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극의 대가인 존 포드의 면모에 치중했던 기존의 관람 방식에서 벗어나, 무성영화 시기를 거쳐 스튜디오 시스템이 변모하던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그가 횡단했던 영화사의 아름답고 기적적인 장면들을 볼 기회가 다시 돌아왔다. 영화의전당에서 상영되는 '존 포드 특별전Ⅱ'는 포드의 영화 중에서 비교적 덜 알려진 영화나 정당한 비평을 얻지 못했던 영화들로 채워진다. 특히 그의 마지막 작품인 '일곱 여인'(1966)과 당대 혹평을 받았던 '도노반의 산호초'(1963), 포드가 개인적으로 사랑했던 '조용한 사나이'(1952)를 비롯해서 '윌 로저스 3부작' 중 '저지 프리스트'(1932)와 '닥터 불'(1933)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포드와 '굽이도는 증기선'(1935)을 포함한 세 편의 영화를 찍고 사망한 인간미 넘치는 배우 윌 로저스의 매력은 존 웨인으로 대표되는 영화들과 다른 정서적 표현을 가능케 한다.

이번 상영작에서 포드가 어떤 세계와 이별하는 영화의 목록이 마음에 와 닿는다. 그가 서부에 작별을 고한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1962)는 그의 영화적 동반자인 존 웨인이 서부라는 공간과 그 시절에 보내는 헌사이자 사라지는 세상의 규칙에 대한 탄식이 스며들어 있다. 철로가 놓이고 마을이 형성되면서 무법자와 사나이의 대립은 법과 신문으로 대체된다. 전설로 떠돌던 서부의 마지막 사나이가 확정된 사실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포드의 지긋한 눈길을 느낄 수 있다.

웨일즈에서 보낸 유년시절에 보내는 작별 인사가 담긴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1941)는 소년의 관점으로 바라본 19세기 공동체의 와해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탄광에서 일하는 광부들과 노동의 신성함을 믿는 가족관계가 변화하는 세상의 풍조에 밀려 어떻게 서서히 조각나고 멀어지는지 세심하게 드러낸다. '조용한 사나이'는 아일랜드계 혈통에 자부심을 가졌던 그의 아일랜드 탐방기이자 부모의 땅에 대한 사랑을 드러냄과 동시에 그리움의 대상에 대한 포드적 세계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모감보'(1953)는 아프리카에서 잔뼈가 굵은 남성과 연구를 위해 방문한 젊은 부부의 관계를 통해 마치 서부의 사나이처럼 살아가는 아프리카의 백인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보여준다. '아파치 요새'(1948), '태양은 밝게 빛난다'(1953), '샤이엔의 가을'(1964)에 이르기까지 그가 바라본 세상에 대한 감각과 살아감에서 만나게 되는 여러층의 감정적 퇴적물은 늘 이별의 순간과 대면한다.

전통의 가치로부터 멀어진 세계와 다가올 세계가 오버랩되면서 퇴장하는 자를 향한 포드의 쓸쓸한 정조가 짙게 배어날 때 스크린의 인물들은 불멸의 존재가 된다. 광활한 대지, 아프리카의 붉은 땅, 아메리칸 원주민의 행렬,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는 말의 역동적인 움직임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고 사람들의 관계에서 중요한 체면과 품위를 유지하려고 애썼던 포드의 섬세한 인사를 대신한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