대중과 김일두. 둘 다 자기 세계가 뚜렷해 좋아하는 형님들이고, 함께 있을 때 생각지도 못한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툭툭 던져내는 편이라 늘 배우는 것이 많다고 한다. 각자 바쁜 활동을 소화하느라 오랜만에 부산에서 다시 뭉치게 된 '삼김시대' 공연은 오는 8일 오후 5시 부산진구 전포2동 552의 7 부산북교회 옆 인앤빈 커피 로스터즈에서 열릴 예정이다.

예매 2만7000원, 현매 3만3000원 입장료가 책정되어 있지만, 사실 현매 3만5000원은 받아도 무방한 공연이라고 생각한다. '삼김시대' 공연을 처음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는 전설이 있다. 직접 가서 그 실체를 확인해 보시길.

작가·다큐멘터리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