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영화 '디렉터스 컷'을 개봉하는 박준범 감독. 아래는 영화 '디렉터스 컷'의 장면들.

'디렉터스 컷'. 자본과 관객의 눈치를 보느라 소신껏 영화를 만들기 힘든 요즘 영화계에서 '감독판 편집본'을 일컫는 디렉터스 컷은 감독의 자존심일지 모른다. 박준범(36·야간비행 대표)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 '디렉터스 컷'은 이런 한국영화계의 씁쓸한 현실을 드러낸다. '디렉터스 컷'은 다음 달 2일 인디스페이스, 영화의전당, 국도예술관, 아트씨어터CNC, 대전아트시네마,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 대구 오오극장 등 독립영화전용관 7곳에서 개봉한다.

"영화를 만들 때는 '완성하자'는 생각에 죽자사자 매달렸는데, 그다음에는 '관객에게 보여주자'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두 번째 영화도 관객과 만날 기회를 얻게 돼 기쁩니다."

박 감독은 부산 독립영화계에서 의지의 인물로 손꼽힌다. 경성대 연극영화과 출신인 그는 2007년 혼자 힘으로 만든 첫 장편영화 '도다리'로 부산국제영화제(BIFF)에 초청받아 주변을 놀라게 했고, 끈질긴 기다림 끝에 2012년 극장 개봉까지 했다. 박 감독의 행보에 자극받은 선배 감독들이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단 후문까지 들렸다. 지난해 완성한 '디렉터스 컷'은 전주국제영화제, 베이징국제영화제 등을 거쳐 1년 만에 극장에 선보인다. 극장 개봉을 준비하며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장희철 감독의 '눈이라도 내렸으면' 제작도 맡았다. 영화 연출, 제작, 배급까지 혼자 해내느라 게으름을 피울 새가 없다.

"제가 요령이 없는 거죠. 때론 얼굴이 화끈거릴 때도 있지만 관객과 만나고 싶다는 간절함만 생각하며 극장마다 제 영화를 보여주고 상영을 부탁했어요. 또 영화에 대한 간절함을 잘 알기에 다른 감독의 영화 제작도 돕게 됐죠."

이번 영화는 어쩌면 감독 자신의 이야기일지 모른다. 10년간 단편영화만 만들던 감독이 첫 장편영화를 찍게 되면서 겪는 이야기로, 제작자의 입김에 휘둘리며 현실과 신념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이 비친다. 부산 출신 배우 박정표, 한송희 등이 출연했다.

"전주국제영화제 상영 이후 '네 얘기 아니냐'는 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10년간 영화를 하며 애인도, 동료도 떠나고 홀로 분투하는 모습이라…. 어쩌면 제 얘기일 수도, 주변 동료 얘기일 수도 있겠죠. 물론 영화 속 에피소드에서 제 경험은 없어요. 독립영화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척박하고 외로운지 보여주고 싶기도 했고 무엇보다 창작자의 표현을 향한 열망과 고통, 그리고 겪는 갈등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동료들은 감정이입이 돼 많이 격려해줬는데 관객의 반응이 궁금하네요."

5년간 기다림과 발버둥 끝에 극장에서 개봉한 '도다리'와 달리 그는 두 번째 극장 개봉을 준비하며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도다리'는 맹목적으로 관객과 만나고 싶다는 생각만 했어요. 그리고 받아든 성적표는… 처참했죠. 그때 깨달았어요. 무조건 내 영화만 틀어달라고 어리광부리기보다 극장 입장도, 개봉을 기다리는 다른 독립영화도 생각해야겠다고. 이번에는 독립영화전용관 프로그래머들에게 자문해 영화 상영을 의뢰했고 그분들의 격려에 힘입어 개봉하는 것이라 기분이 남달라요."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방황하던 주인공이 끝내 자신의 의도대로 영화를 만드느냐고 묻자 그는 살짝 대답을 피하며 여운을 남겼다.

"부산에서 영화를 만드는 게 얼마나 고독한지 몰라요. 영화를 만드는 과정은 정말 힘들었지만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해서 만족합니다. 저 역시 영화를 만들며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하겠지만 궁극적으로 저와 관객이 행복한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차기작으로 멜로영화(단편) 촬영을 준비하며 스릴러 장르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는 그의 세 번째 영화가 기다려진다.